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맛 그리고 멋(펌)

이종윤 목사가 책을 버린 이유

moonbeam 2015. 4. 2. 07:58

예장 통합교단 부산노회장 부산진교회 이종윤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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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교회 담임 이종윤 목사



‘가마꼴’을 닮아서 부산(釜山)이란 지명이 유래됐다는 동구 좌천동. 그 언덕 위에 고색창연한 빨간 벽돌 교회가 있다.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부산진교회다. 임진왜란 때 침략 왜군을 처음 맞아 장렬히 싸우다 순절한 부산첨사 정발과 군민들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 정공단 옆이다. 지금은 새도심에 밀려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힌다. 그 흔한 카페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동네다. 그 한가운데 포도나무 카페가 있고, 재활용품들을 나누어 쓸 수 있는 오병이어 가게가 있다. 모두가 부산진교회가 마을 주민들을 위해 만든 곳이다.


지난 26일 부산진교회 담임 이종윤(65) 목사를 만났다. 서울에서 큰교회의 스카웃 제의를 마다하고 지역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소명으로 삼은 그는 20년째 한 자리를 지켜왔다.


보수 대교단의 지역대표 맡은 원로

한번도 언론 인터뷰 하지 않고 ‘묵묵’

‘고리원전 1호기 폐쇄 요구’ 기도회 열어

80년대 ‘기독교사상’ 편집 때 필화 고초

‘투쟁’ 대신 환경운동·나눔공동체 헌신

“머리에만 쌓는 지식 쓸모없다” 실천행


이 목사는 소문난 독서광이었다. 그런 그가 몇해 전 7천여권의 개인 도서를 모두 나눠주거나 도서관에 기증해버렸다. 정년 70살까지 수백차례 설교에 참고해야만 할 책들을 왜 그렇게 다 버린 것일까.


“머리 속에 든 것만큼도 못 사는데 자꾸 집어넣기만 해서 무엇하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교 때까지 배운 것만 제대로 행해도 이 나라와 사회가 얼마나 바뀌겠는가.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머리에만 남아있는 지식이 세상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현란한 지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가슴 속 깊이 담고 있는 것을 실천한다면, 사람들은 그 삶의 족적을 보고 따라오게 마련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자신은 이처럼 가슴을 치며 회개할만큼 머리로만 산 목회자가 아니었다. 대교단인 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소속인 이 목사는 교단의 부산 대표인 부산노회장을 맡았지만, 지금까지 언론 인터뷰 한번 해본 적 없을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세상이 모를 뿐이다. 오히려 그의 족적은 십자가 지는 일을 한번도 마다 한 적이 없었다.


<기독교사상>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젊은 시절, 그는 전두환 정권에 대해 ‘독재’라고 언급한 글을 써 기자들이 안기부에 끌려가고, 잡지도 정간 당하는 바람에 사표를 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투쟁보다는 ‘생명’을 지향해왔다. 20여년 전 울산 평강교회에 재직할 때부터 이미 재활용과 먹거리 장터를 열어 교회가 지역공동체의 나눔이 앞장서도록 이끄는 선두주자였다. 사랑의 야쿠르트운동도 그가 이곳에 온 뒤 홀몸노인들을 도운 게 시발이 됐다.


그렇게 목회자이면서도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환경운동가로, 소리 없는 자선사업가로 살아가던 그가 요즘은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부산 기독교의 대교단인 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부산노회는 고리원전 1회기 앞에서 폐쇄를 요구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이 기도회는 서울의 총회 지도부도 함께 했다. 우리나라 보수 우익을 뒷받침해온 기독교 대교단에서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기도회의 중심에 바로 이 목사가 있다. 그는 보수적인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교회가 그런 일에 나서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성경>의 ‘베드로후서’에 보면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져 태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서 이미 보여줬 듯이, 원자력이야말로 하늘의 불이 아닌가. 월성이나 고리는 인근에 450만 인구가 집중해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난다면 후쿠시마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참사를 빚을 수 밖에 없다.”


그는 원전 문제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간부부터 직원들까지 잇권 및 비리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고 본다. 그렇기에 “교회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느냐”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수많은 생명이 달린 문제이고, 잘못하면 나라가 ‘거덜’ 날 수 있는데도, 기독교인들이 “우리끼리 예수 잘 믿고 있다가 천국만 가자”고 하는 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과는 맞지 않는,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라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 분리를 말하지만, 성경은 애초부터 모두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현실을 얘기하지 말자는 건 기독교에 대한 오해다.”


그의 전공은 생태학이다. 그는 최초로 생명사상을 주창한 인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 생명과 자연 파괴를 결코 멈추기 어려우리라는 아픈 직감 탓에 괴롭다.


“상아탑의 정신이 다 죽어 학문과 학자들이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회마저 이를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욕망과 파괴가 아니라, 생명과 인간다운 삶을 택해야 한다고 교회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하겠는가.”


그런데 교회마저 이런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


“외부 환경이 너무도 많이 바뀌었다. 나 혼자는 정의롭게 살고 싶어도 무기력해지기 쉬운 세상이다. 바람 앞에서 촛불은 너무도 쉽게 꺼지고 만다. 거센 바람 앞에서도 날라가지 않을, 연대의 힘이 무엇보다 절실한 세상이다. 모든 생명을 날려버릴 욕망에 맞서 복음의 삶을 살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아주어야 할 때다.”


부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