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문제는 감각의 표절 --- 조현신 국민대 교수 ‘국가 브랜드 조형성 분석’

moonbeam 2016. 7. 13. 08:28



ㆍ조현신 국민대 교수 ‘국가 브랜드 조형성 분석’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국가 브랜드와 관련, 디자인 비평가인 조현신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교수가 전문가적 시각에서 국가 브랜드의 디자인 조형성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표절논란에 대한 견해도 밝힌 글을 보내왔다. 다음은 조 교수의 글이다.

■디자인은 법인가? 비전문적 결단인가?

문체부가 최근 발표한 국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가 손혜원 의원의 비난을 받으면서 여기저기 말이 많다. 손 의원이 전문적 영역을 대변해주니 전문가로서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아직도 정치권의 발언만이 주목받는 한국 전문가 문화의 후진성에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비판의 요지는 크리에이티브 코리아가 프랑스 무역투자진흥청이 사용하는 투자촉진 슬로건인 ‘크리에이티브 프랑스’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법적 검증을 거쳤고, 형태나 색채 면에서도 창의적이라고 반박했다. 손 의원과 경력 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여당권 홍보 실력자는 ‘작업자의 고뇌가 느껴진다’며 매우 추상적 감상으로 이 디자인을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안의 핵심은 법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 요소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감각의 표절이라는 점이다. 감각은 결코 변명을 허락하지 않는다. 단것의 정도는 있을지언정 단것을 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디에건 이 두 슬로건이 나란히 걸릴 때 그중 하나는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뻔하지 않을까? 이미 크리에이티브 프랑스는 크리에이티브 발명, 크리에이티브 정신 등의 단어와 이미지를 넣고 세계적으로 홍보를 진행 중이다. 한국이 어떤 식으로 사용하건, 그 사용법에서 프랑스를 모방하는 길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디자인 조형성만을 이야기해보자

표절논란을 떠나 디자인이 경직되어 있는 것 또한 문제다. 모든 형상은 생명력 즉 움직임의 기미를 품고 있을 때 공감을 얻는다. 자연이 언제나 경이로운 것은 살아 있는 기운이 그들만의 고유한 형상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글자체가 레귤러 폰트(정체 글자체)여서 프랑스의 장체와 다르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 글자가 과연 창의적인지는 의문이다. 타이포그래피(글자체 디자인)에서 글자와 글자 사이를 자간이라 하는데, 대부분 한 단어인 브랜드 디자인의 결정기준은 시각적 자극성이다. 그리고 이는 생명체의 핵심인 유기적 구조성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하나가 건축물 같은 글자체들 간의 자간을 좁혀 순식간에 읽혀지는 깔끔한 한 덩어리로 할 것인가, 아니면 확실히 띄어 쓰거나 글자체의 변형을 줄 것이냐로 크게 나뉠 수 있다. 그런데 이 디자인에서는 단어가 순식간에 들어오지 않고 나열된 느낌을 준다. 글자 사이의 공백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허전하게 드러나면서 윗줄이 고르게 맞춰지지 않아 유기적 밀도감이 많이 모자란다. 브랜드 사업 65억원 중에서 고작 2020만원만을 디자인 비용으로 썼다니 그 결과인 듯하기도 하다. 프랑스의 로고 역시 그 형상이 특출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한 번에 읽히는 구조를 지니며, 날카로운 세모의 악상테귀(accent aigu)는 온라인 화면에서 반짝반짝 움직이는 세 갈래 점의 잊지 못할 자극으로 폰트의 평이함을 덮고 있다.

한국의 경우, I자만을 소문자로 해 원을 얹은 것은 조형에 생명력을 주기보다는 의심의 눈길을 받게 한다. 색채는 채도(색의 순도)가 낮아 문체부의 해명인 젊은이들의 감각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색감에 가깝다. 이 정도의 강도를 지닌 색채는 강렬한 서사를 핵심으로 하는 한류적 감성, 또 하나의 한국적 코드라는 열정을 표현하기에는 어정쩡한 색채로 보인다. 디자인적 유기성도 떨어지는 데다가 슬로건, 색채, 구성방식, 형상 등 모든 구성요소와 원리가 프랑스의 것과 같으니 어찌 어설픈 모방혐의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이런 지적에 대해 “변리사가 괜찮다고 한다”는 위원장의 설명은 아무래도 궁색 맞다. 디자인을 변리사가 결정할 문제인가? 수십억원의 국민 세금으로 만들면서 꼭 이렇게 구차한 변명으로 국민의 얼굴을 해명하는 현실이 대한민국 디자인의 수준인가?


■전문인으로서의 자존심

또 하나, 국민의 의견이다. 슬로건은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내일의 비전을 만드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잊은 채 3만999건의 공모 작품과 약 127만건의 ‘한국다움’에 대한 키워드를 수집한 결과 창의, 열정, 화합을 핵심가치로 도출했다고 한다. 여기서 ‘크리에이티브’(창의)가 도출되었다고 한다.

미래학자인 닐 포스트먼은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를 조사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한 과학자를 비꼰 적이 있다. 수치와 통계를 들이대면서 과학적 조사방식으로 이뤄으니 꼼짝 마라 하는 태도를 비웃은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또한 인문학이나 사회학에서의 과학성은 설득력이지 수치와 도표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연과학적 통계방식에 매몰된 인문사회학 연구 풍토에 일갈을 가했다. 만약 문체부가 과학적 통계에 자신 있다면 일반인 집단, 무작위 전문가 집단에 이 결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 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에서 힘을 쓰지 못하거나 그 과정을 몰랐다고 하는 국가브랜드 개발추진단 전문가들은 사퇴하기 바란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비전문적인 힘에 의해 본연의 역할 수행을 하지 못할 때 그 이름을 거부하는 자존심은 보여줘야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그나마 존재감을 인정받을 것이다. 디자인의 진검승부는 창조를 위한 혁신적 자세에서 시작된다. 전문가 집단이 이러한 자세를 갖출 때 더 큰 권력에 좌우되는 한국의 공공디자인은 비로소 진정한 창의성의 발판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