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떨기(펌)

'옳고 그름' 프레임으로 세상 바꿀 수 없다 --- 비폭력평화물결 박성용 목사

moonbeam 2016. 9. 12. 13:17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평화는 어렴풋하지만 불화는 현실이다. 혐오, 분노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에 한국 사회는 얼마나 복잡하고 지저분한 흙탕물인가.

여성들이 자기를 무시했다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칼로 찌른 남성,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가 내면화한 여성 혐오, 국가 폭력 피해자의 기한 없는 통곡, 부패했거나 무능한 정치인, 혐오를 부추기는 교회…. 한여름 불볕에 아스팔트가 끓는 것처럼 들끓는 분노와 혐오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이 뜨거운 분노를 식힐 방법은 없을까. 만약 넘쳐 나는 혐오를 잠재울 방법이 있다면,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이상마저 허무하게 느껴진다.

  
▲ 박성용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 있을 때 퀘이커 영성 훈련 센터 펜들힐에서 평화학을 연구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비폭력평화물결'(박성용 대표)은 이 척박한 땅에 10년 넘도록 평화 씨앗을 뿌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학교에서 회복적 생활 교육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학교 폭력 문제는 학생·학부모·교사가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비폭력평화물결은 '회복적 서클'이라는 대화 기술을 통해, 학교 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회복을 경험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박성용 목사를 9월 6일 경기도 광명에 있는 비폭력평화물결 사무실 겸 평화서클교회 예배당에서 만났다. 50평 남짓한 공간 중앙에 의자가 둥그렇게 둘러 있다. 교회 구성원들이 이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서클 진행자 양성 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벽에는 굳어진 생각에 균열을 내는 격언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박 목사는 기자가 질문하면 한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곤 했다. 선문답을 나누는 분위기였다. 다음은 박성용 목사와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 평화서클교회 곳곳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평화하기 위한 말들이 붙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서클'이 생소한 독자가 많을 것 같다.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종교적 평화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대화 방법이다. 역사적인 평화 교회(퀘이커, 메노나이트, 형제회 등)의 전통이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게 둘러앉아 상대 말을 온전히 듣고 비판하지 않는다.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서클은 진행자라 해서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가 들어올 수 있게 공간을 허용한다. 참여자가 진행자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다. 이런 방법으로 대화하면, 누가 옳고 그른가가 아니라 서로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며, 상대방을 지원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을 수 있게 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서로에 대한 존중을 최대화하는 방법일 것이다. 서클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 혐오와 분노가 넘치는 사회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실상을 볼 때 '두려움'과 '옳고 그름'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모든 것이 굴절된다. "옳은 건 우리고 틀린 건 그들"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비난과 정죄가 난무하게 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정당 간 갈등이나 남북문제가 그렇다. 이렇게 보면 다른 프레임이 나올 수 없다. 현실이 뭔가 잘못됐기 때문에 나오는 게 진보 운동인데, 진보 운동도 이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 실제 옳고 그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주장하는 거 아닌가.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 '객관적 사실'이 있다고 믿는다. 그 객관적 사실을 알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현대철학은 "인식 대상은 인식자가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사건에 대한 인식은 달라진다.

'옳고 그름'은 지배자의 프레임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제한다. 이에 저항하는 사람은 그 반대 것을 옳다고 하고 다른 것을 배제한다.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안티 프레임은 오히려 기존 논리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 프레임 안에서는 지배자가 훨씬 강하다. 프레임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다.

  
▲ 비폭력평화물결은 학교 폭력으로 어그러진 학교에 '회복적 서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멍해 보인다. 당하고도 상대 말을 들어 보자는 태도를 보인다면 뭔가 나약한 것 같은 느낌이다.

한번은 서클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나열한 적이 있다. 학교 폭력, 성폭력, 가정 폭력 등 생각나는 걸 모두 모았다. 다음에는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모두 표현했다. 그 다음에는 폭력을 강화하는 뿌리가 무엇인지 나누었다. 그 다음에는 그 뿌리를 없애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다들 '이해', '대화', '공감', '자비로움' 등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실제 사건을 그 대안에 들이대 보았다. 사람들은 "너무 가벼운데요", "너무 약해서 효과가 없을 것 같은데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원했다. 자기가 대안이라고 성찰한 것을 믿지 못한다는 것에, 그리고 또다시 폭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내놓는다는 것에 우리 모두 충격을 받았다.

'폭력이라는 것이 우리의 골수에, 전신에 퍼져 있고, 마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폭력을 내면화하고 있구나'. 철저히 탄식했다. 나에게는 계시적인 사건이었다.

-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간디는 저항이 아니라 건설적 프로세스가 중요하다고 했다. 상대 멱살을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선한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하는 것을 통해 일이 잘 해결된 모델을 본 적이 별로 없다.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그렇게 일을 해결하라고 배운 적도 없다.

한국 사회만 봐도 참 비통한 현실이다. 도저히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가슴이 찢어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냉소주의와 무력감을 느낀다. 눈앞에 수많은 집이 박살나서 잔해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세월호, 남북 관계, 4대강, 사드 배치 등등 심각한 상황인데 현실 정치를 보면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진보는 주장하고 보수는 관료적으로 대답한다. 이게 끝이다.

비폭력 실천가 시각에서 보면, 에너지를 쏟아야 할 일은 '집을 빨리 짓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원하는 미래에 대한 강력한 꿈을 꾸어야 한다. 다음에는 우리에게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밟을 것인지 대화해야 한다. 세상은 단숨에 바뀌지 않는다. 결과가 아니라 그런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옳음과 그름' 프레임에서 벗어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스웨덴은 '스터디 서클'이라는 민주적인 소그룹 대화 모임이 3만 5,000개가 있었다.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이를 존중하고 공유하는 소그룹들이 자신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주장만 하지 않고 변화의 주체가 된 것이다. 결국 이런 흐름이 스웨덴을 사회복지 국가로 만들었다.

  
▲ 박성용 목사는 "진실이 오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평화는 기독교에서 중요한 가치인데, 사실 교회는 평화를 실천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동성애와 이슬람을 배격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오죽 할 게 없으면 거기까지 갔나 싶다. 교단이 연합해서 누구를 판단하고 저주하는 걸 우선순위로 세팅했다. 남 죽이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동성애와 이슬람이 기독교의 위협이라고 느낀다면 그만큼 자신감이 없는 거다. 복음의 진수를 모르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채우는 것이다. 신도들이 불쌍하다. 그 목사들은 그런 데 힘쓰지 말고, 당장 헌금 낸 사람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할지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목사들이 신도들과 '연결'이 안 되는 거다. 자기만 말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대형 교회를 보면 매주 목사 한 명이 말하고 수만 명이 듣는다. 어떻게 진리와 계시가 그런 식으로 전달되나.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게 아주 교조적이 됐다. 목사도 매주 계시가 오는 건 아닐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하나. 나는 그런 목사들의 영혼이 얼마나 불안할까 안쓰럽다.

서클은 한 사람만 말하지 않는다. 목사도 신도들에게 의지한다. 각자 내면에 있는 빛을 서로에게 비추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함께 성장한다. 힘은 높은 곳에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서로 연결할 줄 아는 것이 진짜 힘이다.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다른 사람과 연결하려면 먼저 온전히 들을 줄 알아야 한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절망과 아픔 속에서 어떻게 치유가 가능하고 나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면 좋겠다. 먼저 선한 의도를 품고,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당면한 아픔을 표현하고, 그에 맞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라. 마지막으로 중간중간 피드백을 해야 한다. 피드백은 실수나 잘못을 용납하고, 조금이라도 나아간 것에 대해 축하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후 안산에서 이런 모임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진실을 밝혀야 하고, 또 누군가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할지 미래를 꿈꿔야 한다. 그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흐름이 생길 때 사회는 천천히 변한다. 우리는 옳으니 저 틀린 자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