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보성 여행

추위가 매섭다. 잿빛 풍광 속에 마음마저 움츠러드는 시절, 싱싱한 생동감을 느낄 만한 여행지는 어디 없을까? 싱그러운 초록의 차밭이 그림처럼 펼쳐진 전남 보성을 추천한다. 산비탈을 가득 메운 녹색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그 위로 하얀 함박눈이라도 살포시 내려앉으면 그야말로 눈 덮인 겨울 차밭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녹차의 고장 전남 보성을 찾으면 한겨울 자연이 빚어낸 초록과 순백의 낭만을 맛볼 수 있다. 거기에 장엄한 일몰이 펼쳐지는 여자만 갯벌로 나서면 '꼬막'을 채취해오는 '뻘배'의 장관도 목도할 수 있다. 정갈한 녹차 한 잔에 쫄깃 짭짤한 꼬막 한 접시, 그리고 뜨끈한 녹차해수탕에 언 몸까지 녹이자면 이만한 '웰빙 여정'이 따로 없다.

쫄깃한 꼬막맛에 놀라고, 눈덮인 녹차밭에 반하고

뻘배를 밀고 다니는 아낙들의 노고 덕에 꼬막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녹차로 만든 녹우 등 즐기고 마무리는 녹차해수탕에서

　▶낭만이 흐르는 '겨울 녹차밭'

잿빛 겨울에 접하는 차밭은 싱그러움 그 자체이다. 겨울 햇살에 빛나는 강건한 초록의 잎사귀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싱싱한 기운을 얻는 듯하다.

겨울 차밭은 초록의 풍광 말고도 또 다른 운치를 담아낸다. 설경이 그것이다. 하얀 눈꽃이 소담스럽게 내려앉은 차밭이란 마치 흰색 융단을 깔아 놓기라도 한 듯 유려한 곡선을 그려낸다.

이즈음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다원이 들어선 보성에는 이색 설국이 펼쳐진다. 그중 겨울 차밭 최고의 경관으로는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잘 알려진 대한다업의 보성다원을 꼽을 수 있다. 보성다원은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이어지는 600여m 길이의 아름드리 삼나무 숲길도 압권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난 삼나무 길은 마치 설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담아낸다.

연초록 잎이 싱그러운 봄날에 수녀와 비구니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CF를 찍었던 S자 삼나무 오솔길 또한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운치 있다.

차밭 능선이 그려낸 기하학적 곡선을 따라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자면 곳곳에 눈꽃을 피운 겨울나무들이 환상적인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한다.

동화나라에는 눈꽃의 황홀경에 흠뻑 젖어든 가족, 연인들이 오솔길을 산책하며 추억의 발자국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차밭에 마음을 빼앗겨 이리저리 걷다보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시음장에서는 마음까지 녹여줄 따끈한 녹차 한잔을 마실 수 있다. 아늑한 분위기의 보성다원과는 달리 보성과 회천을 연결하는 고개, 봇재에서 내려다보는 녹차밭은 마음까지 후련할 정도로 툭 트인 공간이다. 서편제 소리꾼들이 넘어 '소리고개'로도 불리는 봇재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차밭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해마다 연말이면 이 곳 녹차밭에 초대형 트리를 설치해 겨울밤 빛의 잔치를 벌인다. 올 겨울은 내년 1월말까지 '보성차밭 빛의 축제'를 펼친다.

▶쫄깃 짭짤한 '꼬막'에 뜨끈한 '녹차해수탕'

겨울철 대표적 별미로는 '꼬막'을 빼놓을 수 없다. 짭짤 쫄깃한 게 한 번 맛을 들이면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다. 때문에 벌교 꼬막은 예로부터 수라상에 오르는 8진미로도 꼽혔다. 찬바람이 부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제철. 미네랄이 풍부한 벌교 여자만 일대 뻘밭에서 자생하는 참꼬막은 여느 지방산에 비해 그 맛과 질을 최고로 친다. 장암리와 대포리가 대표적 생산지. 해질녘 뻘배를 타고 귀환하는 아낙들의 행렬은 장엄한 풍광 이상으로 새삼 노동의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보성에서는 겨울 꼬막 말고도 미식거리가 많다. 흑염소를 푹 고아 끓여내는 양탕도 별미이다. 특히 녹차의 고장답게 녹차수제비, 녹차떡국, 녹돈, 녹우 등 녹차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도 맛볼 수 있다.

보성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율포해수욕장에 자리한 해수녹차탕. 보성군 직영으로 지하 120m 암반에서 끌어올린 해수와 보성 녹차를 원료로 한 녹차 해수탕은 피부를 통해 녹차 성분이 흡수돼 피부탄력을 유지하고 관절염, 신경통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뜨끈한 탕 안에 앉아 통유리 밖으로 펼쳐진 겨울바다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가는 길=(서울 기준)~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동광주 IC~광주(화순)외곽순환도로~29번 국도(능주, 보성, 장흥방면)~보성읍~벌교/ 봇재다원/ 대한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