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생각해도 메르스 사태에는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총리가 국회에서 발언한 것으로 보아 대통령과 정부의 생각은 다른 것 같지만. “대통령께서 국정의 모든 일에 다 개입할 수 없다”, “환자가 한두명 생길 때마다 장관이 나서고 총리가 나설 수는 없다.” 아마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 정도가 기대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책임은 그런 공허한 것이 아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그리고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져야 할 실질적인 책임을 뜻한다. 정부의 대응과 메르스의 확산이 자연 사건과 우연의 연쇄가 아니라 국정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 운영의 ‘경향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 물을까.
대부분 사람이 동의하는 것,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것에 한정해도 그렇다. 좁게 잡은 방역 범위, 느슨한 격리와 감염자 관리, 삼성서울병원의 자체 관리 실패 등은 이의가 없으리라.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된 공통의 심층적 이유가 더 중요하다. 흔히 당국과 담당자의 실수와 무능을 말하지만, 이는 원인이 아니라 실패에 동반된 또다른 현상일 뿐이다.
짧은 글에 다 담기 어려우니 두 가지, 정책결정 과정과 국정의 우선순위 문제만 지적한다. 먼저, 정부의 정책결정은 이번에도 더디고 난맥이었으니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이 처음으로 메르스를 언급한 것이 첫 환자 확진 후 13일이 지난 시점이었다는 사실이나, 이른바 ‘컨트롤타워’를 둘러싼 혼란은 세월호 사건과 놀랄 정도로 판박이다. 한마디로 권위주의와 비효율의 기묘한 결합. 병원 명단을 밝히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도 같은 이유라고 짐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당국의 초기대응, 문제와 말썽을 줄이려는 노골적인 시도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외부효과’다. 첫 환자를 진단하면서 검사를 요구하는 병원에 메르스가 아니라면 책임지라고 했다는 것이 전체를 설명한다. 정책결정이 권위주의적이고 비효율적인데다 내가 책임까지 져야 한다면? 어떻게든 문제를 만들지 않고 조용하게 해결하고 싶은 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다.
국정의 기조와 우선순위가 미친 영향도 중대하다. 부실하고 허둥대는 국가방역체계가 초기대응의 실패를 예비한 것은 분명하다. 인력, 전문성과 역량, 리더십, 나아가 준비된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번 세월호를 빼닮았다. 이 역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니 짧게 봐도 국정 기조의 결과다.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후와 대비를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고요한 안전의 시기에 어떤 준비와 축적이 있는가는 국정의 지향과 대통령의 관심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관료와 정부조직이야 권력의 소재를 알아차리는 데 귀신같은 재주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의료 수출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마당에 ‘중동호흡기증후군’의 유입 가능성을 운운할 용감한 관료가 있을까.
역학조사관, 공공병원, 격리병상, 보건소 등 민낯이 드러난 국가방역체계에 이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신성장동력, 투자활성화, 규제완화와 같은 목표가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위험에 대비하는 투자는커녕 돈 되는 일을 하라고 다그치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방역체계의 어이없는 실상은 필연의 결과라 해야 한다.
망신을 주거나 화풀이를 위해 대통령까지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 꼼꼼하게 따지고 성찰해야 책임의 구조가 다시 조직되고, 그래야 위기에 대처하는 국가와 사회의 실력에 희망이 생긴다. 제2, 제3의 메르스가 반드시 있을 터, 대란으로 번지지 않을 길이 따로 없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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