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떨기(펌)

목회자의 이중직 허용

moonbeam 2015. 8. 12. 15:07

최근 예장통합 교단에서 목회자이중직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으나 언론의 보도를 보면 목회의 일에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다. 이중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법을 들어 정죄할 수는 없지만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안을 했다. 이외에도 현재 한 교단에서 부정적인 입장으로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고, 이미 예장고신 교단은 작년 총회에서 불가의 입장으로 확인을 했다.

 

 

 

이러한 경향을 종합해 보면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한 교단들의 견해는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목사가 목회에만 전념해야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제사장은 헌금으로 살아야지 다른 것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목회에 전념하지 않고 곁눈질을 하니까 부흥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도 작은교회의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내 주변에도 가족만 모아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곳도 여럿 있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교인들이 몇 명 되지 않는 교회들이 부지기수이다. 실은 개척교회라는 말 대신에 작은교회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전에는 교인수가 적으면 개척교회라는 말을 썼다. 이 말은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개척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작은교회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도 교인수가 늘어날 수 없기 때문에 쓰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 한국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생계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가족들의 먹을 것을 챙기는 것도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가족들 희생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교회를 꾸려나가는 것도 어렵다. 헌금을 낼 수 있는 교인들은 그 나마도 소수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20-30명 인원이 모인다고 해도 그중에 십일조를 내는 교인은 극소수에 속한다. 작은교회의 특징은 교인들이 주로 전도되어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신앙이 성숙되어 헌금을 낼 수 있는 상황까지 가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런 교회에서 목회자들 보고 교회당을 지키고 있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우울증환자가 되고 만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잊고 목회를 하라고 한다고 그게 잊혀지겠는가.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심리적 위축이 되고 그것이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이런 것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주고, 마음에 걸림을 주는 상황이 되면 그나마 유지되는 목회도 오히려 포기하고 놓게 된다.

 

 

목사가 이중직을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다. 더 잘 먹고, 잘 살려고 이중직을 하는 목사는 없다. 목회에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까, 오히려 목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중직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 늘어날 것이다. 목회 여건이 이전보다 좋아질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회자의 숫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 즉 목회지는 점점 줄고 있는데, 목회자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목회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목회를 교회당 세우고 사람 많이 모이는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적은 숫자이지만 공동체로서 서로를 보듬고 세워주고, 그래서 주의 제자로 세워나갈 수 있는 그러한 공동체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커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회가 아니라 작지만 교회로서 존재하는 그런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목사 생계 책임지는 목회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자기 일 하면서 주신 소명대로 소신껏 사역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도 이 시대에 교회의 사명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