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맛 그리고 멋(펌)

호통판사의 소망 --- 천정호 부장판사

moonbeam 2015. 4. 1. 19:41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호통 판사'의 소망

'호통 대장'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소년범의 대부' 천종호 부장판사.
그가 살아온 길, 그가 목격한 사회,
그리고 그의 꿈을 들어봅니다.
빈민가 출신의 판사, 그는 왜 부귀영화를 포기했나
출처 이미지 공유
소년재판은 인기가 없다. 퇴임 후에 변호사로서 전관예우의 특혜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식이 재판에 넘겨져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부모들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다. 그러니 소년재판 전담판사 경력은 퇴임 후의 수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왜 그는 판사들이 꺼리는 소년재판 전담판사를 고집할까.

(...) 동기에 비해 늦깎이 판사가 된 그는 부모의 당부처럼 가난한 형제들을 돕고 싶었다. 위로 누님 세 분은 아직도 가난하고, 동생은 자신 때문에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중졸의 학력으로 가난하게 산다. 7남매 중에 대학을 나온 사람은 천 판사, 자신이 유일하다. 부모형제를 가난에서 구할 책임이 있는 그는 퇴임 이후 능력 있는 변호사가 되려고 사법연수원에서부터 술로 인맥을 쌓았다. 이대로만 하면 능력 있는 변호사가 되어 형제들의 가난을 덜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가 제동을 걸었다. 이렇게 살기 위해 판사가 됐냐고, 명예와 부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아내의 항의와 간청을 받아들인 그는 10년간의 노력을 수포로 돌렸다. 술을 끊고, 인맥 쌓기를 중단하자 주변에 끓던 사람들이 서서히 떠났고, 소년재판 판사의 길을 걷자 전화조차 오지 않았다. 빈민가 출신의 판사, 그는 개천에서 난 용이지만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아닌 약자 편에 서야만 했다.
관련기사 : 오마이뉴스 · 법정에서 사과한 부장판사, 왜 그랬을까
호통판사와 삐딱이들 첫 해외여행 "꿈이 생겼어요"
출처 이미지 공유
#변화의 시작 : 열여덟 살 혜린이(가명) 이야기

태국에 도착한 첫날 우린 5m가 넘는 나무 위에 매달려 집라인(Zip Line·줄 타고 강 횡단하기) 체험을 했다. 안전 장비를 착용했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결국 포기한 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다행히 이후의 뗏목체험, 코끼리 타기는 친구들 도움으로 무사히 마쳤다. 이런 내가 2년 전 분노 조절이 안 돼 자해를 하고, 쉼터 선생님에게 흉기를 휘둘러 10호 처분(소년원 2년 송치)을 받았다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다음 날 시내에서 1시간 떨어진 소수민족 학교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여섯~열두 살 아이들을 3명씩 맡아 페이스페인팅, 축구 등을 하며 놀았다. "남을 도와주니까 어른이 된 것 같아요." 나는 판사님께 수줍게 털어놓았다.
관련기사 : 중앙일보 · 호통판사와 삐딱이들 첫 해외여행 .. "꿈이 생겼어요"
호통 판사, 그가 말하는
우리 '문제아이'들이 겪고있는
한국 사회 현실은?

사법형 그룹홈은 비행청소년들을 보살피기 위한 공동생활 가정입니다.

한 사회의 수준은 가장 높은 곳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가장 낮은 곳의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봅니다.


사법형 그룹홈을 한 시설로 받아들이게 되면 아이들은 오히려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할 것이고, 공부를 할 것이고,

나중에 국가를 위해서 많은 봉사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빨리 성인이 되어갑니다.

저희는 급한 마음에 사법형 그룹홈을 시작하고 있으니
다른 정책보다도 우선순위를 가지고 접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