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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청소년', 17년 한 길만 간 목사 --- 십대지기선교회 박현동 목사

moonbeam 2016. 8. 17. 08:50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17년 동안 '청소년 선교'라는 한 우물만 판 목사가 있다. 길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다니고, 이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삶이 변화할 수 있도록 간사들과 함께 직접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사회가 버린 청소년이 마지막에 찾아가는 목사.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십대지기선교회(십대지기) 박현동 목사(51) 이야기다.

박현동 목사는 언제나 청소년과 함께였다. 신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한 것도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기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받은 은혜가 컸기 때문이다. 신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고등학교 후배들을 돌봤다. 입대하기 전까지 학교에서 아이들 밥 먹이고 같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게 낙이었다. '문학의 밤'을 '기독 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색다르게 개최해 900명을 한자리에 모으기도 했다.

제대 후 자신이 담당하던 고등학교로 돌아갔다. 리더십이 바뀌자 사역하던 방식도 변해 있었다. 불과 2년이었지만 이미 학생들은 또 다른 리더십에 익숙해졌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더 체계적으로 청소년 사역을 하고 싶었다. '청소년교육선교회'에서 일하면서 교육 교재를 만들고, 교사를 대상으로 강의했다. 청소년을 만나고 싶었지만 청소년을 교육하려는 사람을 교육하고 있었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 박현동 목사는 사단법인 십대지기선교회(십대지기) 대표다. 그는 17년 전 경기도 의정부에서 위기 청소년을 만나기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청소년이 집에 갈 수 없는 까닭은…

2000년, 청소년을 만나기 위해 의정부에 자리를 잡았다. 목사라는 직함이 있었던 탓일까. 의정부YMCA에서 청소년 상담실을 운영해 달라며 박 목사를 불렀다. 상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학을 배우면서 아이들을 만났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상담한다고 앉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 북부 지역을 관할하는 보호관찰소에서도 박현동 목사를 찾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소년원에 보내기 힘든 청소년에게 교육 수강 명령을 내리는데, 관찰소 담당 직원은 그 프로그램을 박현동 목사가 맡아서 해 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위기 청소년과 만남이 시작됐다. 강간, 특수 강도 등으로 잡혀 온 아이들이었다. 사회에서 보면 우선 피하고 볼 아이들, 위험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앉혀 놓고 인성을 교육하는 게 박현동 목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걱정하며 만났는데 막상 아이들을 마주하고 보니 그렇게 예쁘고 착할 수 없었다.

어른들 때문에 고통받고 그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눈앞에서 아빠가 엄마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아이, 아빠가 던진 손도끼에 등이 찍힌 아이, 새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성추행을 당한 아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 경찰서, 검찰, 법원 등을 돌고 박 목사에게 온 아이들은 이미 별다른 감정 없이 자신이 겪은 끔찍한 사건을 진술했다.

"처음에는 '너도 내가 이야기를 들려준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는 투로 말을 시작해요. 이제는 감정도 안 올라오고 울 가치도 없는 거에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는 마음이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평생 경험해 보지도 못할 일을 이 친구는 10대 때 다 겪은 거죠. 이 친구한테 슈퍼마켓에서 배고파서 뭐 훔쳐 먹은 거는 큰 일도 아닌 거에요. 자기 등을 도끼로 찍은 아버지는 처벌도 안 받았는데. 법적 부모는 살아 있어도 '집'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갈 곳 없는 청소년과 만나면서 쉼터가 시작됐다. 집에서도 내놓은 아이들,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그냥 살기에 길거리는 너무 위험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쉴 곳을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그곳이 쉼터가 됐다. 현재 십대지기는 여자 청소년이 모이는 쉼터, 남자 청소년이 모이는 쉼터, 이동식 쉼터 '포텐(for ten)', 또 다른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 모이는 그룹 홈을 운영하고 있다.

  
▲ 의정부시에서 박현동 목사는 위기 청소년 전문가로 통한다. (사진 제공 박현동)

모든 시설은 정부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한다. 지원금을 받는 단체에서는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 인성 교육 차원에서 매주 드리는 주일예배가 종교 생활 전부다. 하지만 박현동 목사는 간사로 섬기는 선생님들 모습에서 아이들이 예수님을 보기를 기대한다.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이들을 옆에서 보살피는 선생님들에게 당부하죠. '선생님이 어떻게 신앙생활하는지 내가 일일이 챙길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선생님을 보면서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만 알게 해 주자. 선생님이 참는 모습을 보다가 그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자'.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어요."

변화하는 세상, 선교 단체가 나아가야 할 길

박현동 목사에게 위기 청소년을 돌보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지상 명령이다. 기독교 NGO를 운영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돈을 보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달에 40만 원 받고도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지상 명령이니까. 이제 의정부 지역 주민은 '위기 청소년 지원 = 십대지기'라고 인식한다.

일부 기독교인은 시대가 변하면서 복음 전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대놓고 종교색을 드러낼 수 없고,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든 시대. 박현동 목사는 과거 청소년 부흥을 직접 겪어 본 세대다. 그때는 학교에서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환경이 많이 변했다. 앞으로도 똑같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저는 오히려 지금이 위기 속 기회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마음껏 전도할 수 없다고 하지만 상황은 계속 변하거든요. 십대지기는 의정부 지역 11개 학교와 연결해서 기독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어요. 올해부터는 '자율 동아리'라고 해서 종교 제한에서 자유로운 모임도 가능하거든요. 그동안 '십대지기' 하면 위기 청소년 돌보는 단체로 인식됐으니까 이제 복음 전하는 일에도 힘쓰려고요."

십대지기는 정부 지원으로 움직이는 쉼터를 돌보는 파트와, 학교·교회와 함께 지역 복음화에 나서는 파트로 나뉘어 있다. 선교 단체와 학교, 교회를 연결해 한 지역에 사는 기독 청소년을 묶어 주고 지역에서 뭔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박현동 목사는 다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에게 예수님만이 최종 답이며 생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십대지기는 집에 갈 수 없는 청소년을 위한 쉼터 외에 이동식 쉼터도 운영한다. 이동식 쉼터는 주로 밤에 청소년을 만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청소년을 위해 자리를 잡고 그들의 필요에 귀 기울인다. (사진 제공 박현동)

정신없이 일상이 돌아가지만 해야 할 일은 꼭 한다. 규모가 큰 선교 단체를 운영하면 주위에서 부러운 눈으로 우러러 본다. 어느새 사역하는 것도 돈과 연관 짓기 시작했다. 십대지기는 모든 재정 상황을 인터넷 카페에 공유한다. 후원자들이 자신이 후원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있도록 매월 자세한 내역을 공개한다. 일반 법인처럼 모든 걸 투명하게 운영하려고 노력한다. 박현동 목사는 '영적 싸움'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나가시던 분이 들러서 '수고하시는데 목사님 쓰시라'며 30만 원을 놓고 갔어요. 그럼 이게 저 쓰라고 준 건가요, 단체에 주신 건가요? 지역 유지가 '살림 넉넉하지 않을 텐데 이거 살림에 보태'라며 거금을 주고 가셨어요. 이건 저를 준 건가요 단체가 하는 일을 보고 준 건가? 이런 사소한 거에서 영적 싸움이 시작하는 거예요. 사역 특성상 모든 상황을 공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야죠. 머릿속으로 끝까지 싸워야 해요."

'다음 세대' 외치는 한국교회, 정말 그런가

17년을 청소년만 보고 그들과 뒹굴었다. 인생의 1/3을 청소년 사역자로 산 그는 한국교회가 청소년을 대하는 걸 보며 느끼는 아쉬움이 크다. 우선 한국교회는 말로만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고 외친다. 정작 교회는 청소년에 별 관심이 없다. 교구 목사를 뽑고 그 목사가 청소년부를 담당한다. 아이들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목사, 아이들도 목사가 하는 말에 별 관심이 없는 건 당연하다.

"교육학 전공하지 않은 청소년부 목사가 대부분이에요. 전담 교육자가 없는 실정이죠. 청소년부에서 아이들을 잘 이끌면 이내 성인 목회로 돌려 버려요. 아이들은 몸과 마음을 주면서 목사님을 따랐는데, 한순간 믿던 사람이 사라진 거죠. 일주일에 반나절 자원봉사하는 교사들에게 아이들 신앙 교육을 맡기는 건 정말 무책임한 거에요. 그러니까 보여 주기식 한방주의, '성령 받아라'를 선호하게 된 겁니다. 이 구조가 한국교회를 망친 겁니다."

각 교단에는 분명 교회학교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하지만 공과책 만들어 배포하고 가끔 교사 세미나 열면 그걸로 끝이다. 집행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교단이 교육을 끌고 가기보다 개교회 담임목사 철학이 교회학교를 좌지우지한다. 담임목사라 하더라도 교육에 대해 얼마나 알까. 주먹구구식 교회학교 운영이 반복된다. 한국교회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 잡게 된 이유다.

교회학교에 정을 못 붙인 청소년은 카리스마 강한 리더가 전하는 메시지 중심 집회를 찾는다. 청소년은 그것이 주는 화려함에 열광한다. 얼마 전 성 문제가 알려져 사퇴한 라이즈업무브먼트 이동현 목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카리스마'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아직 판단력이 흐린 청소년을 쥐고 흔들었다.

  
▲ 박현동 목사는 선교 단체를 운영하다 보면 사소한 것에서도 영적 싸움이 시작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대형 집회에서 뜨겁게 찬양하고 스트레스를 발산하지만 교회에 돌아오면 다시 이전과 똑같다. 교회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뭔지, 풍성한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생각거리를 던지지 않는다. 그냥 주일에 청소년부 예배에 참석하는 것,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 정도가 '좋은 신앙인'의 판단 척도가 된다.

한국교회 교회학교는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박 목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다음 세대 사역'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 단체 리더의 부도덕함이 뉴스로 보도되고, 내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강압적인 환경을 고발하고 있는 이때. 박현동 목사의 행보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