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사랑하는 당신께 --- 송종업

moonbeam 2015. 6. 18. 13:38

사랑하는 당신께

지금까지 당신이 쓴 거의 대부분의 글들을 읽었습니다. 이 문체도 당신의 거지요. 때아닌 표절시비로 온나라가 시끄럽네요. 문학이 이토록 (낯)뜨거운 화제가 될 수 있다니요. 억울한 면도 있을 테고 어떤 음모의 희생양이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신, 이제 그...만두세요. 내가 좋아했던 당신은 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정읍의 골목길을 걸으며 더 어려운 친구들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그 착한 어린 소녀입니다. 그래요. 우물 속에 던진 쇠스랑이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순간을 꿈꾸던 그 소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어린 소녀는 왕비의 피를 지니고 있기도 했습니다. "깊은슬픔"의 그녀에서 나는 그 왕비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거울을 보며 그 왕비는 백성들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꾸만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지?하고 묻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 거울은 당연히 제가 사랑했던 그 소녀가 가장 이쁘다고 답했을 것이고, 그러면 왕비는 소녀의 비천한 존재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들이 참을 수 없이 역겨웠을지도 모릅니다.

 

이 싸움은 끝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게 제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소망을 품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의구심을 더 강하게 지니게 된 것은 당신이 더 깊이 왕비의 세계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다 의견이 같진 않겠지만 그냥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 "리진"을 쓰고도 "엄마를 부탁해"로 나아간 것은 당신을 위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감상적이고 미문투성이의 글이 일곱 난쟁이들에 의해 평가를 받은 것은 더더욱 불행한 일입니다. 어쩌면 이런 징후들은 이미 "리진"에서도 잠복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행한 소녀 리진을 위해 그녀의 목소리를 복원해내려는 시도는 어느 순간에 왕비의 자홀감으로 나아갑니다. 왕비의 언어는 결코 치열하지 않습니다. 그 언어는 보석처럼 반짝이지만, 소녀가 사랑했던 민중의 언어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창조적 열정으로 가득찬 언어도 아닙니다. 어느 순간, 당신은 더 이상 가난한 이웃들의 아픔과 더불어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기차는 여덟, 아니 일곱 시에 떠나가네"가,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있지 않냐고 당신은 항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나오는 세상의 짐을 지고 강을 건너는 사내도, 엄마도 이제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지 않고 여왕이 허락하는 것만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작품분석을 더 구체적으로 해보고 싶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하렵니다. 오늘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미 당신의 삶과 글쓰기는 표절보다 더 심각한 한계에 봉착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을 자식처럼 여긴다는 어느 여왕은 국민들을 만날 때마다 얼굴을 찌푸립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저 사람들을 봐. 저 돼지처럼 천박하게 울부짖는 거봐. 품위없게시리. 저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국민들이 아냐." 소설가로서 당신은 어느새 가고 싶은 길, 사람들의 환호가 있는 길을 가고 싶어합니다. 세상에 그런 길이 있을까요? 그래서 당신은 자주 관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사랑한 당신, "풍금이 놓여져 있던 자리"라는 표현보다 "풍금이 있던 자리"가 훨씬 다듬어진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소설가가 미문을 만드는 자, 율문가인가요? 작가란 스스로의 독자성을 추구하려는 꿈을 잊는 순간 이미 표절에 빠진 자입니다. 게다가 당신은 실제로 여러 곳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표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입니다. 그건 소설가가 사랑한 음악으로 달착지근한 음악cd를 함께 판매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렴치하고, 황폐하고, 썩은 정신의 증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사랑할 당신. 당신 안의 여왕의 코스프레를 그만두세요. 나는 그걸 읽지도 않았다고 말하지도 마세요. 대체로 여왕들은 책읽기를 혐오하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직도 당신께 지니고 있는 소망과 미련마저도 배신감 속에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작가로서 부끄럽다. 모든 말이 핑계가 될 것이므로, 이제 나는 오래 침묵하며 자숙의 시간을 보내려한다."라는 당신의 말을 기대합니다. 문학권력에 기대려하지도 마세요. 이미 늙고 비대해진 창비 따위가 당신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당신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행히도 당신은 소설장사꾼이 아니라 작가입니다. 표절에 입 다물고도 끝까지 시간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작가는 없습니다. 물러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