잔머리 굴리기(펌)

색달라진 보이스피싱 --- 내가 당한 보이스 피싱 사기... '지급금지' 처리됐지만 전액 회수는 불투명

moonbeam 2015. 1. 17. 09:11

"안녕하세요. 김민정씨 맞나요? 서울지방검찰청 수사관입니다. 혹시 김경수씨 아십니까. 그 사람이 김민정씨 명의를 도용해 불법도박 자금 용도의 대포통장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어제(1월 12일)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가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하니, 피해자라는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황당했지만 내 이름과 주민번호를 알고 있던 터라 안심했다. 담당 수사관은 말을 끝내고는 다시 담당 검사를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사건 요약 설명을 잘 들은 후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통화를 이어나갔다.

잠시 후 사건 담당 검사로 연결됐는데, 좀 전에 수사관이 설명한 사건을 요약하기 시작한다. 검사가 왜 이런 걸 직접 하나란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다. 한술 더 떠 "진술한 부분은 녹음해 법적 보관 자료로 이용된다"고 해 긴장감까지 줬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던 검사는 개인정보 유출의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겠다고 했다. "00 지점에서 통장을 개설한 적이 있습니까", "최근 해외 여행 경험이 있으십니까" "옥션, 11번가 등을 이용하신 경험이 있습니까" "현재 직장인이 십니까" 등등.

나는 그렇게 수십 분 통화하면서도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검사는 사건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고 거기에 들어가 확인해 보라고 했다. 사이트 주소는 'spo-vgt.com'. 거기로 들어가니 검찰청 사이트가 떴다. 검사는 사이트 하단에 나의 사건번호를 조회하면 사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 조회를 해보니 사건명 번호와 내용이 게시돼 있는데 그럴싸했다.

* 실제 검찰청 사이트 주소는 http://www.spo.go.kr다. 뒤에 주소가 com, net라면 주의한다.
* 진짜 검찰청 홈페이지 앞에는 검찰 마크가 표시돼 있다. 가짜 사이트의 경우 검찰 마크 대신 인터넷 마크 모양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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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홈페이지 앞에 있는 검찰 마크를 확인하자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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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해당 범죄자가 알려준 사이트로 들어가면 검찰청 홈페이지가 뜬다.
ⓒ 검찰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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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 것이 왔다. 거래내역의 투명성과 불법자금 유통을 추적하기 위해 주 거래 은행의 가상계좌로 돈 입금을 요구했다. 검사는 20분 뒤 바로 현 계좌로 다시 입금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의심을 했지만 그 검사는 "이런 오해를 받아 서럽다"며 도리어 하소연했다. 그 때 바로 전화를 끊었어야 했는데... 순진하게 제대로 낚였다. 검사는 현재 '백수'인 나의 신분을 들먹였다. 신원이 불투명한 사람들은 전자 보안성이 떨어진다며, 전자거래 안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상황인데... 내 정보가 도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난 분개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렇게 돈을 입금했다. 그리고 몇 분 뒤 바로 은행에서 의심스러운 계좌라는 연락이 왔다. 그제서야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나는 해당 계좌의 지급금지 요청을 해 입금한 돈이 빠져나가는 사태를 막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보이스피싱 피해금, 다 돌려 못 받을 수도

하지만 이 돈이 내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내가 입금한 돈이 인출되지 않았고 내 돈이지만 그렇단다. 혹자는 이게 무슨 말이냐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보이스피싱 피해 관련 환급 절차에 따르면, 입금한 돈을 받기까지는 통상 3개월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해당 계좌의 채권소멸정지와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이뤄진다. 두 달 정도 걸리는데 이때 환금금액이 결정된다.

만약 내가 신고한 통장의 계좌로 다른 사람도 피해를 봤다면, 내 돈이 분할해 지급된다. 내 돈이지만 내가 다 못 가져가는 것이다. 금감원에 문의하니 보이스피싱 피해 관련 환급 특별법에 그렇게 되어 있어 별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뿐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보는 이러한 불합리한 환급제도는 빨리 개선돼야 할 것이다.

사건 이후 가장 분개스러웠던 것은 보이스피싱 자체보다 거기에 속아 넘어 간 내 자신이었다. 보이스 피싱을 풍자한 <개그콘서트>의 코너를 보며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나"라며 그들을 비웃었던 나다. 그런데 가장 전형적인 수법에 훅 갔다. 가장 뻔한 수법에 속아 넘어갔다는 무지함이 나를 괴롭혔다.

호언장담했던 내가 무엇에 혹 했나 되뇌어 보면 바로 '백수'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들은 백수가 명의도용 대상이 되기 쉽다고 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의 내면을 콕콕 찔렀다. 이러한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나는 그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보이스피싱의 주된 피해자라고 하는 40, 50대는 개인자산 보호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커범죄의 표적이 되기 싶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심리적 불안감을 이용해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보이스피싱이 하루빨리 근절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