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3

어무이와 TV

어무이와 TV ​ 어무이 방엔 오래 된 옛날 TV가 있다. 요즘 TV처럼 얇고 날렵하지 않고 등이 볼록하게 나와 무겁고 굼뜬 모양을 하고 있다. 허리가 구부러진 우리 오마니와 데칼코마니다. ​ 어무이는 하루 종일 한 방송만 켜 둔다. 아주 오랜 옛날 우리집에 TV가 처음 놓여지던 날부터 지금까지 일편단심 TV는 늘 한 목소리다. 벽에 기대 잠깐 졸 때도 누워서 낮잠을 주무실 때도 TV는 혼자 중얼거리며 잔소리를 해댄다. ​ TV에 빙의되신 아흔여섯 어무이는 오늘도 ‘밥은 묵었나’ ‘일찍 들오그래이’ ‘애비가 늦게 들오믄 내가 잠을 몬잔대이’ 일흔을 바라보는 내게 입에 붙은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 TV와 어무이는 반 접어 펼친 데칼코마니다. 풍경뿐 아니라 잔소리와 행동도 빼다 박은 판박이다.

미메시스 2021.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