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서민의 어쩌면]범죄자의 품격

moonbeam 2017. 2. 2. 10:37



[서민의 어쩌면]범죄자의 품격

이왕이면 착하게 사는 것이 좋겠지만, 삶이라는 게 꼭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의도야 어쨌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우리는 범죄자라 부른다. 범죄자를 유형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서민의 어쩌면]범죄자의 품격

첫째, 자수한 범죄자. 인간의 본능상 범행 후 붙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치긴 했지만, 제정신이 들면 대개 자수하고 싶어진다. 하기야, 남은 생애를 언제 붙잡힐까 고민하면서 사는 것보다, 죗값을 치르는 게 훨씬 더 떳떳하지 않은가? 자수는 경찰에게 좋은 일이고, 자수했다고 법원이 형량을 줄여주니 범인에게도 좋다. 2016년 8월, 나와 성이 같은 29세 서모씨는 금은방에 들어가 금팔찌를 보여 달라고 했다. 서씨는 주인이 팔목에 금팔찌를 채워주자마자 도망쳤는데, 그 금팔찌가 30돈 상당이었으니 600만원 정도 되겠다. 하지만 폐쇄회로(CC)TV가 사방에 깔려 있는 시대에 서씨가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는 없었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서씨는 범행 한 달 만에 경찰에 자수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는 길거리에서 검거됐을 확률이 높고, 수갑을 차고 팔목이 꺾인 채 경찰서로 끌려왔을 테니, 자수하는 게 훨씬 좋았다. 

둘째, 붙잡히자마자 자백한 범죄자. 경찰서에 끌려간 뒤 한사코 범행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 자백만 안 하면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기 때문이지만, 이러면 서로 피곤하기만 할 뿐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자는 범행을 실토할 때까지 취조를 받아야 하고, 경찰은 증거를 찾아나서야 하는데, 이렇게 힘을 빼느니 미리 자수해서 예쁨을 받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많은 범죄자들이 그래서 이 길을 택한다. 선후배 2명과 공모해 BMW 차량을 개울에 고의로 추락시켜 5400여만원의 보험금을 받은 일당이 있었다. 범행에 성공하자 또 다른 BMW 중고차를 구입해 고의사고를 내 2300여만원을 탔는데, 재미가 들린 이들은 2015년 3월 고장난 BMW를 구입해 개울에 빠뜨렸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사건의 성격상 자백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지만,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세 명이 모두 범행을 부인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테니, 자백하는 게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된 지난해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이 위민관에서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마치고 메모를 살펴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된 지난해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이 위민관에서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마치고 메모를 살펴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셋째, 경찰이 증거를 제시한 뒤에야 자백한 범죄자. 모든 증거가 다 자신을 가리키는데도 자백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가 인간말종이라는 것만 입증해 줄 뿐, 상황이 나아질 게 없다. 그러니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형을 받는 게 무난한 길이다. 올해 1월, 부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워 차와 함께 유기한 남편이 있었다. 경찰은 진작 남편을 용의자로 판단해 조사했지만, 그는 부인이 죽은 것도 몰랐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 뒤 남편은 도주했다가 다시 잡히는데, 그래도 그는 “절대로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우겼다. 경찰은 남편이 도주한 코스를 답사하다 아내를 태울 때 쓴 기름통을 발견했고, 여러 사람의 증언도 확보했다. 명백한 증거 앞에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닌바, 남편은 결국 자신이 아내를 살해했음을 자백한다. 

넷째, 경찰이 증거를 제시해도 자백하지 않는 범죄자.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타입으로, 자신의 범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다. 그 비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워낙 사이코패스다 보니 등장할 때마다 사회 전체를 뒤흔든다.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은 간만에 나타난 사이코패스형 범죄자로 인해 시끄럽다. 그는 자신의 범죄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한사코 부인했고, 그 이후 태블릿PC를 비롯해 수많은 증거와 관련자들의 진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은 죄가 없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금 30돈 상당의 팔찌를 훔친 수준이 아니라 대기업과 공모해 1000억원 가까운 돈을 뜯어낼 정도로 규모가 크고, 지위가 지위니만큼 비리가 굉장히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자신의 직무가 정지되는 처벌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엮였다”느니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기획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느니 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뱉는다. 

대통령도 인간인지라 본의 아니게 범죄에 연루될 수 있다. 그럴 때 죄를 인정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면 국민들이 그렇게까지 자괴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숱한 증거 앞에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증인들을 빼돌리고 위증을 교사하며, 고의로 수사를 지연시키는 등 온갖 추한 모습을 다 보이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의 품격은 고사하고 범죄자의 품격도 갖지 못한 그분 때문에 우리는 연말을, 연초를, 그리고 명절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건 약과일지도 모르겠다. “탄핵이 기각되면 국민의 힘으로 언론과 검찰이 정리될 것이다”라는, 그분이 인터뷰 도중 했다는 말로 짐작건대, 어쩌면 우리는 대한민국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