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2005년 5월 21일, 옥한흠 목사가 서초고등학교를 둘러본 후 오정현 목사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원뜻을 살리기 위해 띄어쓰기와 오탈자 일부만 바로잡습니다. 옥 목사의 아들 옥성호 대표(도서출판 은보)의 동의를 얻어 편지 전문을 싣습니다. 이 편지는 옥성호 대표의 저서 <왜 WHY?>(은보)에도 실려 있습니다. - 편집자 주 |
사랑하는 오 목사,
그날 도심 속에 남아 있는 확 트인 공간에 매료되어 정말 손에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뜻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돌아와서 나는 계속 갈등과 번민 속에 시간을 보내어야 했다. 기도 시간 내내 그 문제를 끌어안고 씨름을 해야 했다. 눈으로 보기에 좋았던 소돔 땅을 선택한 롯이 자꾸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화를 통해서 혹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만 이렇게 메일을 쓰는 것은 당회에서 그 문제를 거론할 때 나의 의견을 알고 싶어 하는 장로들이 나오면 네가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자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너에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일차적으로 우리가 투자해야 할 액수가 최소한 1,000억에서 1,500억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의 질을 높이기 위해 추후로 투자해야 할 돈이 몇 백 억이 될지 지금은 예상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 정도의 볼륨은 현재 경제 사정이 좋지 아니한 상황을 고려할 때 대단히 무모한 시설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 계획을 그대로 감행한다면 향후 100년 가까이 재정 압박과 함께 교회의 전반적인 사역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사학 재단이란 호랑이 꼬리를 잡고 끌려가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될 것이다. 교회의 청년기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님을 너도 알고 있지 않니? 그렇다고 그것이 온 교회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라면 모르지만 아무도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공간은 4,000~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 공간과 몇 개의 교육 공간 그리고 1,000~2,000대의 주차 공간이다. 그것도 주일에만 사용할 수 있다. 주중의 종교 활동이란 방학 때를 빼고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크리스천 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주일날 4번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2만 명 내외를 수용하는 시설에 불가하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헌금을 호소할 수 있는 명분으로 너무 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운영을 교회 비전으로 내걸고 설득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머리가 우수하고 좋은 환경을 가진 소수의 학생들을 위해 사랑의교회가 주일학교 연 예산의 100배 이상의 투자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회 안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우수한 학생들이 찾아갈 학교는 우리가 만들지 아니해도 얼마든지 있다.
나는 사랑의교회가 대단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대형 교회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는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본다. 3만 명이 모이든 10만 명이 모이든 대형 교회가 주는 이미지는 똑같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사이즈를 더 키우는 데 욕심을 내는 지도자를 놓고 사람들은 영웅주의, 물량주의라고 생각하지 더 고상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말이다. 나는 출석 1만 명이 넘어가면서 항상 양심의 가책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교회가 커서 목회자로서 양 떼를 돌보고 섬기는 본질에 충실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성도들의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목회자가 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무대의 스타가 되어 연기하기만 급급했다. 나는 이런 자신이 미웠다. 삯꾼과 무엇이 다른가? 결국 이 고민이 내가 목회에서 빨리 물러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너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가 되기 위해 네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괜찮은지 주님 앞에 물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커질수록 우리는 스타가 될 수는 있어도 선한 목자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랑의교회는 교회 사이즈를 더 키우는 데서 자유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예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지나친 출혈을 하는 어리석은 짓을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이지 건물이 아니라는 말을 너도 자주 하지 않았니? 영재고등학교를 위한 비전보다 예수님이 항상 마음을 두고 가까이 하셨던 보통 사람 이하의 사람들을 찾아가는 비전을 가지는 것이 사랑의교회답고 또 이 시대에 작은 예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교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서초구청이 내놓은 복지관 프로젝트를 좀 더 진지하게 검토해 보았으면 좋겠다. 거기에는 400~500억이 들어도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헌금하는 성도들도 긍지와 소명을 가지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예배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복지라는 보람된 일에 힘을 쏟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그것이 완공되면 사랑관과 함께 4만 명 수용은 가능할 것이다. 그 이상은 주님의 처분에 맡겨야 할 것이다. 한 교회를 비대하게 키울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더 생산적인 전략을 강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간섭하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늘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