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기(펌) 66

이방원이 그토록 원했던, 중랑천 가로지르는 '살곶이 다리'

[세상을 잇는 다리] 저자도에 낙천정 짓고 무시로 드나들었던 이방원 [이영천 기자] ▲ 압구정도(겸재 정선) 한명회가 압구정에 정자를 지은 이유가 저자도와 살곶이 벌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림 2사 분면에 살곶이 벌과 저자도가 아스라이 보이고, 중랑천이 흐르는 곳에 살곶이 다리 모습이 뚜렷하다. ⓒ 간송미술문화재단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길목 동측에 너르게 펼쳐진 벌판을 '살곶이 벌'이라 불렀다. 다른 이름으론 화살(箭)을 쏘았던, 물 쪽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땅(串)이란 의미로 '전곶평(箭串坪)'이라고도 했다. 오늘날 뚝섬이다. 이방원이 일으킨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새로 건국한 조선에 피바람이 일었다. 이성계 입장에서 보면, 건국 이전엔 정몽주를 죽인 아들이다. 건..

50년 만에 깨어난 유진상가 지하터널, ‘미술관’ 됐다

반백 년간 철저하게 장막에 가려져 있던 유진상가 지하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지난해 3월 유진상가 지하 한쪽 편에 산책로 ‘열린홍제천길’이 개방된 뒤, 서울시는 올해 초 맞은편에 있는 길이 250m 구간을 문화예술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홍제천 산책로 11㎞ 중 유일하게 단절돼 있던 곳으로, 이번 전시장 개장으로 단순한 환경 정비 차원을 넘어 공공미술의 날개를 달고 환골탈태하게 됐다. 이곳을 설명하면서 현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유진상가를 빼놓을 수 없다.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김신조 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겪으면서 안보 의식은 극에 달했다. 유진상가는 1970년 당시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로 시작했지만, 1층 기둥은 유사시 대전차 기지 역할을 겸하기 위해 설계될 정도로 튼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