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6번의 한복패션. 왼쪽부터 2013년 2월25일 취임식 때, 2월25일 취임식 만찬, 5월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 5월6일(한국시각) 뉴욕동포 간담회, 5월7일(한국시각) 워싱턴 동포간담회, 5월9일(한국시각) LA동포 간담회. 청와대사진기자단.
단풍이 지고 바람은 차가운데, 나라는 여전히 어지럽다. 매일 감당해야 할 놀람과 충격으로 자괴감은 커지기만 한다. 수확은 있다. 우리는 최씨와 박씨 일가를 중심으로 어그러진 한국 현대사를 생생하게 배우며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중이다.
청와대에서 부모를 잃은 박씨 삼남매에게 청와대 밖은 심정적으로 매섭게 추운 겨울이었을 것이다. 그때 전직 큰 영애를 여전히 ‘현직’ 큰 영애로 모신 최태민 일가가 박근혜에게는 따뜻하고 포근해서 벗고 싶지 않은 코트였을 것이다. 현실에 믿음을 잃으면 믿음 속에서 현실을 구한다. 박근혜는 혈연의 가족을 버리고 최씨를 믿음 속의 가족으로 삼았다. 서로의 이익과 필요가 더해지면서, 그들은 한 몸이 되었다. 그것도 모른 채 국민들은 대통령이라는 옷을 박근혜에게 박수치며 입혔다.
코트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옷 때문이었다. 의상실에서 대통령의 옷을 만들고 돈을 꺼내 결제하는 최순실. 왜 하필 옷일까? 최순실이 만들어 입히는 대로 대통령이 입으니, 옷은 대통령에게 끼치는 자신의 영향력을 가장 쉽고 확실하게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주변으로, 그 주변은 또 다른 주변들로 이야기를 전하고, 특혜를 바라는 재벌과 고위 공무원 등은 최씨 일가와 그 주변에 줄서서 머리를 조아렸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옷과 가방을 제공하고 연설문을 고치고 인사와 이권에 개입하며 최씨의 영향력은 커져만 갔다. 최순실은 대통령에게 옷을 입히고, 자신은 대통령의 옷을 입었던 것이다. 청와대 안팎의 경계는 무너졌고, 국정은 그들의 사업수단으로 전락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누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거짓말쟁이 재봉사는 욕심 많은 임금에게 입을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을 지어 입힌다. 자격을 갖추고 똑똑한 사람이고 싶었던 임금은 재봉사에게 속아서 멋진 옷을 입은 줄 알고 위풍당당하게 벌거벗고 거리를 행진했다. 너무 놀라운 광경 앞에서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제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자 그제야 사람들은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년이 폭로한 진실이 촉발한 백성들의 웅성거림을 듣고 임금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제 어리석음이 까발려진 임금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을까? 그렇지 않고, 그럴 리가 없다. 임금은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부끄러웠으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진실을 듣고 움찔했던 신하들도 임금의 태연한 행동에 맞춰 아무렇지 않게 임금의 허상의 옷을 소중히 받쳐 들고 걸었다. 아마도 백성들의 반응은 ‘뭥미?’였을 것이다. 어리석은 임금을 둔 백성들이 그동안 치렀을 고통과 부끄러움은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쉽게 공감된다. 안데르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로써 명확하다. 어리석은 권력자는 부끄러움과 수치를 모른다. 부도덕한 권력은 무자비하고 상상할 수 없는 짓을 자행한다.
동화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만, 나는 그 다음을 상상해본다. 궁으로 돌아간 임금은 자신을 속인 재봉사와 신하들을 처벌했을까. 아마도 그들이 먼저 임금의 심기를 파악하고 불경스러운 언행을 입에 올린 소년과 백성들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공격의 방향을 바꾸었을 것이다. 임금도 자신의 권위를 다잡기 위해 그리했을 것이다. 분명 재봉사와 신하들에게는 죄를 크게 묻지 않고 사태의 수습을 맡겼을 것이다. 멍청한 권력자의 곁에는 간신만 남는 법이다.
최순실과 차은택 등으로 박 대통령을 가려준 허상의 코트는 벗겨졌고, 용기 있는 몇몇 언론은 그 코트를 받쳐 들었던 자들의 이름과 행태를 알리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안데르센의 재봉사와 신하는 아마 새누리당 의원들과 검찰, (보수)언론과 재벌일 것이다. 그들의 견고한 코트까지 이번에 벗기지 않으면, 또다시 그들은 새 코트를 재봉하고 새로운 주인을 만들어 국민들을 현혹할 것이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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