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정(惡政ㅡ나쁜 통치)에는 네 종류가 있지만, 몇 가지가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첫 번째는 폭정 또는 압정이다‧‧‧두 번째는 지나친 야심이다‧‧‧세 번째는 무능, 또는 타락이다‧‧‧마지막인 네 번째가 독선, 또는 아집이다.
ㅡ 바버라 터치먼의 《바보들의 행진》에서 인용
<3천 년을 이어온 오만한 통치자들의 역사>를 다룬 바버라 터치먼의 《바보들의 행진》은 수천 년이 흘러도 하나도 발전하지 않은 통치술(과 그 폐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이 풀어낸 핵심내용인 위의 인용문은 얼핏 봐도 대한민국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리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절묘할 정도로 맞아떨어집니다.
악정, 즉 나쁘거나 잘못된 통치의 네 가지 종류 중 첫 번째인 폭정 또는 압정은 국정원과 정치검찰, 경찰과 군대(육사) 같은 국가권력기관과 공권력을 동원한 통치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여기에 조폭언론인 종편과 극우단체( 일베와 탈북자단체 포함)까지 더하면 박근혜의 통치는 민주주의보다 폭정 또는 압정에 가깝습니다. 제왕적 권력을 멀리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하면 답이 분명히 나옵니다.
두 번째 악정인 ‘지나친 야심’은 ‘지하경제 양성화’ ‘100% 대한민국’ ‘통일은 대박’ ‘제2의 중동특수’ ‘부정부패 일소’ ‘대한민국 개조’ 같은 것에서 넘쳐납니다. 일찌감치 파기하거나 축소한 (그러나 법인세 인상과 부자증세를 하면 가능한) 장밋빛 공약까지 더하면 박근혜의 야심은 지나치다 못해 절대군주의 망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지나치게 초라하리라!'가 가장 어울릴 박근혜 대통령의 '지나친 야심'은 자신은 물론 박정희의 생얼까지 드러내는 최악의 한 수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국민들이야 죽어날 지경이지만, 잘못된 선택에 대가는 치러야 함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니 지옥 같은 세상은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악정인 ‘무능 또는 타락’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넘쳐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모든 국민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은 메르스 확산과 세월호 참사에서 무능은 화룡점정에 이르렀습니다. 타락은 국정원 댓글사건과 NLL포기논란, 사초실종, 꼬리 자르기 등에서 떠넘기기와 무책임의 형태로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악정인 독선 또는 아집은 그 자체로 박근혜입니다. 원칙으로 써놓고 독선으로 이해하는 것과 소신으로 써놓고 아집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대통령 중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박근혜 정부 3년차까지 그녀가 보여준 것은 독선과 아집의 레이저 난사에서 공포의 수첩인사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바버라 터치먼이 박근혜의 통치를 지켜봤다면 4개의 악정을 넘어 ‘무지’와 ‘미스터리’라는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의 종류를 추가했을 것입니다. 행정과 통치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 유체이탈을 수시로 하는 미스터리까지, 나쁜 통치의 거의 모든 것을 실천하고 있는 박근혜는 최악의 대통령 사기꾼인 이명박보다 더 나쁜 평가를 받는 것은 떼논당상입니다.
최근에 들어 대한민국은 탈출구가 없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나쁜 통치와 정치의 부재가 혼합되면서 국민이 감수해야 할 피해와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폐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메르스 사태’가 두 달 이상 지속되면 대한민국은 회복불능의 단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엔저와 유로 환율처럼 외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몰락은 거의 다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핵심에 박근혜 대통령의 악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고리3인방을 비롯한 십상시가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의 눈과 귀까지 가리고 있으니, ‘메르스 확산’의 폭주에 전 세계가 경악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두 번 다 선택을 잘못한 대가가 정부부채 급증과 가계부채 1100조 시대, 세월호 참사와 작금의 ‘메르스 사태’로 귀결됐습니다. 현 집권세력이 저주를 퍼붓고 수없이 부관참시한 노무현 대통령을 이 여섯 가지 종류의 악정에 대입해보면 누가 좋은 지도자이고 누가 나쁜 지도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2003년에 중국은 물론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사스를 가장 완벽하게 대처한 방역의 모범국에서, 정부의 무능과 안일 때문에 메르스 바이러스 수출국으로 추락하는데 12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언론과 보수세력들이 매일같이 욕하고 비난했던, 바로 그 대통령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는지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때는 우리에게 노무현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 앞에서 당당했고, 일본의 도발을 무력화시켰고,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사스에 단 한 명의 피해자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보 공개에 투명했고, 국민의 불안감을 직접 달래주었고, 국민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함께 대처했으며, 물샐틈없는 방역으로 국민을 지켜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지켜주지 못했지만, 모든 문제들을 짊어지고 떠난 그를 떠올리면 '그래, 그때는 우리에게 바보 노무현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노무현 지우기(세월호 참사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사고예방종합대책과 사스를 완벽하게 방어해낸 방역체계까지 지운)가 메르스 사태의 배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P.S. 패러다임 이론을 창시한 과학자는 토마스 쿤으로, 그의 명저 《과학혁명의 구조》에 자세한 개념이 나와 있습니다. 패러다임이란 하나의 탁월한 과학이론이 출현해 무수한 검증과 도전을 이겨내면 과거의 정상과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정상과학의 지위를 획득합니다. 그럴 경우 이전의 정상과학은 폐기됩니다. 뉴턴역학이 상대성이론, 상대성이론이 양자역학으로 대체되는 과정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성되는 예입니다.
이에 비해 칼 포퍼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에서 반증주의를 제시했습니다. 그의 반증주의는 뛰어난 과학이론(단순해서 논박의 가능성이 높을수록 좋은 이론이다)이 단 하나의 반증으로 부정되면 참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진리의 반열에 오르려면 모든 반증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렇다고 반증된 이론들이 폐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과학철학자인 장하석이 과학적 다원주의로 두 거장의 주장을 장점을 수용하고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폐기된 과학이론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고 주류과학에 도전하는 시민과학(소스필드, 가이아 이론 등이 대표적)에도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명한 경제학자 장하준 캠브리지 경제학교수의 친동생입니다. 둘의 유전자가 특별난 가 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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