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성가대 지휘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

moonbeam 2016. 1. 5. 08:34

오랜 기간 동안 성가대 활동을 해오면서 느낀 점을 대충 적어 본다.

성가대 지휘자는 일반 합창단 지휘자와는 다른, 쉽지 않은 여러 중요한 점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음악적 실력이다. 이 부분은 정상적인 전공자라면 어느 정도 수준은 될 것이니까 깊이 논의할 필요는 없다. 가끔 이상한 놈이 있기는 하지만ㅎㅎ. 그러나 어느 교회든 본성가대 지휘자라면 적어도 학부 졸업 후 한 5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좋다. 학부생 정도는 본성가대를 지휘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대개 대학에서 배우고 익힌 곡들 위주로 하기 때문에 그 음악적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 대부분의 지휘자는 1,2년 길어야 3년 정도 한 자리에 있다가 그만 두게 되는데 이는 레파토리가 딸리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끊임없이 새로운 곡들에 대해 파악하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충 배워 익힌 곡들로만 연주하기엔 찬양은 너무 크고 무거운 것이다.

지휘자에게는 대원들 개개인의 소리가 모두 다 입력되어야 한다. 이게 기본인데 대부분 솔리스트 정도나 파트별로 대충 들어맞는 음정 박자만 인식하고 그냥 넘어 간다. 솔리스트가 아니더라도 곡에 따라 딱 들어맞는 좋은 소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대원들 소리의 칼라(음색)나 성량, 음악성, 실력 등 모든 것을 파악해야 소리를 만들 수 있다. 어느 파트는 그 파트 안에서만 중창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많이 틀리는 경우) 그냥 넘어갈 때가 대부분이다. 틀린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대원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기도 하고 비전문성을 가진 대원들을 너무 몰아치면 스스로가 피곤해지니까 슬쩍 넘어갈 때가 많다. 그럴 때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도해서 정상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음악성은 무시하고 그저 성가대 자리가 좋아서 앉아 있는 이른바 붕어파트일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가르쳐야 한다. 대원들의 음악성을 완성시키는 건 지휘자의 끈질김이다.

대원들에게 맞는 곡을 선택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대원들이 소화하지 못한다면 쓸모가 없다. 각 파트 대원들의 능력과 한계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성도들을 파악해야 한다. 무조건 힘찬 곡이 호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아마츄어다. 음악을 가지고 듣는 청중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무조건 세고 힘찬 곡에만 반응을 보이게 이끌지 말고 조용하면서도 눈물을 뺄 정도의 곡에서도 느낌을 받도록 이끌어야 한다. 대원들의 음악적 소양을 가르쳐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청중 즉 듣는 성도들의 귀까지 열어주는 것이 지휘자의 큰 역할이자 능력이다.

자기가 고집하는 음악이 있어야 한다. 옛날에는 고전적인 합창곡 위주였지만 요즘은 새롭게 작곡되는 성가곡도 많아서 다양한 장르 속에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 기본적인 합창 발성을 위해서는 고전적인 곡을 연습하면 효과가 있으니 이런 곡들도 가끔 해서 기본적인 음악성을 갖추게 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 스타일의 음악만 계속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대원들을 위해서는 자기 고집이나 스타일을 버려야 한다.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해서 대원들의 음악적 자질을 높여 주어야 한다. 충분한 연습을 통해서, 매주 한 곡 한 곡 때우기 보다는 대원들이 음악적인 면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선곡할 필요도 있다. 대원들이 생소해 하거나 즐겨하지 않는 스타일의 곡을 마구마구 연습을 시켜서 무대에 올릴 수는 있지만 대원들 무의식에 이미 곡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없으니 공허한 소리지르기가 된다.

반드시 대학에서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 사회에는 전공은 아니지만 각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가진 고수들이 많다. 때론 다른 전공을 가진 사람이 더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다. 단순히 음악만으로 표현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비전공자에게서 놀랍게 살아 나오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비전공자들 중에는 유명음악인의 이름을 빌려 자비로 회비를 내면서 동호회 형식으로 운영하는 비전문적 합창단 멤버들이 제법 있다. 음악을 사랑하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활동까지 하는 것은 칭찬할 만하지만 전공자도 아니고 비전공자도 아닌 이들이 도를 넘어서 가끔 재며 전문가인양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들은 대개 창의력이 없다. 자기가 연주한 것을 가져와서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멤버나 현장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해 곡을 제대로 소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곡에 대한 발견이나 자기만의 음악이 없다.

 

둘째 신앙이다. 자기 나름의 뚜렷한 신앙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굳이 깊게 따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같은 교단의 신앙을 가진 것이 더 좋다.

음악하는 이들 중에는 성가대 지휘를 돈벌이나 알바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가끔 있다.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가 자기 수입의 전부이면 안된다. 물론 교회 지휘자 사례비로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알바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신앙적 기반이 없으면 정말 은혜스러운 곡들을 음악적으로만, 그것도 미숙하게 날려 버리기 쉽다. 또 악기나 인성(목소리)을 수입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주로 출연 횟수 당 페이를 요구한다.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며 일감을 찾는 떠돌이 음악꾼들이다. 이들은 자기가 배울 때 투자를 했으니 페이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페이를 주지 않으면 음악계를 이해도 못하고 수준이 낮다고 투덜댄다.

음악적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할지라도 신앙이 없으면 성가대 지휘자로는 0점이다.

 

셋째 신학적 지식이다.

신앙 즉 믿음과 신학은 다르다. 정열적인 믿음이 있지만 신학적으로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감성으로 흐르게 될 경우가 많다. 여기서 신학적이라 함은 교회 절기나 설교와의 일치성을 의미한다. 어느 목사는 일 년치 설교 제목과 성경 본문을 건네 준 적도 있다. 그것은 목회자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다. 일 년 동안의 계획을 통해 교인들을 확실하게 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 년이 어렵다면 적어도 두 달 전에 한 달 설교를 받아도 좋다. 성경을 꾸준히 탐독하고 그 뜻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설교의 중심내용에 대한 파악 그리고 교회력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에 맞춰 찬양을 한다면 정말 은혜스러운 찬양이 된다. 물론 그 의미를 대원들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넷째 지도력이다. 말하자면 카리스마, 통솔력이다.

이거 정말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교회 성가대원들은 착하다. 그런 착한 심성 때문에 지휘자가 조금 어긋나더라도 그냥 참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수가 많다. 그렇다고 무조건 독선으로 나가면 안된다. 무조건 지휘자는 대원들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나이가 많은 대원들에게 굽힐 필요는 없다.(인간적인 예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최고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대원들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그들이 가진 능력을

100% 이상 끌어내야 한다.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때 비로소 진정한 지휘자가 된다.

누군가가 대원의 자리에 앉으면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끝까지 보살펴야 한다.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챙겨 주되 점차 스스로 설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해야 되는데 다시 말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말은 하지 않지만 지휘자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촉을 발휘에서 그것까지 찾는다면 지휘자로서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할 것이다.

합창의 기본은 멤버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인데 대원끼리 서로 다정한 관계,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지휘자의 능력이다. 일반 합창단의 지휘자는 절대 권력자로서 권위와 힘을 가지고 멤버들을 이끌지만 성가대 지휘자는 대원들의 마음부터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풍요롭고도 다정다감한,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것을 아우르며 꼭 실천했으면 하는 가장 의미있는 요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계수단이나 용돈벌이 알바가 아니고 열정페이또는 믿음페이(ㅎㅎ새로운 단어다)로 봉사할 때 진정한 찬양지휘자의 모습이 완성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반발하겠지만 말이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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