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행복을 모르는 아이들 ---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moonbeam 2015. 10. 8. 10:56

ㆍ한국 어린이 행복지수 OECD 꼴찌
ㆍ영어유치원 유명 사립초 외고·명문대…

ㆍ십 수년 동안 로봇 같은 삶…“꿈이 없어요”

이제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용은 부모가 제공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서울 시내 유명 국제중 한 곳에서 특목고, 전국 단위 자사고 등 명문고에 보내는 숫자가 일반중의 약 9배이고, ‘SKY’ 명문대의 절반이 자사고, 특목고 출신이다.
‘좋은 대학’을 보내려면 유치원 때부터 꾸준히 명문대를 향해 한 단계씩 올라가야 하는 구조다.

 



◆ 유치원 때부터…“뜀박질도 전에 ABC”

네 살 난 ㄱ양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 영어유치원에 다닌다. 파닉스, 회화, 사회, 수학, 중국어 등 학습 교과로만 꽉 찬 시간표는 어지간한 초등학교 시간표 못지않다. 유치원이 끝나면 원어민 선생님의 그룹과외가 기다린다. ㄱ양의 엄마 ㄴ씨(32)는 “영어유치원 커리큘럼을 마치면 중학교 수준의 심화 영어까지 마칠 수 있다”며 “사립초를 목표로 한 애들은 영어유치원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사립초등학생 중 유아기 영어 사교육을 1주일에 5시간 이상 받은 비율이 48.3%에 달한다.

영어유치원 한 달 평균 원비는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누군가에게 영어유치원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두 아이의 엄마 ㄷ씨(39)는 다섯 살 난 둘째를 구립 문화센터에서 하는 ‘걸음마 ABC’반에 보낸다. 한 달에 네 번, 각 2시간씩 수업을 듣는다. 수업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아이가 영어에 접할 기회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ㄷ씨는 “우리집은 애가 둘이라 여유가 없지만 만약 하나였으면 영어유치원에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아들 ㄹ군(12)을 사립초등학교에 보낸 ㅁ씨(41)는 최근 아이의 중학교 배정을 위해 관악구에서 마포구로 집을 옮겼다. ㄹ군은 1학년 때부터 소규모 그룹과외 위주로 역사, 논술, 과학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다. 영어유치원 출신인 ㄹ군은 토익 점수도 900점이 넘는다. ㅁ씨는 “아이가 국제중에 갈 실력은 안돼서 일반중학교를 다녀도 이왕이면 교육수준이 괜찮은 곳으로 가기 위해 이사를 왔다”며 “이곳에서 성적을 잘 받아 과학고에 진학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의 놀이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이 지난해 2월 서울 2개 초등학교 학생 121명을 상대로 실시한 놀이 관련 설문조사에서 ‘1주일에 1시간 이상 노는 날이 1~2일 이하’라고 응답한 아이들이 54.5%로 절반을 넘었다. 하루에 2개 이상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답한 아이들은 71.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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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들 “명문고 가야 명문대를 가죠”

‘영어유치원→사립초등학교’라는 과정을 거쳐 중학생이 되면 이른바 ‘명문고’라는 새로운 관문이 기다린다.

경기도 소재 국제중에 다니는 ㅂ양(14)의 일주일 생활은 명문고 진학을 목표로 꽉 짜여 있다. 기숙 생활을 하는 평일은 물론 잠깐 집에 들르는 주말도 다르지 않다. 논술, 수학, 영어학원 시간표를 따라가다 보면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 일요일 오후 6시까지 3시간 남짓만 쉴 수 있다. ㅂ양은 “전국 단위 자사고에 진학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한 과목이라도 삐끗하면 일반고에 가야 될지도 모른다”고 초조해했다. ㅂ양이 목표로 삼은 전국 단위 자사고는 매년 배출하는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외국 명문대, SKY대, 의대 등에 진학하는 곳이다.

ㅂ양처럼 국제중에 다니는 아이들은 전체 중학생의 0.08%에 불과하다. 최상위 아이들만 모이는 데다 경쟁률은 10~20 대 1 수준이고, 한 해 평균 학비가 1000만원을 상회해 ‘웬만한’ 아이들은 꿈도 꿀 수 없다. 서울 강서구 일반중에 다니는 ㅅ양(15)은 외국어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2년간 학교가 파하면 목동의 영어학원으로 ‘출퇴근’해왔다. ㅅ양은 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이지만 항상 불안하다. ㅅ양은 “작년에 우리 학교에선 외고 합격생이 한 명도 없었다”며 “목동 학원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일년에 (자기 학교에선 외고를) 수십명도 간다는데 난 아무리 해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극소수만 생존…고등학생의 ‘절망’

고등학교는 명문대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동시에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서울 강동구 자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ㅇ군(17)은 화학과 수시전형을 목표로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교내 수상실적, 내신점수 등을 관리해왔다. 자기소개서를 위해 틈틈이 화학과 관련된 공개강의를 듣거나 과학캠프에 참여했다. ㅇ군은 “고1 때까지는 의대 진학이 목표였는데 내신이 그렇게 좋지 않아 화학 쪽으로 진로를 돌렸다”며 “차라리 일반고를 갔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 소재 일반고 3학년인 ㅈ군(18)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빼곤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ㅈ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후로 학교에서 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주말에는 독서실에서 홀로 예습, 복습을 한다. ㅈ군은 원래 과학중점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추첨에서 떨어져 집 주변의 일반고에 갈 수밖에 없었다. ㅈ군은 “우리 학교는 한 반에 대학 갈 생각이 있는 애들이 5~8명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다”며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하지만 지금 와서 학원을 다닌다고 성적이 오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아이들도 막막하긴 매한가지다. 서울 소재 특성화고 관광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ㅊ양(17)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전공을 살려 현지 통역사로 취직하고 싶다”며 “부모님이나 주위 어른들이 대학을 나와야 오래 직장을 다닐 수 있다고 해서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행복도 꼴찌, 경쟁에 치이는 아이들

무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행복도는 세계 꼴찌다. 한국의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는 약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맴돌고 있다. 지난해 한국 아이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23개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자살한 학생 중 성적비관을 이유로 목숨을 끊은 학생의 비율은 2012년 11.5%에서 2014년 8월 기준 22.9%로 늘었다. 어떤 아이는 실력이 부족해서, 어떤 아이는 돈이 없어 경쟁에서 미끄러진다. 애초에 사다리를 붙잡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아이도 있다. 분명한 것은 대학입시를 정점으로 한 무한경쟁 구조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행복할까.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