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맞아 이재철(66·100주년기념교회 담임) 목사를 만났다. 그는 2013년 암 수술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도 수십 차례나 받았다. 기운이 떨어질 법도 한데 한 달에 3주 직접 주일설교를 한다. 일요일 하루만 네 차례 설교를 하는 강행군이다. “한때는 치료받느라 기운이 너무 떨어져 설교문을 그냥 읽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다 외워서 주일설교를 한다”는 그의 눈은 맑았다. 희끗희끗한 흰머리 아래 까만 머리칼이 염색이라도 한 듯 자라고 있었다.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목회자 1위. 종교를 뛰어넘어 일반인들에게도 정신적 멘토로 받아들여지는 이다. 지난 16일 서울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삶을 직선으로 살지 마라”며 청년들을 향한 메시지를 먼저 꺼냈다.
신학생이 만나고 싶은 목회자 1위
이재철 100주년기념교회 목사
“인생을 직선 위에서 살면 만족이 있을 수 없다. 항상 내 앞에 누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어른들은 자식들을 직선 위에 줄 세워놓고 키웠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다. 직선의 시대가 아닌 360도 원의 시대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누구든지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직선이 아니기에 항상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 굳이 선두주자가 아니어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며 살 수 있다. 반면 직선 위의 삶은 좌절감과 박탈감만 있다. 금수저, 은수저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직선에서 원으로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남의 눈으로 인생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자기 눈으로 삶을 살면 기회는 늘 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채용에 한 나라 대학생의 절대다수가 응시한다. 이게 직선 위의 삶이다. 물고기를 산에 가서 구하면 없다. 다른 사람에게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생을 살려는 독창력을 지녀야 한다. 트럭 운전을 하던 조지 루커스 감독이나 스티브 잡스도 남이 만든 직선 위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었다.”
이 목사는 ‘예수의 가슴’을 통해 좌와 우, 보수와 진보로 쪼개져 갈등하는 우리 사회의 진영 싸움도 지적했다. “예수님 그늘에 세리(세금징수원) 마태가 있었다. 당시 유대인이 보기에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였다. 마태 옆에는 시몬이 있었다. 칼을 들고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열심당원이었다. 시몬의 눈에 마태는 ‘제거 대상 1호’였고, 마태의 눈에 시몬은 천하대세를 모르는 철부지 아이였다. 결코 함께할 수 없는 두 사람이 예수의 테이블에는 나란히 앉았다.”
- 그건 예수의 무엇 때문인가.
“그리스도는 모두를 품기 때문이다. 예수를 주인으로 모신 교회라면 달라야 한다. 교회 안에 여도 있고 야도 있고,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고, 경영자도 있고 노조도 있어야 한다. 그들이 예수로 인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훈련을 거친 이가 나중에 지도자가 되면 다르지 않겠나. ‘내 입장은 이렇지만 네 입장도 들어보자’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대통령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여당 편만 드는 교회, 야당 편만 드는 교회도 있다. 그건 이름만 교회일 뿐 정치결사대에 불과하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두 눈’을 주셨다고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외눈박이’로 살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교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두 눈을 갖는 거라고 했다.
- 외눈박이로 산다는 건 어떤 건가.
“눈앞의 현실만 보는 삶이다. 그럼 사는 게 괴롭다. 태풍이 몰아칠 때 그것만 보는 게 외눈박이다.”
- 또 하나의 눈은 뭔가.
“눈앞 현실을 뛰어넘는 눈이다. 자기 삶을 묵상해 보라. 그럼 수차례의 태풍이 예전에도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인생의 고비와 비바람이 자신을 얼마나 더 강하게 단련시켰는지 깨닫게 된다. 그게 또 하나의 눈이다. 그 눈으로 태풍을 대하면 고통을 넘어서게 된다.”
- 교회만 나가면 ‘두 눈’을 갖게 되나.
“‘예수 구원, 불신 지옥’으로 전도하는 시대도 있었다. 그렇게 전도된 사람들에게 예수는 ‘내게 복을 주는 또 한 명의 절대자’밖에 안 된다.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는 이들처럼 기복의 대상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두 눈이 없다. 하나님의 법 앞에서 ‘나는 정말 사형감이구나’를 통감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자기 부인(Self- denial)’이 시작된다. 그걸 통과하면서 ‘또 하나의 눈’이 생겨난다.”
이 목사는 지금도 암을 몸에 담고 산다. 그는 “암과 같이 산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암을 통해, 죽음을 통해 그가 체득한 삶의 깨달음은 대체 어떤 걸까.
- 죽음, 두렵지 않나.
“세상 모든 사람이 안 죽는다. 영원히 산다. 그런데 암에 걸린 사람만 죽는다. 그렇다면 죽음은 공포다. 그런데 사람은 모두 죽지 않나. 빠른가, 느린가. 단지 그 차이다. 그걸 깊이 알면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 죽음을 깊이 알면 무엇이 달라지나.
“삶이 달라진다. 삶 속에 죽음이 있듯이 죽음 속에 생명이 있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생(生)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사(死)가 있다. 나는 그 순서가 뒤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삶 다음에 죽음’일 때는 매일 열심히 살아도 날마다 공동묘지를 향해 가는 인생이다. 암에 걸려 보니까 확실히 알겠더라. 죽음은 내 몸속에 이미 들어앉아 있더라. 각자 자기 안에 죽음이 있어야 한다. 죽음을 품고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신비를 깨닫게 된다.”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처: 중앙일보] “청춘들, 직선 인생 살면 불행해요 … 원으로 살아야 늘 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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