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맛 그리고 멋(펌)

14년째 노숙자들의 엄마이자 주치의

moonbeam 2015. 11. 9. 14:50

가난해서 건강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을 14년 전부터 무료로 진료하는 의사가 있다. 도티기념병원 내과 최영아 과장이다. 수수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녀는 노숙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였다.

최영아 과장이 노숙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990년 학교 선배들과 함께 나간 급식봉사에서부터였다. 청량리역에서 비를 맞으며 식판에 밥을 받아먹는 노숙자를 보고 의대생이던 최 과장은 ‘저들은 어떤 병이 있을까’ ‘병이 너무 많을 것 같다’고 느꼈다. 이런 호기심은 그녀가 내과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과질환은 무엇을 먹느냐, 얼마나 규칙적으로 생활하느냐가 중요해요. 정신이 바르고 생활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나을 수 있죠. 근데 노숙을 하면 건강해질 수가 없어요. 노숙자는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없으니까 더 자주 만나서 진료를 하고 싶었죠.”

최 과장의 개인사도 노숙자를 치료하는 길로 이끄는 데 한몫 했다. 그녀는 의대 진학 전 2년 동안 몸이 아팠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무엇보다 컸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해 가세는 기울고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의 사이마저 좋지 않았다. 가족이 해체되는 경험을 하면서 길에 있는 노숙자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다.

“때로는 노숙자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내 아버지, 내 남편 같기도 해요. 요즘에는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노숙자 건강은 그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학시절부터 갖게 된 노숙자에 대한 관심은 내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나서 그녀의 발길을 무료 진료 병원으로 이끌었다. 의사는 병이 많은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고, 아파서 죽어가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 과장이 노숙자와 함께해온 세월이 벌써 14년이다.

2001~2004년은 청량리 다일천사병원 원장으로 있었고, 2004~2009년은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자원봉사 의사로 일했다. 그곳에서 최영아 과장은 인생의 멘토인 고(故) 선우경식 원장을 만났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 곁에서 함께한 그를 보면서 의사는 환자의 삶에 관심을 갖고 마음의 상처까지 돌보는 것이 몸을 치료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립을 도와주는 것이 노숙자의 건강을 지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걸 깨달은 그녀는 2009년 서울역에 다시서기의원을 열었다. 비영리 민간단체 ‘마더하우스’도 만들었다.

“마더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여성 노숙자를 70명이나 만났어요. 여성 노숙자의 삶을 알 수 있는 계기였죠. 그녀들 중에서는 고아도 있었고, 입양됐다가 다시 버림받은 노숙자도 있었고, 힘들게 직장생활하다가 이혼하고 노숙자가 된 사람도 있었어요. 그중 대여섯 명은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있어요. 한 노숙자를 오랫동안 만나다 보면 그들에게 저는 가족이 돼요. 가끔 저 몰래 술 마시다 걸려서 혼나는 노숙자도 있지만 좋은 쪽으로 변한 분도 있어요(웃음). 사이버대학도 다니고 우리 단체에서 함께 일하는 분도 계세요.”

 

무료 진료를 제공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

노숙자 곁에서 14년 동안 그들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지만, 최영아 과장은 노숙자나 외국인 근로자 같은 의료 취약 계층에게 무조건 무료 진료가 답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노숙하던 사람들이 아파서 병원에 오면 치료해주고 나서 그들을 다시 거리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또다시 아파서 병원에 오는 악순환을 만든다.

“노숙자의 건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을 제공해줘야 해요. 집을 주고 의료 상담이나 직업 상담을 하면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노숙자의 의료정책뿐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까지 개선하고자 하는 당찬 그녀는 앞으로도 ‘홈리스’가 ‘홈(Home)’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만성질환을 가진 노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물론 노숙자의 건강도 돌보면서다.

“죽어가는 사람, 버림받아서 몸이 망가진 사람들을 보는 게 괴롭지는 않아요. 인생의 처음과 끝을 미리 보는 것 같아 오히려 인생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죠. 저는 환자와 더 깊이 있는 관계가 되길 원합니다. 의사가 그들의 삶을 잘 이해해야 최상의 진료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할 겁니다.”

 

취재 김련옥 헬스조선 기자 사진 김지아 헬스조선 기자

<이 기사는 월간 헬스조선 2015년 6월호에 실린 콘텐츠로, 헬스조선과의 제휴로 게재합니다.>

엠프레스 편집팀 mpress@mpress.kr

<저작권자 © 엠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