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보면, 다시 걷고 싶은 수렴동 숲길 | |||||||||||||||||||||||||||||||||||||||||||||||||
[오마이뉴스 2004-08-29 14:08] | |||||||||||||||||||||||||||||||||||||||||||||||||
남도 땅 광주에서 7시간의 긴 여정 끝에 46명의 순례단을 태운 버스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에 도착했다. 백담사는 647년 자장율사가 한계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이래 1783년까지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터를 옮기고 이름을 바꿨다. 그러고도 업이 끝나지 않았던지 1915년의 큰 화재와 6.25의 참화를 겪으며 초토화된다.
90년대 초반, 정확하게 전두환씨가 이곳에 유배되면서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대형 불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백담사는 비만 오면 넘치는 징검다리와 채마밭을 지나 쇠락한 건물 몇 채만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산중의 작은 절집이었다고 한다.
<님의 침묵>의 산실, 수렴동 숲길
백담사에서 잠깐 숨을 고른 후 조별로 짐을 점검하고 오세암으로 오른다. 백담사에서 수렴동을 타고 오세암과 봉정암에 이르는 이 숲길은 예사로운 길이 아니다. 1400여 년 전, 문수보살로부터 진신사리를 전해 받고 귀국한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실 만한 길지(吉地)를 찾아 나선 구도의 길이었다. 또한 3.1 독립운동마저 실패로 끝나고 민족 전체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1920년 대 중반, 만해가 사색과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님의 침묵>을 잉태시킨 유서 깊은 그 숲길이기도 하다.
수렴동을 따라 영시암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숲길은 등산로라기보다는 차라리 산책로에 가깝다. 하늘까지 치솟은 미끈한 아름드리 금강송과 늠름한 전나무가 우거진 완만한 숲길은 영시암까지 계속된다. 영시암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회장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저녁 공양 전에 오세암에 도착해 짐도 풀고 샤워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서둘러 달라는 부탁이다.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힘겹게 내딛는 보폭 25cm 내외의 나의 작은 발걸음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산행은 또 다른 수행의 모습이다. 60이 넘은 연세에도 젊은이들과 함께 이번 순례길에 나선 노보살님의 모습을 뵈면 차마 힘든 내색을 할 수 없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마지막 깔딱 고개를 넘어서니,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 오세암이다.
생애 한 번이라도, 오세암
서둘러 방 배정 받고, 얼음보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끝내고 절 마당에 서니 내설악의 수려한 영봉들과 산자락에 걸린 저녁 햇살이 그림처럼 곱다. 샤워를 마친 맨살 위로 불어오는 바람 끝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고된 산행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개운한 기분으로 미역국과 오이무침으로 저녁 공양을 들었다.
법당엔 불 밝힌 지 오래인 듯하고, 바람소리·물소리·새소리가 어우러진 산사의 새벽 공기는 소쇄(瀟灑)하다. 만해가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졌던 오세암의 새벽이 조금씩 밝아 온다. 6.25의 전란 속에서 철저히 파괴된 오세암에는 그 어디에도 만해의 흔적을 찾을 길 없다. 다만 천세 전부터 오세암을 연꽃 마냥 감싸안은 관음봉, 나한봉, 사자봉 망경대로 이어지는 내설악의 연봉들만이 옛 내력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침 공양 후 주지스님의 안내로 망경대에 올랐다. 해발 922m의 망경대는 동서남북 내설악의 모든 능선들이 한눈에 조망되는, 내설악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다. 파노라마처럼 밀려드는 설악의 암릉들 앞에 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여행의 마무리
지면상 봉정암에서 1박 후 소청·중청·대청을 거쳐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했던 나머지 일정은 생략한다. 하지만 8월의 뜨거운 햇살마저 무색케 한, 숨막히도록 아름다웠던 천불동 계곡의 비경은 살아가는 내내 잊지 못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한 교사불자회 관계자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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