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맛 그리고 멋(펌)

'개념 식당' 달고나

moonbeam 2015. 11. 7. 10:02


“바로 옆 건물에 있잖아요. 근데 셔터 내렸어요.”

6일 서울 마포구 독막로 상수역 사거리. 김밥가게 앞에서 담배를 문 남성이 무심하게 말했다. 이탈리안 식당 ‘달고나’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이유는? 이 식당의 특별한 ‘영업휴무 공지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안 식당 ‘달고나’엔 커다란 간판이 없다. 눈앞에 두고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스테이크·파스타 맛집으로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이 식당을, 맛을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휴무 공지’를 ‘확인’하려고 골목을 빙빙 돌았다. 내려진 셔터에 작은 종이가 붙어있는 것을 겨우 발견했다.

‘달고나’ 측이 붙인 <영업휴무공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길고 지루할 겨울 문턱에서 충전과 사색을 위해 11/2~11/10(9일간) 가게문을 닫습니다. 먼 길 오신 손님들께 죄송합니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건설이 가능하다’ -K.마르크스-”

이탈리안 식당 ‘달고나’의 셔터에 붙여진 휴무 안내문. | 송윤경기자 kyung@kyunghyang.com




여섯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는 아늑한 이 비스트로 식당은 직장생활을 하던 프로듀서 출신 김정훈·강수연씨가 2009년 차렸다. <한겨레>가 2010년 2월7일 게재한 기사 ‘식당을 열다 내 공화국을 펼치다’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08년 9월부터 이탈리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식 기행’을 했다. 정직한 가격에 섬세한 식감을 살린 음식을 만들어 입소문을 탔다. PD 출신답게 두 사람은 창업 스토리를 담아 ‘달고나 식생활 기행 프로젝트’라는 영상을 만들어 ‘달고나’ 블로그에 올려놓기도 했다.

< 계절 밥상 여행>의 저자이자 칼럼니스트 손현주씨도 ‘와인이 좋다’라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 식당을 소개했다. 여행과 먹는 것을 좋아했던 두 사람은 “전셋값을 빼” 비행기를 타고 몰타에 날아가 영어를 배웠고 이탈리아로 넘어간 뒤 볼로냐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식당에서 한국인 쉐프 최경준씨를 만났다. 그리고 최 쉐프는 김정훈·강수연씨와 함께 ‘달고나’ 초창기 멤버로 일하게 된다. 최 쉐프는 이후 이탈리아 대사관을 거쳐 현재 자신의 가게를 연 ‘오너 쉐프’가 됐다고 한다.

‘주5일제 실시’를 알리는 안내문 (출처: ‘달고나’ 블로그)



사실 ‘달고나’는 원래부터 ‘잘 쉬어야 일도 잘 된다’는 걸 아는 식당이었다. ‘달고나’의 블로그에선 개업 1년이 지난 뒤 더 좋은 질의 음식을 내놓기 위해 주5일영업제를 시행하기로 했다는 사진도 발견할 수 있다.

19대 총선 다음날에는 갑작스럽게 식당문을 닫기도 했다.

2012년 4월 이광용 KBS 아나운서는 ‘달고나’의 휴무공지문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고 당시 이 사진은 유명인들이 재전송하며 화제가 됐다. 당시 <머니투데이>(2012년 4월13일)는 ‘총선 후유증으로 휴업한 이태리 식당 달고나, 이유 들어보니…’라는 기사에서 ‘달고나’ 사장의 말을 전했다.

“우리 같은 영세업자들은 카드 값에 허덕이고, 가계부채에 힘들다. 대출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고민하는 상황에서 11일 (19대) 총선 결과는 허탈한 심정을 안겨줬다. 마음이 안 좋은 상태에서 영업을 하는 것보다는 정신을 차릴 때까지 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달고나’의 ‘가을휴가’가 화제가 되고 있다. 누리꾼 김모씨(30)는 “‘경제를 부패시키자’던 일본 빵집이 생각난다”고 평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통해 소개된 일본 오카야마현 가쓰야마의 빵집 사장 와타나베 이타루는 일주일에 사흘은 가게를 닫고 일년에 한 달 장기 휴가를 간다고 한다.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경영으로도 유명한 빵집이다.

관련기사>> [책과 삶] 경제를 부패시키자

와나타베 이타루의 시도는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든 한국 자영업자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이탈리안 식당 ‘달고나’ 역시 그저 “노동시간을 줄여야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건설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덧붙여 9일간의 영업휴무 공지문을 붙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다수의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부러운 일이다. 혹시 두 사장이 ‘건물주’이거나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 아니었을까.

‘달고나’의 사장 김정훈씨는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매달 직원들과 월급 나눠 가지면 남는 게 없어요. 월세도 계속 오르고 있고요, 임대차보호법에서 정한 (임차인 보호기간) 5년을 넘겼기 때문에 내년 가을에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군말 없이 나가야 할 판이에요. 그리고 이 가게 망하면 그 다음은 막막하죠. 하지만…그 걱정 때문에 각박하게 살고 싶진 않았어요.”

김사장은 “쉬어야 인생의 새로운 방향이 보인다”고도 강조했다.

“인생의 기회는 일 더 해서 돈 더 벌어야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쉬면서 사색을 해야 보인다’고 젊은 직원들에게 많이 말해요.”

원래 여름휴가가 있지만 “다음 휴가까지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일년에 두번 쉬자”고 생각해 올해부터 가을휴가를 만든 것도 ‘쉬어야 잘 산다’는 두 사장의 철학 때문이다.

대단한 ‘실험’이 아닌 그저 9일간의 가을휴가 선언. 그리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싶다’는 ‘사장님’의 생각을 드러낸 한줄의 인용문. 단지 이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재미있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마저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달고나의 ‘탈라텔레 생면과 볼로네제 라구소스’ (출처: 손현주 작가의 ‘와인이 좋다’ 블로그)



‘달고나’ 블로그에 게재돼 있는 식당 뒤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