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없어지는 날이 대한민국 언론이 좋아지는 날이겠죠”
[연말 기획 인터뷰] 현장취재 10년, 제1회 성유보 특별상 받은 미디어몽구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다. 수십, 수백여대의 카메라가 몰린 곳이든, 아무도 비추지 않아 소외된 곳이든 ‘누군가는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그동안 핸드폰 카메라에서 캠코더로 장비가 바뀌었고, 성실한 취재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수많은 네티즌들의 관심과 성원을 받을 뿐 아니라 각 방송사에서도 영상을 요청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생생한 현장을 담은 영상을 올리는 필명이 본명보다 유명한, 고 성유보 선생의 뜻을 기려 올해 처음으로 수상자를 낸 제1회 성유보 특별상을 받은 미디어몽구(김정환)가 그 주인공이다.
23일 오후 2시, 평소 가장 자주 출몰하는 현장 중 하나인 서울 광화문광장 부근에서 미디어몽구를 만났다. 10년 동안 발로 뛰며 ‘기록’에 열중해, ‘1인 미디어’라는 말을 대중적 용어로 끌어 올리는 데 기여한 그에게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위안부 할머니들 명예회복’ 문제
- 평생을 언론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고 성유보 선생을 기리기 위한 성유보 특별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가 주는 공로상도 받고 올해 상복이 많은 것 같다.
생각지도 못했다. 보통 어떤 단체에서 상을 줄 때에는 본인이 먼저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동안 어떤 작품을 쓰고 찍었는지를 정리해서 내면 심사위원들이 뽑아서 상을 수여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게 왠지 상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서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걸(공모할) 생각지도 못했다. 갑자기 성유보 특별상을 준다고 해서 어리둥절했다. 4~5일 전에 어느 분한테 ‘이건 비밀이야’라고 하면서 들었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셔서 고마웠다. 10년이나 활동하다 보니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준 것 같다. (한국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의 경우) 젊은 나이에 공로상을 받아서 약간 멋쩍었다. 그래도 기자들, 언론인들이 주는 상이어서 값졌던 것 같다. 처음 활동할 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은 1인 미디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구나, 같은 동료로 바라봐주고 인정해 주는구나 하고 느꼈다.
▲ 미디어몽구는 지난 18일, 평생을 언론자유 운동에 헌신해 온 고 성유보 선생을 기리는 성유보 특별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 (사진=미디어몽구 페이스북) |
- 올해로 현장에 나간 지 10년을 맞았다. ‘미디어몽구’의 시작이 궁금하다.
우연히 시작했다.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란이 일어난 2005년이었다. 집에서 9시 뉴스를 보는데 그때만 해도 사회 이슈 이런 걸 하나도 모르고 있던 터라 생각 없이 보고 있었다. 첫 뉴스부터 서울대병원에 중계차를 연결해서 황 박사가 입원했다는 걸 보여주더라. 모든 방송사 9시 뉴스에서 그 장면을 보여주기에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근처에 있기도 해서 강아지 데리고 산책 나가는 기분으로 서울대병원에 갔다. 그때 병원 입구에서부터 1층 로비까지 각 언론사들이 어떻게 취재하고 있는지를 ‘그냥 찍어갖고 올렸다’.
근데 다음날 다음 첫 화면에 올라갔고, 이틀 후에는 그쪽에서 “특종했다”고 연락이 오더라. 당시 다음에서 블로그뉴스라는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였는데 제의를 받아서 블로그를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가서 찍고 올리면 상금까지 주니까 좋아서 했다. 다음 블로그뉴스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모토처럼 ‘블로거들도 이렇게 취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아마 제가 나가서 찍어오는 걸 일종의 ‘취재’로 봤던 것 같다.
당시 휴대폰은 지금처럼 화질이 좋지 않아서 장비도 점점 진화했다. 휴대폰을 쓰다가 잘 찍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서 똑딱이(소형 카메라), 하이엔드, DSLR 이렇게 발전했다. 이후 블로그뉴스에서 활동하던 중 다음이 미니 캠코더를 제공해줬고 동영상을 찍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서 (동영상 쪽으로) 넘어오게 됐다.
- 몽구라는 이름은 어떻게 해서 나온 건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몽구다. (웃음) 블로그뉴스 서비스가 미디어다음 아래에 있어서 앞에 ‘미디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뒤에 쓰고 싶은 별명을 달았는데 그게 몽구였다.
- 그동안 많은 현장에 있었다. 지난해부터 세월호 참사 이슈를 꾸준히 쫓고 있고 민중총궐기, 희망버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항공조사위원회 출두 장면, 무상급식 중단 규탄 현장, 대한민국 건국 67주년 기념국민대회,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콘서트, 신해철 1기 추모식, 퀴어문화축제 등 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하지만 1인 미디어이기 때문에 모든 이슈를 동시에 챙길 수는 없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갈 곳을 판단하는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곳을 우선시한다. (중요도가) 비슷한 현안이 있는데 (언론 취재) 비중이 한 곳으로 쏠리면 덜 된 곳으로 간다. 모든 언론이 한 쪽 문제를 취재하러 가면 저는 다른 쪽에 가는 식이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위안부 문제다. 10년 동안 많은 현장을 다니며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현안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이란 생각을 했다. 그분들은 항상 낭떠러지에 서 계시는 입장이다. 생존자도 얼마 남지 않았다. 보수 진보 성향과 무관하게 많은 국민들이 바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일이 있어도 할머니들이 뭘 한다고 하시면 늘 달려갔다. 보람 있었던 취재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손발이 되어준 것이다. SNS 모금 통해서 희망승합차를 선물해 주고, 할머니들 해외 캠페인 갈 때마다 모금해서 필요한 물품 구비하고 1등석 마련해 드리고 했던 게 가장 큰 보람이다.
마감에 몰두해 빨리 현장 떠나려는 언론인들… “사명감 부족해 보여”
- 현장 밀착취재에 집중하는 언론과 1인 미디어가 계속 생겨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미디어몽구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미디어몽구의 영상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집에 돌아오면 이미 (제가 갔던 곳과 관련한) 텍스트 기사는 다 올라와 있다. 그날 현장 얘기를 담은 관련기사들을 쭉 훑어보고 제가 꼭 알려주고 싶은 장면이나 기사에 나와 있지 않은 장면, 단신이나 짧게 보도됐던 것을 중점적으로 편집해서 올린다. 제가 생각하는 제 영상의 장점은 진짜 쉬우면서 단순하고 꾸며지지 않은 생생함이라고 본다. 많은 분들이 보고 나서 “몽구님 영상을 보면 꼭 그 현장에 있는 것 같다”고들 하신다. 글을 쓸 때도 영상 편집할 때도 가장 단순하면서 쉽게 편집하려고 노력한다. (영상에 담겨 있는) 현안에 대해서 몰랐던 분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찍고 편집을 한다. 몰랐던 분들에게 무언가를 알리는 디딤돌 역할을 항상 하려고 하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봐도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게 포인트다.
- 같은 현장에 있었어도 보도가 안 되거나 짧게만 처리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편집한다고 말했다. 찍어가기만 하고 보도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가.
주류 언론, 특히 방송사들이 그렇다. 그 정도의 인력, 자본, 자료… 없는 게 없지 않는가. 그런데도 어떤 조직 내에 있어서 그런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 있다 보면 (방송사 기자들이) 빨리 마감하고 쉬려고 하는 장면을 종종 본다. 일단 있긴 하지만 상황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빨리 마감하고 가자”는 소리를 많이 하고 중간에 철수하기도 한다.
▲ (사진=미디어몽구 페이스북) |
- 처음 활동을 시작한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언론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보는지.
많이 안 좋아진 건 맞는 것 같다. 지금은 지상파 뉴스 같은 경우 앵커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만큼 안 본 지 오래됐다. 계속 보고 비판하고 관심 갖고 그래야 하는데. 방송사 속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싫어져서… 볼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뉴스타파에 있었으면서도 뉴스타파 선배들이 가장 존경스러웠던 게 뭐냐면 (주류 언론이 가진 모든 강점) 그런 걸 다 포기하고 왔다는 것이다. 방송사에 비해 모든 게 부족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가려고 험한 길을 다시 택했다는 게 존경스럽다. 반면 거기(방송사)에 계신 분들은 모든 게 다 만족스러운데 피 보지 않으려고만 하고, 옛날의 그 패기는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징계를 받더라도 무릅쓰고 공정방송을 사수하려는 의지가 보였는데 지금은… 사내에서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한다고들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지 않나. 그런 면에서 많이 안타깝다. 방송사에서 주는 높은 연봉 같은 혜택 때문에 꾹 참고 있는 건지… 제가 거기 있었으면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다. 그분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 언론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미디어법 개정 시도 때 MBC 구성원들의 1인 시위를 담기도 했고, 지난해 KBS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 사태 때도 현장에 있었다.
제가 강연에 가서 늘 얘기하는 게 그거다. 대통령을 욕하기 전에 언론인을 꾸짖으라고.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있지 않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인을 꾸짖어야 좀 더 건강한 사회가 된다.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권리를 짓밟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현재 언론사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언론장악에 맞서서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서 가는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그분들(싸우고 있는 분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힘을 좀 주고 싶어서 가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완전히 최악의 상황이어서 무기력해진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안타깝다.
- 잠깐 강연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면 주로 무슨 이야기를 전하는지 궁금하다.
페이스북 같은 개인 SNS 상에서 사람들은 보통 내 편이다. 어떤 현안에 대해 (내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이다. 좋아요가 많이 눌리고 공감한다는 댓글이 달린다. 악플이 없다. 사회 문제에 질려 있거나 잊으려고 하는 분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공감을 다시 환기시키고 관심이 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강연에 가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 고등학교에 가서 강연을 했는데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한 번의 강연이 그 학교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강연 들었던 친구가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도 찾고 <나쁜 나라>(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도 보았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더라. 꼭 제 이야기를 듣고 갔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언론이 제대로 됐으면 독립언론 생기지 않았을 텐데…”
- 2015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매년 어땠다고 되새기는 것도 좋지만 저는 다 똑같은 마음으로 찍고 편집하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 다 기억나고 다 열심히 했던 것이라서 한 가지를 꼽기는 어렵다. 10년 활동을 하다 보니 어떤 걸 올리면 반응이 뜨겁고 댓글이 많이 달리는지 예상할 수 있지만 그런 것에 연연해 일부러 그런 것만 올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늘 같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즐기면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조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압박도 없다. 촬영하고 나서도 빨리 올려야 한다는 경쟁이 있는데 그것도 신경 안 써도 되고. SNS 상에서 많이 공유됐던 어린이 합창단(대한민국 건국 67주년 기념국민대회에서 반공을 강조한 노래를 불렀음) 영상도 찍고 나서 나중에야 올렸다. 만약 올리는 시점 압박을 받았으면 금방 지치고 싫증났을 것이다.
▲ 올해 현장취재를 한 지 10주년을 맞은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 (사진=미디어몽구 블로그) |
- 10년 동안 미디어몽구를 현장에 있게 한 동력은 무엇일까.
후원자들, 제 영상을 봐 주고 응원해 주고 비판해 주는 분들이다. 10년 활동했지만 후원 받은 지는 2년밖에 안 됐다. 예전부터 시사 블로거로서 상은 여러 번 받았는데 상금을 언제 받는지가 늘 더 중요했다. 취재비용이 없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 쓰며 지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때 시사IN 고재열 기자, 뉴스타파 박대용 기자 등이 후원의 밤을 열어줘서 또 몇 달 버텼고 뉴스타파에 있다가 다시 미디어몽구가 됐을 때부터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고정 출연 중인데 <파파이스>를 통해서 후원자가 많이 늘었다. 예전에 시사IN 주진우 기자,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검찰 조사받을 때 촬영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고충을 털어놓았더니 김 총수가 “내가 몽구는 먹여 살릴게”라고 했었다. 그땐 빈말인 줄 알았는데… 너무 고맙다.
10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또 다른 원동력은 제가 주요 매체에 들어가지 않고 네티즌 곁에서 같이 소통하며 활동했다는 점이다. 배고픈 생활에도 크게 욕심내지 않고, 누구와 경쟁한다는 생각 없이 마음가짐을 바르게 먹었던 덕이다. 돈은 못 벌었지만 이 일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행복은 ‘사람’이다. 활동하며 만난 분들이 제게 큰 힘이 된다.
- ‘욕심 없이 활동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네티즌 분들이 콘텐츠 요청을 하면 저는 그냥 제공을 한다. 출처도 안 써도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저는 네티즌들에게 보여주려고 영상을 찍는 거니까 적어도 시청자들과는 저작권 문제로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게 마음도 편하고 홀가분하다. 10년 동안 이름이 차차 알려졌지만 변치 않는 모습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을 묻는데 그런 건 따로 없다. 언제나 가시밭길이었고 그걸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장벽이 있으면 헤쳐 나가고 그랬다. 힘들었지만 걸어온 길이 저한테는 더 소중하다. 굳이 꼽자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제 꿈이자 목표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어려운 게 변치 않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론들이 관심을 갖다가 쫙 빠졌을 때에도 그 현장에 남아서 함께 해 주는 게 1인 미디어의 역할인 것 같다. 지난 민중총궐기 때도 1인 미디어들이 자리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에 기록을 남길 수 있었고 실제로 그 영상들이 언론사에 제공되기도 했다. 그러니 1인 미디어에 많이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론인들은 제가 이렇게 활동하는 것을 보고 많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제대로 됐으면 대안언론, 독립언론이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닌가. 많은 네티즌들이 제 콘텐츠를 신뢰하고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을 봐도 그렇고. 제도권 언론들은 출입처에서는 대우받을지 모르지만 막상 현장에서 시민들과 맞닥뜨리면 야유 받고 대우도 잘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을 반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디어몽구가 없어지는 날이 대한민국 언론이 좋아지는 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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