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환경부도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다

moonbeam 2015. 9. 8. 10:19

환경부는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다. 환경부가 입주한 정부세종청사에는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음수대가 단 하나도 없다. 대신 환경부는 청사 곳곳에 생수보급기(말통)를 설치해 직원들과 방문객들에게 생수를 제공하고 있다.

환경부가 생수만 마신다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상징적이다. 하나는 수도정책의 책임 부서인 환경부조차 수돗물을 음용수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수돗물을 만들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마시게 해야 할 환경부가 수돗물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수돗물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하나는 환경부의 환경 감수성 또는 위생 전문성이 낙제점이라는 것이다. 생수는 지하수 개발, 플라스틱 병 제조, 상품 운반과 냉장 판매 등의 과정에서 자원 낭비뿐만 아니라 탄소 발생량이 대단히 많은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생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 석유로 계산된다. 또한 말통 생수는 용기를 재활용하기 때문에 세척 과정에서 남은 환경호르몬(브론산염 등)이 문제가 되고, 생수통 거치대들은 관리가 거의 안되기 때문에 위생적이지도 않다. 이런 생수를 식수로 택한 환경부라니….

이제 정수기와 생수 이용이 급격히 늘어 수돗물을 직접 마시거나 끓여 마시는 비중은 40%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수기의 물도 수돗물을 거른 것이고, 음료 및 주류 제조의 원수(原水)도 대부분 수돗물이다. 결국 수돗물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담당부서인 환경부는 수돗물 음용 의지를 놓아버렸다.

환경부의 수돗물 포기는 사실상 수돗물의 원수 관리 정책으로도 연결된다. 국민들이 수돗물을 음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강물의 오염인데, 환경부는 올여름 극심했던 녹조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하다 못해 용도가 없는 4대강 보들의 수문을 열어 수질을 개선하자는 제안조차 못했다.

지금 부산시와 대구시는 수돗물의 수질에 위협을 느끼고 진주 남강과 구미 상류로 취수원을 옮겨달라고 난리다. 하지만 진주와 구미까지 상수원을 올리면 유량이 줄어 취수할 물은 부족하고, 비용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또 상수원 하류에 대한 관심이 줄어 강은 하수구가 되고 만다. 일찍 강 본류의 취수를 포기한 영산강, 만경강 유역이 그런 경우인데, 중하류의 수질과 생태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다. 섬진강과 금강에서 생활용수, 공업용수 대부분을 빌려 쓰다 보니 비효율과 지역갈등도 극심하다. 그런데 인구 규모가 훨씬 큰 영남이 이 길을 간다면, 이는 물정책의 실패에 그칠 일이 아니다.

환경부는 예산의 3분의 2인 약 4조원을 물 분야에 쓰고 있고, 물정책의 최종 목표는 안전한 수돗물의 공급이다. 그런데 다가오는 수돗물 대란에 입을 다물고, 한가하게 대통령 공약인 대구 물산업클러스터(공단) 추진과 상수원보호구역 내 규제 완화만 챙기고 있다.

일찍이 이토록 무능력한, 아니 무감각한 환경부는 없었다. 1991년 두산전자 페놀사고로 환경청장이 물러나고 23명의 공무원들이 징계를 받았을 때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4대강의 식수가 오염된 것도 아니고, 환경부가 수돗물 관리 의지를 내려놓지도 않았다. 설악산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추진하기 위해 양양군과 전략팀까지 운영했다는 환경부, 자신의 본업인 수돗물에 대해서는 왜 이리 무관심한 것일까? 도대체 어디에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인가?

<염형철 |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