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유일하게 남은 유인 산장인 백운산장이 소유권 소송에 휘말렸다. 백운산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과 1998년에 기부채납 약정을 체결했다. 기부채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재산을 무상으로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소유권 소송 휘말린 안주인 김금자씨
“등반 사고 땐 담요로 들것 만들고
장독 쌀 다 퍼 구조대 밥해줬는데
공단서 소유권 돌려달라며 소송”
소유권 요구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산장 주인 이영구씨, 기부채납 약정
작년 시한 만료돼 법 절차따라 진행”
산악인 4만 명은 산장 귀속 반대 성명
공단은 기부채납 약정을 맺은 지 19년 4개월이 지난 2017년 5월 백운산장 측에 산장의 소유권 이전 이행을 통보했다. 산장이 소유권 이전을 해주지 않자 공단은 산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을 앞둔 지난 9월 3일 산장지기 이영구(87)씨가 갑작스레 숨졌다. 산장은 이영구씨의 짝, 김금자(78)씨가 홀로 지키고 있다. 산악인들에게 오아시스 같았던 백운산장. 94년간 어떤 일이 있었을까. 김씨의 독백으로 들어봤다.
영감 잘 있었수. 나 금자요, 당신 색시. 백운산장 안주인 말이요. 오늘 백운대에서 사고가 났나 봐요. 구조대가 뛰어올라 가더만요. 영감도 근처에서 사고 나면 낫·톱 들고 담요 어깨에 걸쳐 요 산장 뒤에서 나무 베어 들것 만들어 뛰어 다니지 않았수. 덕분에 우리 가족 쓸 담요가 없어 애들이랑 떨고 잤잖아요.
담요뿐이겠어요? 1971년 11월, 83년 4월 갑자기 추워져 7명씩 죽은 인수봉 사고 때, 장독 속 쌀 다 퍼서 밥 해 먹였잖수. 우리 가족은 그 누룽지에다가 무 넣어서 덜덜 끓여 끼니 때웠고. 애들은 그거 한 달간 먹다먹다 못 먹겠다고 숟가락 내던지고…. 6명이 사고 난 적도 있지요. 그래도 살릴 수 있는 사람부터 살리느라 한 명이 숨졌잖소. 그 사람 어머니가 와서 시동생 따귀를 냅다 후려치더이다. 왜 못 살렸냐면서요. 내 눈물이 다 났소. 아, 옛적 우리가 살린 서울대생 말이요. 얼마 전 왔다갔소. 사시나 안 사시나 궁금하다며. 이런 사람 보면 산장지기 하는 게 참 뿌듯해요.
영감 항상 그랬잖아요. 등산객들 밥 줘라, 따뜻하게 해줘라. 우리 큰놈은 자기 먹고 살 것도 없는데 왜 남한테 주냐고 투정 좀 부리지 않았겠소. 그놈도 시간 지나더니 알게 되더이다. 우리가 도움도 많이 줬지만 산악인들도 우리에게 도움 많이 줬다고.
우리 63년에 만났지요? 중매로. 다음해 여기 산장에서 결혼식 올리고. 그때 어마어마했지요. 산꾼은 죄다 몰려왔지요. 우이동 토박이 남정네들은 대대손손 그렇게 해왔다며 부침개 부치고, 국수 말아서 내놓는다며 복작복작 했지요. 60년에 산장을 석조 건물로 만들 때, 92년 지붕이 죄다 불탄 뒤 98년에 2층으로 다시 지을 때 산악인들 도움도 받았잖소. 손기정 선생이 현판 글씨도 써주고 말이죠. 요 앞의 테이블도 다 그렇게 왔지요. 그 테이블 밑은 원래 절벽이었는데, 영감이 등산객들 편하게 터 일궜다가 1주일 옥살이 한 것도 생각나오.
사실 사남매에 82년인가 16세에 여기 들어와 지난해 숨진 건(이건)이까지 애들 학교만 보내자고 이 산장에서 국수·막걸리 판 것 아니오. 영감도 그랬잖소. 애들 잘 되는 것만 보고 싶었다고. 하루는 큰놈 (우이)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산장에 왔소. 선생님이 큰놈을 보더니 깜짝 놀라 여기 사냐고 묻더니만 같은 교과서를 두 권씩 주더이다. 학교가 너무 머니 하나는 여기 놔두고, 하나는 학교에 놔두고 공부하라고. 참 고맙더이다.
꽃필 때 벌어서 여름 나고, 단풍철에 또 벌어서 겨울 나지 않았수. 돈암동에서, 미아리에서 장 본 것들 지고 메고 여기까지 내내 걸어서 올라온 게 언제요. 전기 들어온 지도 이제 4년이잖소. 근데 애들 장가·시집보내고 허리 좀 펴려고 하니 공단에서 산장을 가져간다는 거 아니오. 국수도 막걸리도 못 팔게 하고. 그 이후로 영감이 피곤타 피곤타더니 몸져누운 지 3개월 만에 영영 떠났잖소. 내복도 안 입었던 건강한 양반이….
이제 여기는 나랑 애들에게 맡기고 편히 가소. 산장은 절대 안 떠날라오. 이상한 방법으로 나라에 주기도 싫소. 1924년부터 할아버님이, 아버님이, 영감이 산악인들과 맨주먹으로 일군 곳 아니겠소.
공단은 백운산장의 소유권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근거는 백운산장이 이전부터 국유지에 무단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고, 97년 이영구씨가 산장 신축 허가를 받을 때 기부채납 하겠다는 약정서를 제출했다는 것. 공단은 또 "북한산 백운대는 등산객들이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며 '산장 불필요론'을 제기했다. 공단은 지난해 산장에 소유권 이전을 통보한 뒤 산장의 취사를 통한 음식(국수) 판매와 숙박을 금지시켰다.
공단 법무담당 길세철 변호사는 “백운대피소(산장)는 애초에 무허가 건물로 시작했다”며 “국유재산법에 따라 98년 보수 증축을 기점으로 19년 4개월간 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공단 측은 “작고한 이영구씨가 기부채납 이행각서 작성 시 공단에 고마움을 표시했다”며 “백운대피소 측은 소유권 이전 시기가 되자 마음을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단에서는 '백운산장'이 아닌 '백운대피소'로 부른다. 산장은 거주자가 있고 숙식 가능한 편의시설이 갖춰진 건축물인 반면 대피소는 관리인·편의시설이 없는 곳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백운산장의 소송을 대리하는 변기태 한국산악회 부회장은 “이행각서 작성 과정에서 문제가 많다”며 “92년 화재 뒤 공단 측에서 3년 넘게 시간을 끌며 증축 허가를 내주지 않다가 이영구씨를 겁박하며 각서를 받아냈다”고 주장한다. 김금자씨는 "남편(이영구)은 공단에 끌려가다시피 해서 약정서에 동의한 것"이라며 "남편이 나가서 도장을 파오겠다고 해도 공단 사무실에서 못 나가게 해 지장으로 대신했다"고 말했다.
백운산장 측은 “1933년에 경성영림서(산림청 산하 지방관공서)에서 산장 허가를 내줘다”며 “공단은 국유재산법을 멋대로 해석해 기부채납 기간을 계산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산악인 4만 여명은 산장의 국가 귀속 반대, 산장의 등록문화재 지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공단은 산악인들의 반발이 잇따르자 숙박을 다시 허용하고 산장을 존치하는 방향으로 가닥 잡았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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