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한국교회를 살려 주옵소서. 통회하고 자복하는 영을 부어 주옵소서." 故 옥한흠 목사가 2007년 7월, '한국교회 평양 대부흥 100주년 기념 대회' 설교에서 외친 말입니다. 옥 목사는 예수 믿는 이들의 도덕성과 가치관이 세상 돌아가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세속주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며 '짠맛'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옥 목사의 처절한 외침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해 보입니다. 개신교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지표는 곳곳에서 나옵니다. 얼마 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김선규 총회장) 설문 조사에 따르면, 국민 75%는 목회자와 교회를 불신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에 대안은 없는 걸까요. <축복의 혁명>·<하나님나라>(대장간) 저자이자, 분당두레교회 원로 박철수 목사를 만나 들어 봤습니다. - 기자 주 |
분당두레교회 박철수 원로목사는 "한국교회가 성경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정작 성경 내용처럼 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책만 보면 잠이 오는 사람들은 목사를 그만둬야 한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축자영감설'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정작 성경 내용처럼 살지 않는다."
"예장합동은 자정 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서서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개신교 교육체계는 정말 싸구려다. 사관학교 수준보다 못하는 학생들이 뭘 하겠는가. 기독연구원느헤미야 같은 대안 학교가 나와야 한다. 신학뿐만 아니라 인격적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원인 불명의 섬유근육통을 앓고 있는 박철수 목사는 인터뷰 내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인터뷰 도중 휴식을 요청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 개혁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철수 목사는 1987년 분당두레교회를 개척했다. 처음 2~3년은 집에서 예배했다. 분당에 자리 잡은 이후 교인이 400여 명으로 늘었다. 성장 비결은 의외였다. '복'을 강조하지 않고, 교회와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주로 던진 것이다. 교인들은 할 말을 하는 목사의 메시지에 끌렸다.
박 목사는 "세상의 모든 정보는 곧 성경 주석"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책을 붙들었다. 기독 월간지 <복음과상황>을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기독교인이라면 복음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서 <축복의 혁명>과 <하나님나라>는 교계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쳤다.
인터뷰는 8월 16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박 목사 자택에서 진행했다. 내부는 책 수천 권으로 도배돼 있었다. 서재에는 책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박 목사는 "출간을 준비 중이어서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박 목사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교회 개혁과 사회 변혁 위해 목회 시작 |
- 학부는 건축학과를 나왔다. 당시 건축학과는 출세, 성공의 지름길로 통했다. '넓은 길'로 계속 가지 않고, 신대원에 진학한 이유는 뭔가.
나는 63학번인데, 학부를 졸업하고 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제대한 뒤 현대건설, 주택공사, 한국감정원에 나란히 합격했다. 아무래도 건축쟁이는 아닌 것 같아서 한국감정원을 선택했다. 토지나 건물을 감정하는 일을 했는데 제법 많은 월급을 받았다.
37세 정도 됐을 때였다. 어느 날 광주에 있는 모교회 담임목사님이 서울 사무실로 찾아왔다. 평소 교류를 하지 않았기에 의아했다. 몇 말씀 하시다가 대뜸 "박 선생, 신학을 해 보는 게 좋을 거야"라고 하더라. 목사가 되라는 의미였는데, 순간 마음이 쿵쿵 뛰었다. 안 그래도 고등학생 때 신학교 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웃음) 그때도 목사의 사회적 평판이 좋지 않아서, 목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담임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로 꼭 계시를 받은 것처럼 신학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39살까지 직장 생활을 한 다음,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했다.
- 총신대 출신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목회 철학이 '진보적'이다.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가. 특별히 좋아하는 학자가 있다면.
진보적인 게 아니라 '성경적'인 것이다.(웃음) 어렸을 때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철학책을 포함해 다양한 책을 읽어 왔다. 원래는 총신대가 아니라 장신대를 가려고 했는데,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다니던 교회도 예장합동이어서 장신대를 가는 데 제약이 뒤따랐다. 어쩔 수 없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된다는 심정으로 총신대에 들어갔다.(웃음)
한완상 박사님과 이만열 교수님께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진홍 원로목사(두레교회)와도 상당히 가까웠고,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김 목사가 이명박 정부 때 뉴라이트 활동을 하면서 관계는 끝이 났다.
나는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을 좋아한다. 파스칼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 중에는 파스칼에 대해 가장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웃음) <파스칼의 팡세>(대장간)라는 책도 냈다. <팡세>를 해설한 책이다. <팡세> 내용이 굉장히 어려워서 우리나라 사람은 잘 안 읽는 편이다. 도움을 주고 싶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도 좋아한다. 대학생 때 <나를 따르라>(복있는사람)를 읽었는데 감화·감동을 받았다. 파스칼로부터 신앙을 배웠고, 본회퍼를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됐다. 자크 엘륄(Jacques Ellul, 1912년~1994년)이 쓴 책도 한 권도 빠짐없이 다 읽었다. <저항과 복종>(복있는사람)은 꼭 일독할 것을 추천한다. 아브라함 헤셀의 <예언자들>(삼인)을 보면서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다. 이런 책을 쓴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식과 굉장히 깊은 신학을 보여 줬다.
- 1987년 분당두레교회를 개척하고, 2015년 12월 은퇴했다. 지난 목회 여정을 돌아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
나쁜 의미라기보다도 이문식·김회권 목사님 같은 분들은 나의 목회 방식에 걱정을 표했다. 메시지가 강직한데다가 직선적이었으니까.(웃음)
한편으로 목회자는 인간관계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 부분이 좀 미흡했다. 나는 '교회 개혁과 사회 변혁'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목회를 시작했다. 좌파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복음주의 좌파였다.
-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예장합동에서 목회를 할 수 있었나. 교단 학풍은 매우 보수적이지 않나.
교단 눈치는 안 봤다. 노회도 잘 안 나갔다. 가더라도 출석 도장만 찍고 나왔다.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 2~3년은 집에서 예배했다. 그러다가 분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3년 만에 400여 명이 모였다. 목회 철학 때문에 그렇게 모였나 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가 변해야 한다"고 설교를 많이 했다. 그런데 목회에서는 인간관계가 중요한데 이 부분이 미흡해서 그런지, 나중에 내가 그만둘 때에는 120명으로 줄었다.(웃음)
- '교인 감소' = '목회 실패'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물론 그렇게 볼 수 있다. 나 자신도 그렇고, 다른 사람이 볼 때도 목회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웃음) 직설적인데다가 상당히 공격적인 목회를 했다. 어떨 때는 교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다른 교회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인간관계에서 좀 부드러웠거나 원만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극보수적인 교인들도 있었다. 내가 은퇴하기 5~6년 전에는 부딪치기도 했다.
- 목회 철학 중 하나는 '교회 개혁과 사회참여'이다. 각종 사회문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할 것을 주창해 왔다. 비슷한 맥락에서 1986년 복음주의청년연합을 결성하고, 회장도 지낸 것으로 안다.
사회적으로 독재가 만연하고 언론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까 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김진홍 목사의 도움을 받아 <복음과상황>을 창간했다. 강경민·이문식·김회권·고직한·한철호 등 개혁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정말 형제 같은 깊은 교제를 나눴다.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은 |
박 목사는 원인 불명의 섬유근육통을 앓고 있지만, 집필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 얼마 전 육군 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사건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공교롭게도 부부는 신앙인이었다. 목사님은 저서 <하나님나라>에서 "우리는 이 세상 나라에 적응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나라를 본받지 말고 상대화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나라 백성은 이 세상 나라에서 빛과 소금이다"라고 했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신앙인이 도덕적·윤리적으로 엇나가는 걸 너무 쉽게 목격하는 듯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교롭게도 육군 대장 부부는 장로, 권사였다. 박찬주 대장 내외의 신앙은 한국교회 교인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군 선교로 기독교인 75%를 만들겠다? 미쳐도 한참 미쳤다. 그런 식으로 75% 채우면 뭐 하는가. 신앙이 뭔지, 종교의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 같은 문제의 본질은 목사들에게 있다. 직장에서 승진하고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것을 복으로 가르친다. 기복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교회는 새벽 기도 잘 나오고, 십일조 헌금 내고, 주일성수하고, 봉사 잘하면 1등 신자로 여긴다. 이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기준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다.
나는 보수주의자다. 그러나 제임스 바(James Barr, 1924~2006)가 <근본주의 신학>(대한기독교서회)에서 말한 대로 보수주의자들이 매우 급진적인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보수주의자이면서 급진주의자다.
한국교회는 축자영감설을 믿는다. 그런데 축자영감설을 믿는다면서 그렇게 살지 않는다. 성경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정작 성경 내용처럼 살지도 않는다. 만약 그렇게 살기를 노력한다면 한국교회와 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그것은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1927~1997)가 <예수의 정치학>(IVP)에서 말한 대로 '혁명적 복종'으로 가능하다. 성경대로 사는 게 힘들고 어려워서일까. 그렇다 보니 값싼 은혜와 진리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 없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복음주의 4인방이라고 말하는 옥한흠·홍정길·하용조·이동원 목사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보수화하는 데 그들이 상당한 몫을 감당했다고 본다. 분명한 신학적 성찰 없이 성장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본다. 불행한 일이다.
-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고 옥한흠 목사는 2007년 '한국교회 평양 대부흥 100주년 기념 대회' 설교에서 한국교회가 세속주의 늪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믿음뿐 아니라 행위도 중요하다고 강변했는데.
당시 설교 영향력이 굉장히 컸다. 그때 하신 설교는 그분의 유언이자, 한국교회를 향한 마지막 외침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목회를 돌아보고, 죽음에 대해 묵상도 많이 했을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설교였다. 나는 옥 목사님이 또 한 번 거듭났다고 생각했다.
- 저서 <축복의 혁명>에서 "축자영감설을 믿는다고 해서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다. 복에 대한 성경의 내용을 바르게 해석해야 바른 신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올바른 성경 해석이 꼭 필요해 보이는데, 이 부분이 약하지 않나 싶다.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교인은 목사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목사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가르침이 굉장히 중요한데, 목사들이 공부를 안 한다. 목사는 죽을 때까지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설교를 할 수 있다. 공부를 안 하니까 남의 설교를 베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사회적 이해도도 너무 약하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정보가 '성경 주석'이라고 생각한다. 성경만 볼 게 아니라 세상을 알아야 한다. 꾸준히 독서해야 한다. 자기와 다른 신학과 철학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마음을 열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보수 교단 목회자들도 '역사적 예수 세미나'에 속한 신학자들의 책도 읽어야 한다. 방어적 독서보다 공격적 독서를 해야 한다.
박 목사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해 왔다. 자택에 있는 책은 3,000~4,000권에 달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 심지어 "책만 보면 잠이 오는 사람들은 목사를 그만두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진심이다. 공부 안 할 거면 목사 되면 안 된다. 책을 통해 세상의 여러 사람을 만나고 돌아다닐 수 있다. 설교를 직접 듣는 것도 좋지만, 저자가 쓴 책을 자세히 여러 번 볼 수 있으니 더 좋지 않겠는가. 한국교회는 독서 부흥회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지성적인 면에서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서 부흥회가 꼭 일어나야 한다. 독서를 많이 하면 글을 쓸 때도 여러 도움을 받는다. 나도 <하나님나라>를 집필할 때 100여 권 이상 참고했다.
- 예장합동 교단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축자영감설로 성경을 읽지만, 문자적으로 순종하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장자 교단으로서 무엇보다 자정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교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보니, 사건 사고도 많은 것 같다.
예장합동은 자정 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서서히 사라질 수도 있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한국교회를 떠났다고, 촛대가 옮겨졌다고 보는 입장이다.
- 몇몇 목회자 때문에 교단 전체가 욕먹는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노(No). 거의 다 그렇다. 오히려 바르게 목회하는 목사가 극소수다. 이미 성경으로부터 떠났다. 스스로 갱신할 능력이 없다. 자기 힘이 어느 정도 있어야 쉬었다가 달리기라도 하는데, 그럴 힘이 없다. 기껏해야 가톨릭이 이단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수준이다. 이런 교단이 박찬주 대장 같은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안 된다. 최근 예장합동 설문 조사를 보면 일반 국민 75%가 목회자와 교회를 불신한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 한국교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목회자 수급'이다. 목사님은 2006년 11월 '한국교회 신학 교육의 현실과 대안'이란 글에서, △난립하는 신학교 △신학교 커리큘럼 △목회자 자질 저하 문제 등을 지적했다. 안타까운 점은 10년이 지난 지금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이것은 신학교 운영과 관련 있다. 신학교는 한번 커지면 줄어들 수 없다. 교수·직원이 있고, 운영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가톨릭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엄격한 과정을 거쳐 1년에 600명 정도 배출하는 것으로 안다. 교육체계도 굉장히 타이트하다.
그런데 개신교의 총신대 신대원 한 학년만 600명 정도 된다. 질적인 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체계도 정말 싸구려다. 사관학교 수준보다 못하는 학생들이 나중에 뭘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대안으로 기독연구원느헤미야 같은 대안 신학교가 나와야 한다고 본다. 신학뿐 아니라 인격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 2015년 4월 <하나님나라> 개정 출판 감사 예배에서 '세월호'를 언급했다. 정치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시기였다. 목사님은 "세월호 문제는 단순하게 그 문제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주제"라고 했다. 아직도 목사가 교회에서 세월호를 언급하는 게 쉽지 않을 뿐더러 많은 교인이 세월호를 '정치 문제'로 생각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를 정치 문제로 삼았기 때문에 교인들이 정치 문제로 이해한 것이다. 보수 개신교인들은 세월호에 관심이 없다. 박근혜 정부 말만 들으니까. 잘못됐다. 기독교는 약한 자,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의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가 아니어도, 교회는 평소에 가난한 자, 고통 가운데 있는 자 등을 배려해야 한다.
박 목사의 메시지는 직설적이다. 그는 목사들을 향해 "공부하지 않을 거면 목회하지 말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글과 강연으로 충분히 설명해 왔다고 생각한다. 목사님께서 언급한 "성장주의, 기복주의, 소비자 중심주의, 율법주의, 이원론, 반지성주의, 반공주의"만 해결해도 한국교회 미래가 밝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것보다 나는 한국교회가 변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교회 자체를 통한 개혁보다 외부를 통한 변혁이 빠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는 5,000년 역사에 가장 획기적이면서 DNA가 다른 정권이라고 본다. 스스로 낮아지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라. 앞으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미칠 거다.
제 아무리 교회라고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회가 엄청나게 변화되는 과정에 있으니, 한국교회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 현실이 바뀌면 교회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잘 다니는 수준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파스칼은 "나는 오직 신음하면서 추구하는 자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