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세월호 앞에서 우리는 멈춰서야 한다. 학교는 교육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일주일이라도 방학을 주자. 기업도 일손을 멈추자. 시장도 잠시 멈춰 서자. 둘러앉을 공간이 있다면 어디서든 우리는 토론해야 한다. '나라가 망했다. 사회가 붕괴했다. 나는 기댈 데가 없다. 망한 나라에서,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 이계삼, <한겨레> 칼럼 중
[뉴스앤조이-구권효]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교회는 충분히 둘러앉아 토론했나. 고난주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 부활의 소망을 말하기 민망했던 부활절을 지나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했나. 혹시 답이 없는 질문을 견디기 어려워 계속 피해 오지는 않았나.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뉴스앤조이>는 둘러앉아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좌담 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참사 이후 많은 목사와 신학자들이 '말'을 쏟아 냈다. 그러나 현장에 대한,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하는 말들은 그저 바람에 흩어져 버린다. 아니, 어떤 말은 흩어지지 않고 세월호 피해자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세월호 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초청했다. 첫 번째는 '신학생'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진수 씨, 신학대학원 2학년 재학 중인 전이루 씨, 총신대학교 신학과 3학년 최서희·노진호 씨가 3월 25일 서울 청파동 <뉴스앤조이> 사무실에 모였다.
이 중 장신대 학생들은 '하나님의선교'라는 동아리로 모여, 안산 합동 분향소 기독교 부스에서 매주 목요일 진행되는 기도회를 처음 만들고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과 함께 홍대·광화문을 오가며 피켓 시위도 했다. 총신대 학생들은 '총총걸음'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기도회와 세월호 피켓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세월호 기독교인 가족들과 함께 중창단도 만들었다.
▲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고 있는 신학생들을 만났다. 좌담은 3월 25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뭐라도 해 보자, 두세 명이라도
- 세월호 가족들과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요?
전이루 / 배가 가라앉는 걸 생중계로 봤잖아요.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어쨌든 가만히 있기 힘들었어요. 학내에서라도 뭐라도 좀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의선교에서는 대책위 만들어서 플래시몹 같은 거 하고 그랬어요. 학교 안팎에서. 마음을 같이하는 감신대·한신대·총신대 친구들이랑 만나서, 딱히 한 건 없는데 그냥 계속 얘기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 작년 1월에 세월호 가족들에게서 요청이 왔어요. 오상열 목사님(기독교평화연구소)한테 연락이 왔고 오 목사님이 우리한테 요청했죠. 안산 합동 분향소에 있는 기독교 부스에서 아무 활동이 없으니 부스가 없어질 위기라고 하더라고요. 종교 부스 중에 기독교만. 그래서 기독교인 가족들이 어떻게든 정기적으로 예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 장신대 신대원에 재학 중인 전이루 씨. 동아리 '하나님의선교'를 하면서 세월호 가족들과 만나게 됐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처음에는 정기적으로 할 생각은 없었어요. 사실 안산에 희생자들이 많고 그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안산에 있는 교회에서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 했죠. 근데 그때까지 기도회가 정기적으로 열린 적이 없다는 거예요. 여쭤 봤죠. 안산 교회들이 돌아가면서 하면 되지 않느냐. 가톨릭의 경우 수원교구에서 담당해서 매일 미사를 하고 있는데. 근데 가족분들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거예요. 안산에 있는 교회 중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교회가 한 군데도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충격을 먹었어요. 알고 보니 안산에서 제일 먼저 세월호 지우기에 나선 단체가 보수 단체나 이런 게 아니고 교회였더라고요. 2014년 6월에 이미 안산 회복 콘서트 같은 걸 열어서 유명 가수 불러 축제를 벌이고, 하나님이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실 것이라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이후로도 세월호 가족들이 다니던 교회에서 내쳐지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와중에 목요 기도회가 시작된 거죠.
김진수 / 저도 같은 동아리(하나님의선교)라서 목요 기도회를 같이 시작하게 됐어요. 저는 2014년에 공익근무를 하고 있었는데요, 그해 말에 마치고 2015년에 복학하면서 같이 활동하게 됐어요. 저희가 목요 기도회 말고도 피켓 시위도 하고 있어요. 피켓 시위도 미수습자 다윤이 부모님 쪽에서 먼저 해 달라고 연락이 와서 시작하게 됐어요. 작년 여름방학부터 동아리원들이 돌아가면서 미수습자 가족들과 함께 피켓을 들어요. 학기 중에도 시간 되면 나오고,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최서희 / 2014년 4월 16일 음식점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TV에서 '당연히 구조된다' 이런 얘기를 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결국 구조되지 못했고, 아이들이 많이 죽었고, 이후에도 가족들이 비난을 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학교에서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를 잠깐 거는 게 다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반응이 사라졌어요.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인원은 부족하지만 우리라도 뭘 해 보자 했어요. 그래서 2014년 말에 '총총걸음'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고요. 세월호 사건에 대해 학교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걸어가 보자는 의미예요. 이후에 안산 합동 분향소 목요 기도회 가고. 작년에는 저희 학교(총신대)에서 창현 엄마, 다영 아빠 모시고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열었어요. 학우들 40~50명 정도 왔어요. 그래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잘 모이지는 않아요.
노진호 / 세월호 사건에 처음 참여하게 됐던 건 신학생시국농성단이었어요. 처음 한신대에서 삭발식 하고 그랬을 때요. 한신 쪽에서 연대 요청이 왔어요. 장신·총신·감신 등 신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죠. 이후 프란치스코 교종이 방문하기 전 유민 아빠 단식할 때 신학생들이 동조 단식을 했어요. 광화문에 상주하면서 장신대 하나님의선교 사람들을 만나게 됐죠.
참사 초기 목사들이 막말을 할 때 저희 교단인 예장합동 대형 교회 목사도 있었어요. 학교 교수들 입장에서도 난감해하지만 이렇다 할 해명은 안 하더군요. 교단 차원에서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어요. 학생들도 애도는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얘기는 꺼리더라고요. 학교에 뭘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어요.
신학생시국농성단 참여할 때 제가 '총신대 평학생회'라는 이름으로 현장을 다녔거든요. 그런데 몇몇 학우가 투표로 선출되지 않았는데 왜 대표성을 띄는 것처럼 참여하느냐는 항의가 있었어요. 그런 계기도 있고 해서, 고민하다가 2014년 12월 31일 총총걸음을 만들었어요. 첫 활동으로 그날 4명이 피켓을 만들어서 광화문에서 시위를 했어요. 하나님의선교가 많이 도와주셔서 목요 기도회도 참여하고 유가족 간담회도 열 수 있었어요.
(장신대 하나님의선교와 총신대 총총걸음은 아주 작은 동아리다. 하나님의선교는 휴학생까지 합쳐야 10명 남짓이고, 총총걸음은 8명 정도다. 학내에 대표성을 띠는 총학생회나 학우회 등이 있지만 세월호와 관련해서 하는 일은 전무하다. 이 작은 동아리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학내에서 세월호 활동은 없는 셈이 된다.)
가족들이 포기 않는 하나님, 내가 포기할 수 없어
-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적인 회의를 느꼈는데요. 신학생으로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김진수 / 신앙적 회의가 없지는 않았어요. 그 전까지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은 낭만적인 세상, 가끔 힘든 일도 있지만 좋은 하나님이 잘 다스리는 세상이었는데, 그게 완전히 부서진 느낌이었어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했어요. 책에서는 찾기 어려운 거 같아요. 아직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 있고, 그 과정에서 목요 기도회와 현장이라고 부르는 곳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최서희 / 저는 그때 신앙적으로 답을 내리고 싶지 않았는데, 주변에서는 너무 쉽게 답을 내리려고 하는 거예요. 이 참사와 하나님을 연결시켜서 자꾸 설명하고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려고 시도하는 걸 많이 봤어요. 저는 그거랑 많이 싸웠던 것 같아요. '진짜 그렇게 신앙을 해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니다. 이건 그렇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다. 특히 남의 고통에 대해서는'.
타자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답을 내리는 신앙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신앙관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회의보다는 교회에 대한 회의가 더 컸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반응이요. 친구 가족이 사고로 돌아갔으면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 텐데. '크리스천들이 비정상적으로 사고하고 있구나', 이런 회의가 컸어요.
▲ 총신대 신학과에 재학 중인 노진호 씨. 진호 씨는 마음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총총걸음'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노진호 / 저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2015년 1월 교회에서 전도사로 처음 사역을 시작했는데요. 전도사를 하는 동안에도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신앙적으로 회의하고 있는데, 주일에는 교회 가서 초등부 아이들과 정말 교과서적인 내용을 나눠야 하니까요.
근데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걸 세월호 가족들의 입을 통해 들었어요. 기독교인 가족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누구에게 필요할까. 있어야 한다면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있어야 할까. 가족들을 위해서 필요하구나, 계셔야만 하구나'. 요즘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전이루 / 304명의 죽음이 생중계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 하나님도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냥 지금 벌어진 상황이 너무 황당했고,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신, 절대자, 특히 선하신 하나님, 이런 걸 생각하는 게 사치스러운 느낌이랄까요. 전혀 그런 생각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2015년에 휴학을 하게 됐어요. 그런 상태가 올해 초까지는 계속됐던 것 같아요.
저는 2014년에 처음 사역을 시작했어요.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가 공교롭게도 고난주간이었잖아요. 22일은 부활절이었어요. 부활절 때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있었어요. 5~13살 되는 아이들 사역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죽었을까요?', '죽었겠죠?' 그렇게 물어보는데 제가 뭐라고 답할 수 있었겠어요. 근데 상황은 부활절이고…. 그때 느낀 건 기독교인, 전도사, 신학생 이런 타이틀이 이런 고통 앞에서는 완전히 무기력하다는 거였어요. 그해 4월 16일부터 22일까지의 기간이 저에게는 아직도 한 학기 정도의 의미로 다가와요.
요즘에 와서 생각해요. 내가 왜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그 이유를 하나님에서 찾아요. 내가 신을 믿는다는 게 가족들에게 미안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상황에서 무기력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 거기에 대한 죄송함 때문에 가족들과 같이 있는 것 같아요. 신이 잘못한 것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신이 있다면 명백하게 신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 상처받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세월호 가족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노진호 / 학교와 교단 특성도 있고, '목레기'라는 별명도 생겨나고, 신학생 신분으로 다가가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진보적인 한신에서 뭘 한다고 하면 어떤 기대를 하겠지만, 기대를 받지 못하는 학교, 가만히만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교단에서 뭔가를 시작한다는 게 좀 어렵더라고요.
작년에 한 번 목요 기도회를 총총걸음 주관으로 했어요. 기도회를 마칠 때 시찬 아버지가 일어나서 총신에 대한 기도를 짧게 해 주셨어요. "쓰러져 가는 한국교회에 총신대학교가 다시 복음을 들고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도해 주셨어요. 저희는 위로가 될까 해서 갔는데, 오히려 저희가 더 위로를 받았어요.
전이루 / 가족들은 항상 먼저 배려를 하세요. 그런 모습도 좀 안쓰러워요. 그러면서도 저희한테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거나 불편한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하는데, 저희는 그런 거 진짜 없어요. 사실 저는 가족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족들이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아요. 그러니 저도 기독교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분들 신앙 보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지고 많이 배워요. 목요 기도회에서 성서를 읽고 깨달음을 나눌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가족들이 내놓는 나눔이나 깨달음들이 저한테는 큰 가르침이었던 적이 많아요.
예전에 다윤 아빠랑 광화문에서 피켓 시위하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다윤 아빠가 그러시는 거예요. 자기는 교회 너무 싫고 그런데, 그 양반(하나님) 포기 못 하겠다는 거예요. 그 양반도 자기 아들 잃어 봤으니까 내 맘 제일 잘 안다고. 그래서 나는 피켓 시위하는 게 그 양반한테 기도하는 거라고. 이런 고백을 어디서 들을 수 있겠어요. 많이 배워요. 항상 새롭고요.
▲장신대 신학과에 재학 중인 김진수 씨. '하나님의선교' 소속으로 목요 기도회와 피켓 시위를 함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김진수 / 부담감보다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해도, 일개 신학생이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돈이 많거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죄송한 마음이 오래갔어요.
한번은 목요 기도회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머님 한 분이 "잘 있어요, 아들들" 이러고 가셨어요. 그분이 아들 잃으신 분인데…. 이상한 얘기지만 그때 죄송함이 좀 없어졌어요. 제가 왜 죄송했는지 생각해 보면, 제3자의 입장에서 도와주려고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우리'로 받아 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다음부터는 그런 부담감 느끼지 않았어요. 내 일로 생각하게 되고요.
전이루 / 그냥 자리 지키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그거 하러 가는 거지.
근데 기도회라도 되게 민망할 때 많아요. 설교 시간에 섣부르게 하나님을 변명하거나 자기변명을 하거나 하는 목사님들이 있거든요. 세월호 가족들은 그런 말에 상처받으면서도 우리한테 미안하니까 서운한 점을 오히려 얘기 안 해요. 가족들은 그런 사람들이라도 만나야, 힘들지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고립되는 거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세요.
그들의 현장 없는 위로
- 세월호에 대해 막말을 내뱉은 몇몇 목사도 문제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교회들이 세월호 가족들을 품어 주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 같아요.
전이루 / 강박증 걸린 집단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나님이 전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익숙하잖아요.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하면 더 복이 있다는 말이요. 근데 세월호는 그게 아니거든요. 이건 고난이 있고, 하나님이 거기서 무력했고, 고난은 계속 현재 진행 중이에요. 교회들이 너무 낯설어 해요. '이쯤에서 하나님이 나와야 하는데, 이쯤에서 이렇게 돼야 하는데' 근데 하나님이 안 나오니까 '이건 하나님 뜻이 아닌가 보다. 하나님이 허용한 건가 보다' 이렇게 가는 거 같아요.
'하나님이 이러실 분이 아니다'고 하는 건 그나마 상식적인 거고요.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식으로 가는 거죠. 하나님을 어떻게든 전능의 위치에 놓으려고 발버둥치는 거 같아요. 어떤 특정한 답,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이런 모습이 아닐 때는 '안 돼, 이건 하나님이 아니야' 이렇게 해 버리는 느낌이에요.
- 어쩌면 답이 없는 질문을 굉장히 못 견뎌 하는 모습이에요.
전이루 / 어떻게든 하나님이 답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 하나님의 침묵, 이런 걸 보면 사람들이 빨리 답을 내리고 싶어 안달하는 거 같아요. 상식적이지 않은 말들이 튀어나오고, 어떻게든 세월호 가족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려고 하는 거죠.
기독교인 가족들 보면, 본인들이 다녔던 교회 목사님들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와요. 내용이 한결 같아요. '이제는 돌아올 때가 됐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품으로, 주님의 전으로 돌아오세요', '예배하실 때입니다'. 못 견디는 거죠. 하나님이나 교인이나 자기가 알던 모습이 아니니까. 피해자들이 잘못한 거라고 단정지어야 자기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 모습이 안산의 교회들, 한국교회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 같아요.
김진수 / 사실 막말 목사들은 신경 안 써요,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근데 점점 속을 끓게 하는 건 그나마 괜찮다고 하는 교계의 양심, 교계의 지성,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좋은 목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현장감 없는 위로'예요. 이해하지 못한 채 던지는 말들, 내 생각으로 '이렇게 하면 위로받겠지', '이런 마음일 거야', '이런 게 힘들 거야', '이런 얘기 해 줘야지'. 근데 눈 감고 상처를 만지면 덧나거든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로 막 만지면 더 아프죠. 그런 일들이 몇 번씩 반복되니까 이제 기대도 없어요. 그냥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겠고.
전이루 / 목사님들이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했으면 좋겠어. 모르잖아 솔직히.
▲ 총신대 신학과에 재학 중인 최서희 씨. '총총걸음' 활동을 하면서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최서희 / 두 분 말에 모두 공감해요. 저는 신앙이 약간 장애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오히려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요. 당연히 상식적으로 이렇게 해야 하는데, 신앙인들은 결론부터, '어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원래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마음이 있는데도, 신앙으로 제어하는 것 같아요.
가끔 저는 '성경에 그렇게 안 쓰여 있나' 싶어서 읽어 보면 그냥 울어 주라고 쓰여 있거든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그런 사고를 가지게 되는지 의문이에요. 어떻게 신앙을 했을 때 그런 사고로 가는지. 현상적으로 대부분 한국교회 반응이 그렇잖아요. 마치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이단들을 보면 중독된 것처럼 반응이 똑같아요. 똑같은 교리를 배웠기 때문이겠죠. 한국교회도 어떤 일정한 교리에 대한 중독이 아닐까. 상황이 그 교리에 들어맞지 않으니 에러가 난 거죠.
김진수 / 기-승-전-갓(GOD)이에요. 사람은 없어요.
노진호 / 저는 '망언'을 조금 다르게 해석해요. 망언도 '말'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막말 이런 건 말이 아니라 '소리'죠. 제가 생각하는 망언은 '말이 되는 말', '말이 되어 보이게 하는 말'이에요.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세월호를 이용하는 말이 진짜 망언이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직후에 손꼽힐 정도로 빨리 세월호를 주제로 나온 책이 2014년 <신학지남> 여름호예요. 총신대 출판부에서 세월호 특집으로 낸 건데요. 세월호가 주제라고는 하는데, 보면 세월호를 도구화하는 느낌이었어요. 학제적인 자기 말을 만들기 위해, 설교에서 예화거리, 소재로서 사용하기 위해 도구화하는 거죠. 성경에 나오는 어떤 개념이나 사건에 빗대기 위해, 신학적인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기독교의 자정적인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세월호를 사용하는 게 많더라고요. 하나님의 나라, 정의, 평화, 회복을 세월호를 통해 설명하려고 해요.
사실 이런 경향은 신학뿐 아니라 사회학, 철학 등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거 같아요. 가령, 공공성·공공사회 등을 설명하기 위해 세월호를 얘기하는 거죠. 문제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본인의 이야기를 하려고 가족들을 사용하는 거예요. 가족들은 그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와 배경과 구조 속에서 그 사람들이 대본처럼 써 놓은 얘기를 해야 하는 거죠.
노란 리본 떼고 다시 들어오라는 신학 교수
- 학교와 교단의 반응은 어때요?
김진수 / 학교에서 가끔 피켓 시위나 팸플릿 같은 거 나눠 줄 때 보면 딱 보여요. '저 교수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냥 지나가는 분도 있고, 고생한다고 행사 때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직접 행사에 방문하시거나 돈을 지원해 주신다거나. 근데 혀를 차거나 비웃고 지나가는 교수님도 있어요.
학생들은 리본은 많이 달고 다니는데요. 가끔 리본 달고 다니기 싫다는 학생도 있어요. 정치 얘기 싫다고 하면서. 작년에 저희가 학내에 세월호 상징물을 세워 놓은 적이 있었어요. 빨간 등대에 노란리본을 달아서 설치했는데, 학생들로부터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식의 항의가 들어오더라고요. 우상숭배라서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예장통합은 작년에 총회 임원회에서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이름을 주보에 실어 달라고 노회에 공문을 뿌렸어요. 근데 안 싣는 곳이 많아요. 제가 다니는 교회는 한 번도 안 실었어요. 누구누구 서울대 합격, 카이스트 합격, 박사 취득, 미국 유학, 이런 건 실으면서 9명 이름 적을 공간은 없나 봐요.
전이루 / 사실 학교는 일관된 반응이에요. '일 벌이지 마라'. 저는 개인적으로 학생이 벌써부터 사회 참여하면 안 된다는 말도 들었고, 한 교수님이 불러서 갔더니 노란 리본 떼고 다시 들어오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신기한 건 그런 분들은 되게 당당한데, 반대쪽에 계신 분들은 보이지 않는 손 같아요. 저희한테 도움은 주시는데 잘 보이지 않아요.
교단에 대해서는, '차라리 말을 말지'라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가족들한테 희망을 품게 해 놓고 약속을 안 지키는 거예요. 저번에 총회 임원들이 목요 기도회에 와서, 교회 주보에 미수습자 9명 이름 싣는 거랑, 간담회 진행할 100개 교회를 주선하겠다고 했어요. 근데 하나도 안 했어요. 그럴 약속이면 그냥 하지를 말지. 가족들도 어떻게 된 거냐고 자꾸 물어봐요.
노진호 / 교단(예장합동)은 뭐 말할 것도 없고요. 학교 교수님들은 세월호에 대한 얘기를 안 해요.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또 이상한 얘기할까 봐. 교단 목사님들이나 학교 교수님들은 잘 안 변하잖아요. 그래서 별로 기대가 없어요.
그에 비해 학생들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저번에 유가족 간담회 하면서 놀랐던 게, 정말 개인 경건에만 신경 쓰던 학생들이 간담회를 왔더라고요. 그 친구들이 유가족이 하는 이야기에 눈물을 흘렸어요. 뭔가 다시 고민하는 것 같았어요. 사실 가족들을 만나지 않으면 거리가 크게 느껴지잖아요. 근데 학교에서 한 번 보고 그분들 말을 직접 들으니, 이제 세월호 가족이라고 하면 먼 얘기가 아니라 우리 학교 와서 얘기해 주셨던 분들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는 거 같아요.
예장합동에도 세월호에 관심을 두는 목사, 교회, 학생들이 알음알음 있는 거 같아요. 한데 모여 연대해서 같이 활동하면 좋겠는데, 그런 부분이 잘 안 돼요. 각개전투라고 해야 할까요. 지역에서만 싸우다 보니 운동도 지엽적이 되고, 지속성도 떨어져요. 그런 사람들을 모으는 게 총총걸음이 할 일인 거 같아요.
▲ 피켓 시위하면서 노란 리본을 나눠 준다. 정치적이어서 하기 싫다는 신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 신학을 공부했고, 앞으로 목회자가 될 것이고, 사실 지금도 사역을 하고 있잖아요. 세월호 가족을 만나면서 목회관이나 인생관이 바뀐 점이 있나요?
최서희 / 제가 성경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소원하는 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에요. 세월호 사건을 접하면서 느끼는 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건 증명할 수 없구나'라는 거예요. 학교 다니는 친구들 모두 열렬하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거든요. 마태복음에 나오는 네 이웃에게 대접한 게 곧 나를 대접한 거라는 말씀이 세월호 가족들과 만나면서 더 실감이 갔어요. 성경에서 뭘 말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거 같아요.
노진호 / 세월호와 관련한 일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도 생각했어요. 일반 대학생과 다르게 신학생으로서 책임이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향후 교회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삶을 살아야 하고,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 과정 중에 있으니까요. 바뀐 게 있다면,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그럼에도 하나님이 필요하다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거예요.
신학생시국농성단에 있었을 때 읽었던 말씀이 시편 73편 17절이에요. '내가 당신의 성소에 가서야 저들의 종말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잖아요.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이 종말을 당해야 하는 게 성서의 가르침인데 우리의 삶 속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그런 현실을 볼 때마다 흐트러졌던 믿음이나 용기나 결단을 가족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상기하게 돼요. 가족들과 계속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전이루 / 참사 이후에 '종교인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신학생으로서 많이 배우는데, 이런 현실에서는 별로 할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한편으로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할 일이 많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았어요. 종교인이 해야 할 것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어느 순간에나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 특별히 전능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이구나, 해요. 오히려 편해졌어요.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이라거나 종교인으로서 가야 하는 길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걸 알아 가고 있어요.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가면 되는 것 같아요. 숨을 길게 쉬는 법을 배워서 가면 되지 않을까요.
김진수 / 살아갈 자리를 결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디서 누구와 같이 살아갈 것인가. 그 말은 곧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이냐는 거겠죠. 이웃이 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지금 그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약하지만 세월호 가족들에게 이웃이 되자, 지금 살아갈 자리는 여기다 싶어요.
▲ 다윤 아버지는 피켓 시위하는 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학생들은 오히려 세월호 가족들 때문에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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