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기(펌)

덕수둥, 정동, 광화문 길

moonbeam 2011. 3. 18. 08:19

[서울신문]중구 태평로와 정동에는 '~터'(址)라는 조그만 표석들이 유달리 많다.

역사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문화 유적지와 역사적 현장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17일 덕수궁과 정동극장 주변을 거닐며 '숨은 역사 찾기'에 나섰다.

옛 건물과 역사적 현장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표석에 새겨져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서울신문 건너 4·19혁명 표석

먼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로 나오자 도로원표가 눈에 들어온다.

서울과 국내외 주요 도시 사이의 거리를 표시하는 기준점으로 1914년 세종광장에 있다가 1997년 12월 이곳으로 옮겼다.

도로원표 앞에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을 끼고 왼쪽으로 돌자 '서학당 터' 표석이 반긴다.

서학당은 조선시대 4부 학당 중 하나로 양인(良人) 이상 100명이 입학해 공부한 곳이다.

15세에 승보시를 합격하면 성균관 기재에 입학했다고 한다.

이어 덕수궁 쪽으로 걷다가 시의회 앞에서 '부민관 폭파 의거'를 알리는 표석을 만나게 된다.

1945년 7월 24일 독립운동가 조문기·류만수·강윤국 선생이 친일파 박춘금 일당의 친일연설 도중 연단을 폭파했던 자리다.

시의회 건물도 광복 후 1975년까지 국회 의사당으로 사용한 건물임(등록문화재 11호)을 알리는 안내판을 내걸었다.

서울신문 사옥으로 건너가는 지하보도 입구에는 1960년 4·19혁명 중심지 표석이 우뚝 서 있다.

바로 옆 서울성공회 성당 앞 도로엔 조선 세조의 사저로, 이후 비빈들이 살게 했던 곳을 알리는 '명례궁 터' 표석이 남아 있다.

서울신문사 왼쪽 화단에 서 있는 '군기시(軍器寺) 터' 표석은 1392년부터 1884년까지 군수물자를 제조하는 관아가 있던 곳을 알린다.

중죄인을 처형해 백성들에게 본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옛 배재학당 자리에 '고종 33년(1896년) 우리나라 첫 민간 신문사를 세우다.'라는

독립신문 창간을 기린 표석과 '배재학당 터·남궁억 집 터' 표석이 눈길을 끈다.

이화여고 수위실 앞에 있는 '손탁호텔 터'는 1902년 독일여성 손탁(Sontag)이 세운 서양식 호텔을 알린다.

구한 말 서구 열강의 외교관들이 외교 각축전을 펼친 곳으로 유명하다.

인근 '관립법어 학교 터'는 서구 열강과 외교·통상관계를 맺던 개화기인 1895년 설립돼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학교 자리다.

●조선시대 방범초소 '이문 터'

이 밖에 정동길 끝 프란시스코 교육회관 앞에 있는 '어서각 터'는 영조의 어필을 보관하던 곳이며,

태평로 2가 삼성생명 빌딩 앞 '이문 터'는 조선 전기에 화재와 도둑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방범초소다.

인근 '전환국 터'는 1883년 근대식 백동전을 찍어내던 조폐기관 자리다.

올봄에는 솜사탕 하나씩 든 아이들 손을 잡고 근현대 유적지와 주변에 숨어 있는 표석들을 찾아다니며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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