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할 5가지
박근혜 정부 교과서 국정화 논리, 유신때 보고서와 비슷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평등교육실현을위한학부모회 소속 회원들이 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열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1만명 학부모선언 기자회견‘에서 한국사 국정화를 중단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5.9.7 (세종=연합뉴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평등교육실현을위한학부모회 소속 회원들이 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열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1만명 학부모선언 기자회견‘에서 한국사 국정화를 중단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5.9.7 (세종=연합뉴스)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고 합니다. 정부는 다음 주에 ‘단일 국사 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위해 여권은 ‘프레임’도 만들고 있습니다. ‘국정화 전환’이라는 표현이 아닌 ‘교과서 정상화’ 또는 ‘단일 국사 교과서 사용’이란 표현을 쓰기로 한 것인데요.

교과서 국정화에 관해 그동안 <한겨레>가 쓴 기사 5개를 모았습니다.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5가지입니다.

1. 국정화 교과서 논란은 이렇게 진행돼 왔다

2015년 9월, 교육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 고시 일정에 맞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결정합니다. 교육부는 지난 2년 동안 여론 동향을 살펴왔습니다.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지점까지 온 겁니다.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국정화를 떠받치는 ‘미신’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국정화 저지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국가가 직접 편찬해 저작권이 국가에 있는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라고 합니다. ‘검인정 교과서’는 민간 출판사가 국가의 검정·심사를 통과한 뒤 발행한 교과서입니다. 우리나라 현행 역사교과서는 검인정 교과서 체제입니다.

1895년 처음 근대교과서가 발행됐고, 이후 검인정제도가 줄곧 유지됐습니다.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가 들어섰고, 이듬해인 1973년 국정체제로 바뀌어 1974년 2월부터 배포됐습니다.

국정교과서 폐해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2007년 다시 검인정체제로 바뀌었습니다. 교과서 명칭도 ‘국사’에서 ‘한국사’로 바뀌었습니다. (▶ 바로가기 : [타임라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2. ‘국정화 반대’ 교수·교사·학부모 반대 한달새 5만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이하 한국사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예상을 뛰어넘어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도화선은 9월2일 서울대 역사 관련 5개 학과 교수 34명과 전국 역사교사 2255명의 이름으로 낸 성명이었다. 5일 현재까지 불과 한달 남짓 동안 한국사 국정화에 반대하는 선언과 성명에 참여한 교수·교사·학부모 등의 수가 5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여기에 각종 단체 명의로 반대 선언에 참여한 사례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크게 늘어난다. 선언·성명 발표 횟수도 43차례에 이른다. (▶ 바로가기 : 들불처럼 번진 ‘국정화 반대’ 한달새 5만명을 훌쩍 넘겼다)

3. 북한과 방글라데시, 몇몇 이슬람 국가만 쓰는 국정 교과서

“국정제를 근간으로 교과서를 발행하는 나라는 북한, 방글라데시, 일부 이슬람 국가 정도다.”

방지원 신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한겨레>에 국정 교과서가 왜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퇴행적인 제도’인지를 보여주는 ‘수치’를 공개했다. 방 교수가 지난해 작성한 ‘외국의 역사 교과서 발행 제도에 비추어 본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전환 시도의 문제점’을 최근 수정·보완한 자료를 보니, 국정제를 전면적으로 채택한 나라는 북한·방글라데시와 종교적 특수성이 강한 몇몇 이슬람 국가 정도다. 이밖에 경제적으로 워낙 어려워 민간에서 교과서를 편찬할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거나, 내전중인 나라, 일부 독재국가에서 국정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바로가기 : “국정교과서, 북한·방글라데시·몇몇 이슬람국 정도만 남아”)

4. “5·16은 혁명” 유신 정당화 도구로…‘용비어천가’ 된 국정교과서

일제강점기에도 초등은 국정, 중등은 검정으로 교과서 발행체제가 운용되었다. 검정 또한 사상 검열의 장치였다.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정권이 1974년 강행했다. 당시 검정 체제의 11종 중·고교 국사 교과서가 중·고 각 1종의 국정 교과서로 통일됐다. 1972년 정부가 구성한 ‘국사교육강화위원회’ 소속 학자들은 사실 대부분 국정화에 반대했다. 교재의 획일화는 경직된 역사 인식 등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바로가기 : “5·16은 혁명” 유신 정당화 도구로…‘용비어천가’ 된 국정교과서 )

1973년 유신 때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안 보고(문교부)‘
1973년 유신 때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안 보고(문교부)‘
5. 박근혜 정부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리 유신때 대통령비서실 보고서와 판박이

“문교부는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위한 국사교육강화 방침에 따라 작년 5월 이후 교육과정의 개편을 통한 초·중·고등학교 국사과목의 독립 … 각종 시험에서의 국사과목 부과 … 등을 추진해오고 있던 바, 이번엔 그 일환책으로 중·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방안을 수립, 보고하여 왔습니다.”

유신독재 시절인 1973년 6월9일 대통령 비서실 보고서인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안 보고(문교부)>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리와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리’가 판박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해 6월18일 서명한 이 보고서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 6개 항목’을 보면, 박근혜 정부와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주장과 차별성을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박정희 정부는 이듬해인 1974년 1학기부터 전국 학교에서 국정 국사 교과서를 쓰도록 했다. ( ▶ 바로가기 : 박근혜정부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리 유신 때 청와대 보고서와 판박이)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