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때문에 졌다.”
미국 야구팀 텍사스의 배니스터 감독은 경기가 역전패로 끝나자 기자들을 불러 추신수가 패배의 원인이라고 떠들었다. 4-2로 리드하던 8회, 추신수가 자기 앞으로 날아온 타구를 쓸데없이 3루로 송구하는 바람에 동점의 빌미를 만들어줬다는 것. 추신수의 플레이가 그리 현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 때문에 졌다는 말엔 수긍하기 어려웠다.
뜻밖의 질책에 추신수는 화가 났고, “그렇게 잘하면 감독이 직접 글러브를 끼고 하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감독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추측을 하자면 이렇다. 배니스터는 올해 텍사스 감독으로 부임한 초짜 감독이다. 팀을 잘 이끌어 좋은 성적을 거두려는 마음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중심에 서야 할 추신수가 너무 못한다. 4월 한 달간 타율은 1할이 채 안됐고, 시즌의 절반을 향해 가는 지금도 2할3푼대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수비가 좋은 것도 아니고, 도루는 한 개도 없다. 도대체 이런 선수를 왜 연평균 200억원가량을 주며 데리고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감독의 질책은 그동안 쌓인 불만이 엉뚱한 곳에서 터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다행히 감독과는 화해를 했지만, 추신수는 요즘 위기다. 작년의 부진은 부상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올해마저 못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 말이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서른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7년 계약 중 첫 2년을 이렇게 망친다면 내년, 내후년의 성적은 더 암담하지 않겠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텍사스 팬들도 추신수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발 빠르고 선구안도 좋은 데다 홈런도 많이 치는 선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현지 언론에서는 심심치 않게 ‘먹튀’ 얘기가 나온다.
‘먹고 튀었다’의 줄임말인 먹튀는 많은 돈을 받고 입단한 선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그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고 먹튀가 꼭 스포츠에만 국한되는 개념은 아니다.
대통령을 예로 들어보자. 대통령의 연봉은 2억원가량 된다. 수많은 비서를 거느리고, 안전을 위해 경호원을 둔다. 차는 방탄이 되는 에쿠스리무진으로, 가격은 20억원이다. 필요할 때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전용기도 있다.
퇴임 후에도 현직 때 월급의 95%를 받으니 평생 돈 걱정할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은 물론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급된다. 다시 말해서 국민은 십시일반으로 세금을 모아 대통령을 5년간 부리며, 이 기간 동안 대통령이 나라를 잘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이 기대에 부응하면 좋은 대통령이고, 그렇지 못하면 먹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최근 초등학교를 방문해 아이들과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던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일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취임식 때 대통령이 했던 선서를 가져와 봤다. 이 선서만 잘 지켜도 훌륭한 대통령일 테니까.
우선,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있는가? 대통령은 대선에 개입해 헌법을 유린한 국정원에 셀프개혁을 지시함으로써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국회와 싸울 때뿐이다.
둘째, 대통령은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현 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과 대화 자체를 안 하고 있다.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말한 것이 대통령이 한 노력의 전부.
국민의 자유와 복리증진은 어떤가? 카카오톡을 검열해 기존 사용자들로 하여금 텔레그램으로 옮겨갈 자유를 선사한 건 긍정적이지만,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의무는 빵점에 가깝다. 세월호 침몰 사고 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함으로써 인명피해를 키웠으며, 메르스 사태도 초기 대응을 잘못해 아플 때 병원도 못 가게 만들어 놨다.
마스크 쓴 사람들이 거리를 뒤덮게 한 게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취임식 선서의 대부분을 지키지 않고 있는 건 확실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위기다. 집권 1년차 때야 초반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작년과 올해의 거듭된 실정은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대통령의 임기가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서슬 퍼런 집권 초기에도 나라를 잘 이끌지 못했는데, 레임덕이 오는 내년, 내후년의 모습은 더 암담하지 않겠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박 대통령을 찍은 분들도 지지를 철회해, 철옹성 같던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 믿고 찍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대통령님,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먹튀, 그것도 역대급 먹튀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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