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박근혜의 정체 드러나다 ---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moonbeam 2015. 10. 28. 16:1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7일 시정연설에서 국민들에게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쟁’을 선포했다. 박 대통령은 방송으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고 했다. 커지는 반대 여론, 교육 현장과 역사학계의 집필거부, 야당의 강한 반대와 여당 일각의 이견 등 ‘역사 국정화’ 동력이 약화되는 흐름을 보이자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사진)은 28일 공개한 팟캐스트 <이대근의 단언컨대> 제 96회 ‘박근혜의 정체 드러나다’에서 박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국회 시정 연설문을 집중 분석했다. 연설문은 ‘논리적 오류’와 ‘논리 비약’의 연속이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이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의 글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유치하고 엉성한 문장”이라면서 “역대 대통령 연설문 가운데 이런 수준 이하의 것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 자신이 이 연설에 심혈을 기울였다는데 이런 수준의 연설이 나온 이유가 바로 그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보다 박 대통령의 육성이 많이 담겼고, 그 때문에 박 대통령의 사고 수준과 지적 능력이 연설문에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한민국의 우수성을 세계에 제대로 전파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 전파 대상에서 적어도 박 대통령만은 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국정 역사교과서에 친일이나 독재 미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만능 교과서 - 국정화 만능론

● 국정화하면 생기는 좋은 일 7가지

박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기는지 7가지나 나열했다. ①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② 통일에 대비 할 수 있다 ③ 국제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④ 문화,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다 ⑤ 민족정신이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다 ⑥ 국론 통일할 수 있다 ⑦ 아이들에게 자부심, 자긍심, 정통성을 심어줄 수 있다.

→교과서 국정화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나부터 찬성할 것이다. 그러한 만능의 교과서가 있다면 제발 만들어 달라고 엎드려 빌고 싶다. 아마 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 연설문 작성하느라 밤잠 못 잤을 것 같다. 국정화 반대 여론이 거센 시점에 연설을 통해 여론을 돌려놓을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장이 너무 심했다. ‘국정화 만능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냈다. 국정화만 하면 이 나라 미래가 활짝 펼쳐지고 웬만한 문제는 다 풀린다는 주장을 정말 대통령 자신도 믿는 것일까?

● 언제 국정화가 우리의 사명이었나?

박 대통령은 국정화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고 했다. 이런 걸 ‘정언명령’이라 한다. ‘그 스스로가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명령’이다. 박 대통령은 절대자 같다. 내가 하는 말은 진리요 빛이니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선지자 같다. 유신 시절의 국민교육 헌장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는데 제 3자가 내 탄생에 의미를 부여할 권한은 없다. 나의 삶의 의미는 내가 찾는 것이지 남이 규정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신 시절에는 그런 줄 알고 따랐는데, 지금 유신 체제가 아니니 그걸 따를 이유가 없다. 그런데 국정화가 우리의 사명이라니. 누가 우리에게 그런 사명을 내렸다는 말인가? 유신스러운 어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7일 오전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에 대한 시정 연설을 하는 동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민생우선’, ‘국정교과서 반대’라고 적은 종이를 노트북에 붙여놓은 채 항의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정체성/역사관/국가관

박 대통령은 “우리 스스로 우리에 대한 정체성과 역사관이 확실해야 우리를 세계에 알리고 우리 문화를 세계 속에 정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확고한 국가관을 가지고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세대의 사명입니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을 위해 국정화를 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 ‘박근혜 사전’으로 살펴본 정체성/역사관/국가관

박 대통령은 이 말의 개념을 설명하지 않고 연설을 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쓴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개념을 알았다면 결코 이렇게 써먹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설명하지 못했지만 ‘박근혜 사전’에 나오는 대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반공주의, 시장주의, 친 기업 국가, 한국 안보의 대미의존, 주한미군 영구 주둔, 반북. 역사관은 이승만 국부의 건국,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업적, 국가보안법, 자유민주주의는 승리를 향한 자랑스러운 영광의 길로 요약될 수 있다. 국가관은 개인의 자유 보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 등 국가주의적 가치관이다. 이 모두 권위주의 시대에 형성된 정체성, 역사관, 국가관들이다.

●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의 본래 뜻

정체성은 “나(혹은 우리)는 누구인가”하는 문제이다. 나는 여성인가 남성인가? 이런 성적 정체성은 타고 나기도 하지만, 사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과거에는 권위주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안고 사는 시민이었다. 이제는 자유로운 시민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네가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모여 정하는 것이다. 설사 함께 정했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혹은 다수가 다른 선택을 하면 역사도 변하는 것이다.

역사관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관한 생각이다.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E.H.카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했다. 나와 과거가 대화하는 것이다. 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대화하는 주체인 내가 변해도 역사가 변할 수 있고, 과거의 어떤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과거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과거와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대화라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나와 과거가 함께 변한다. 누가 어떻게 대화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지는 것이다.

국가관은 “국가란 무엇인가” 혹은 “국가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국가에 관해 다양한 관점이 있었다. 전체주의(파시즘) 국가, 공산주의 국가, 자유주의 국가, 사회민주주의 국가도 있다. 21세기는 민주주의 시대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국가는 어떤 국가일까. 국가와 나의 관계 혹은 국가와 집단과 나의 3자 관계로 볼 수 있다. 국가가 권력을 독점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소화하는가, 국가의 권력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권력과 권한을 최대화하는가. 이 양극단 사이에 다양한 국가관이 존재할 것이다. 전자의 한 형태는 국가주의, 후자의 한 형태는 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어떤 국가가 되어야 할 것인가는 개인마다, 집단마다, 정당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단 하나의 국가관만 존재하기는 어렵다.

정리하면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은 특정인이, 그가 아무리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 구성원 다수가 생각하는 것들의 집합이다. 그렇다고 소수가 생각하는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이 틀린 것이라 할 수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사상, 사고, 양심, 생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남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수의 생각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2015년 한국의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은?

이제 박 대통령에게 질문할 차례다. 우선 자신의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그 다음, 왜 당신의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이 우리 모두의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이 되어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이 시민들과 다르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역사관/국가관이 불편한가? 그래서 하나로 통일하고 싶은가? 그럼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어떻게 정할 것인가? 가위바위보? 권력 많은 자가 혼자 정하나? 박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3년 10월1일 서울 여의도 5·16광장에서 열린 제 2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사열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논리 비약

● 올바르지 못한 역사 교육의 결과?

박 대통령은 검정체제로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국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 교육이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역사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지금까지 비정상적인 역사 교육을 하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지 못했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 논리에 따라 올바른 역사 교과서, 즉 국정교과서로 교육하지 못한 결과가 무엇인지 한 번 보기로 하자. 박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어내고,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자랑스런 나라입니다. 지난 9월, 세계 160여개국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인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은 국가 발전을 염원하는 세계의 많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영감과 비전을 제공하는 성공적인 모델이었습니다. 지금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배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혼과 정신을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대한민국의 우수성을 세계에 제대로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그동안 올바르지 못한 역사 교육을 한 결과, 이렇게 훌륭한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기모순이다. 이제 더 이상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필요 없다.

● 국정화 안하면 다른 나라 지배받는다고?

“우리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고, 민족정신이 침식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검정 교과서로 배웠기 때문에 우리가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외국으로부터 문화적 경제적 지배를 받을 수 있는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견해가 많다. 박 대통령 말대로면 이런 현상이 검정 교과서로 올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해서 나타난 위기 상황이라는 것인가?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물론 한-호주, 한-캐나다 자유무역협정 체결하고 한-중, 한-일 간에도 추진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가입 의사를 밝혔다. 모두 박 대통령이 적극 추진하는 정책이다. 자기 발등을 찍고 있는 건가? 이 협정은 제도적으로 다른 나라가 한국을 경제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협정들이다. 이것도 역사 교육을 잘못받은 결과인가.

외국 지배가 두려우면 박 대통령은 북한처럼 국제적 고립을 선택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외국지배 받는 상황이 와도 국정 교과서가 물리쳐 줄 것이라 믿는 것 같다. 도대체 박 대통령은 말이 되는 말을 하는 것인가.

● 자가당착 - 일어나지 않은 일 말하지 말라?

“일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역사 왜곡이나 미화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그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저부터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두고 더이상 왜곡과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통령 발언의 취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단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곡, 미화 없다고 장담하며 예단한 것은 박 대통령 자신이다. 나는 예단해도 너는 예단 말라는 건 불공평하다. 여기 사형수가 있다. 그가 “살려달라”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사형 집행 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왜 그러느냐”



긍정사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대한민국의 우수성을 세계에 제대로 전파하는 일입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육 정상화도 미래의 주역인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부정적인 것들은 가르치지 말라는 뜻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조선이 왜 망하고 식민지로 전락했으며, 왜 해방이 되었는데 남과 북이 분단이 되었으며, 집권 세력의 무능과 부패, 반민주적인 행위, 독재와 인권 탄압의 오랜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 아름다운 나라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배워야 하는가? 영광의 역사만 있던 것이 아니라 굴곡과 오욕의 역사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아이들이 올바로 배우는 것 아닐까?

진정한 긍정은 부정의 부정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긍정이야말로 공고한 긍정이다. 긍정만 가르치면 판단력,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가 없다. 그건 쉽게 깨질 긍정이다. 박 대통령, 우리 아이를 멍청이로 키우면 되겠나?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드러난 사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한 사회에 널리 퍼진 생각을 어느 한 사람이 인위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게 바뀌는 걸 보고 싶다면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바꾸고 그것이 일정한 흐름으로 모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사회적 합의이다. 합의가 형성되면 이를 역사교과서에 반영하면 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그걸 거꾸로 한다. 교과서를 바꿔서 이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것이다. 바로 이번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분명한 드러난 사실이다.

그리고 또 확인된 한 가지. 그건 박 대통령이 상상했던 것보다 위험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