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자기 살려고 나라 결딴내기로 작정한 대통령

moonbeam 2016. 11. 17. 10:28




[한겨레 사설] 자기 살려고 나라 결딴내기로 작정한 대통령

등록 :2016-11-16 17:52수정 :2016-11-16 20:39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5천만이 시위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불행히도 맞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촛불 민심’을 수용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식 반격에 나섰다. 국민의 사퇴 요구는 “헌정 중단은 안 된다”며 일축해버렸고, 검찰 수사에는 시간 끌기 작전으로 맞섰다. 박 대통령의 막가파식 버티기로 대한민국은 더욱 어둡고 깊은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16일 부산 해운대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관련자들을 엄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실상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대통령이 다른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니 엄단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부터가 코미디다. 아무도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나 홀로 대통령’ 노릇을 하는 모습도 목불인견이다. 그런가 하면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과 관련한 언론의 각종 의혹 보도에 대해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를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예전에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 보도에 대해 “사회 혼란 야기” 운운하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사실”이라고 말했던 ‘그때 그 오만한 자세’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민감한 국정 현안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밀어붙이기도 본격화했다.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재추진에 속도를 내는 것도 ‘박 대통령의 지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 내부 논의 과정에서 미국의 새 정권 출범과 관련한 ‘속도 조절’ 건의도 나왔으나 묵살됐다고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국정교과서 발행 강행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이런 몰아붙이기는 ‘내가 여전히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부각해 국민의 사퇴 요구를 희석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갈등 사안에 대한 찬반양론을 부추겨 자신의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려는 의도도 묻어난다. 박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생존을 위해 중대한 국정 현안을 갖고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

청와대가 일대 반격에 나선 것은 어떻게든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길만이 검찰 수사 및 앞으로 이어질 특검 수사에서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를 통해서도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임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떠나는 순간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는 물론 제삼자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것은 ‘헌정 중단’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살길’을 찾기 위해서인 셈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버티기를 계속하면 할수록 나라의 골병은 더욱 깊어만 간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국정 공백 상태가 계속되면 경제는 더욱 비틀거리고 외교·안보 등 모든 국가 업무는 끝없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질서 있는 퇴진’의 용단을 내려야 옳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오히려 ‘내가 살 수만 있다면 나라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몰염치한 태도로 배짱을 부리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막장 드라마’의 집필자 겸 연출자인 박 대통령은 드라마의 결말을 더욱 비극적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