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맛 그리고 멋(펌)

망원동에서 무럭무럭 크는 새로운 가치

moonbeam 2015. 10. 30. 10:07

“망원동에서 소비는 관계다.” 망원시장을 중심으로 민중의 집, 협동조합, 벼룩시장 등이 연대를 형성하며,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망원시장, 풀뿌리 조직, 페이스북 ‘망원동 좋아요’라는 주민 중심의 세 축이 만나면서 망원동은 전에 없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통시장 지키기에서 경제공동체까지, 에너지 넘치는 망원동의 변화를 따라가 봤다. <편집자 주>

망원시장에서 지역주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2013년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으로 위기를 맞았던 망원시장은 시장상인회의 노력과 지역 주민 및 지역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망원동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박송이 기자

망원동으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돼서다. 동네 어귀의 한 가게 앞에 쌓여 있는 사과가 참 맛있어 보였다. 몇 개 사려고 보니 조합원이어야 살 수 있다고 했다. 지역 생협매장이었다. 사과를 사려고 가입했는데, 사과 하나에 줄줄이 딸려오는 것들이 있었다. 소비는 소비로 끝나지 않고 소통으로 이어졌다. 망원동 주민 제수희씨(37·여)는 “사과가 맛있어 보여서 사과 좀 사려고 생협에 가입한 건데, 생협을 통해서 ‘민중의 집’도 알게 됐고 동네 주민들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 교류하며 다양한 생각을 소통‘민중의 집’은 망원동 및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반찬 만들기’와 ‘생활재 만들기’. ‘반찬 만들기’는 망원시장 여성상인회와 공동으로, ‘생활재 만들기’는 생협과 공동으로 기획됐다. 제씨는 ‘생활재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생활재를 만들며 제씨의 생활도 바뀌었다. “사실 1인 가구는 집에서 밥 먹는 것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생산하기보다 소비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1인 가구끼리 모여 함께 생활재를 만들다 보니 ‘생산’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낭비가 많았던 생활을 점검하게 됐다. 지난주에는 1인 가구끼리 모여 ‘친환경 섬유유연제’를 만들었는데, 1ℓ 만드는 데 3000원 정도밖에 안 들더라. 쇼핑몰에서 구매해서 쓸 때보다 지역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만들다 보니까 더 신경도 쓰게 되고 내 생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제씨가 망원동에 이사온 지는 올해로 3년째. 전에는 금호동에 살았다. 금호동에서의 일상과 망원동에서의 일상은 크게 달랐다. 금호동에서 살 때는 일상이라고 할 게 없었다. “금호동에서는 집과 회사를 왔다갔다 하고 친구들 만나 술 마시는 게 다였다. 동네 주민간 교류는 거의 없었고, 유일하게 이용했던 것이 도서관과 주민센터에서 하는 운동프로그램 정도였다.” 그러나 망원동으로 이사오면서 일상은 다양해졌다. 동네에서 누릴 수 있는 일상의 가능성이 이렇게 무궁무진할지는 미처 몰랐다. ‘민중의 집’ 모임에서 만나 친해진 1인 가구끼리 모여 벼룩시장도 열었다. 필요 없는 물건을 아주 싼값에 내놓고 또 다른 주민이 싼값에 내놓은 물건을 사갔다. 벼룩시장에 필요한 장비들은 망원시장에서 지원해주기도 했다. 제씨는 요즘 ‘민중의 집’에서 하는 ‘집수리 강좌’에도 참여하고 있다. 제씨는 “강좌만 듣는 게 아니라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게 된다. 집을 고치는 이야기를 하면서 전·월세 정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고, 이런 정책이 결국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새삼 느낀다. 혼자 살면 자신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체적으로 시야도 넓어지고 내가 아닌 남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망원동은 1960년대 서교동과 성산동의 일부로 개발된 지역이다. 개발될 당시 망원동만의 정체성은 없었다. 개발방식 또한 여느 주거지역과 다르지 않았다. 망원동만의 이미지가 생긴 것은 1980년대 수해를 겪으면서다. 유수지의 부실공사로 많은 주민들이 홍수피해를 입으며 ‘상습 침수지역’으로 유명해졌다. 1970년대에는 잠깐 중산층이 거주하는 부촌의 이미지도 있었는데, 그 이미지는 서교동이 가져가고 망원동은 저소득층의 거주지역으로 인식돼 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는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망원동에 지분 쪼개기를 하기 위해 많은 빌라들이 들어섰다. 한강르네상스 계획에서 망원지구는 2차사업지구로 타운하우스 중심으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오세훈 전 시장이 물러나면서 개발계획은 무산됐고, 동네의 모습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다.

대형마트에는 없는 전통시장의 역할개발의 광풍이 비켜간 망원동에 최근 들어 망원동만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있다. ‘돈을 쓰면서 관계가 형성되는 경제.’ 2008년부터 망원동을 중심으로 풀뿌리 지역 운동을 해온 정경섭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망원동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정체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동네가 관계가 형성되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떡볶이 하나를 사 먹더라도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조영권 민중의 집 공동대표는 “프랜차이즈의 소비가 익명의 소비라면 망원동의 시장이나 골목길의 카페, 작은 상점에서의 소비는 익명의 소비자로 매몰되지 않게 한다”고 말했다. 판매와 소비 사이에 단순히 돈만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정서, 지역의 네트워크, 공유, 소통 등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들이 끊임없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의 쇼핑,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클릭, 대형 프랜차이즈의 고객님 호명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치들이다.

정체성이 확고히 완성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망원동이 그만의 정체성을 빚어갈 수 있는 데에는 몇 가지 축이 있다. 이 축들은 지역에서 서로 긴밀하게 또는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그 중 하나에 망원시장이 있다. 전통시장에서 판매자와 소비자의 만남은 대형마트에서의 그것과 다르다. 대형마트에서의 소비는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차를 몰고 대형마트에 가 주차장에 주차하고, 물건을 구매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는다. 소비가 지역에서 또 다른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정래 망원시장 상인연합회장은 “대형마트와 달리 전통시장에서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사람이 왕래하면서 골목이 바뀌고 시장 주변까지 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망원시장은 전통시장이 몰락한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지역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망원시장이 지역경제를 선순환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서정래 회장은 “시장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공동체적 기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고심하고 있다. 그 방향으로 가게 되면 지역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되고 지역단체와 호흡하게 된다. 수치로 나타낼 수 없지만, 지역과 상생하는 에너지가 시장 내에 형성된다. 시장에 오는 주민들도 간접적으로 ‘시장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공간이구나’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양한 풀뿌리 조직들의 시너지 효과그러나 망원시장이 처음부터 이러한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정래 회장은 망원시장의 힘이 2013년 3월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2013년 3월 14일 망원시장 인근 합정역에 홈플러스가 들어섰다. 대형마트의 등장은 망원시장에 커다란 위협이었다. 망원시장은 경쟁력을 갖추고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것을 생존의 조건이자 목표로 삼았다. 2008년부터 시작된 홈플러스 입점 반대 싸움에서 지역주민과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망원시장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관광형 시장이 아니라 주민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지역형 시장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형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자생력의 첫 시험대는 2013년 3월 24일이었다. 열흘 전인 3월 14일 합정동에 홈플러스가 들어선 후 처음 맞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었다. 망원시장 상인들은 상인회 사무실에 모여 몇 시간씩 전략을 고민했다. 전통시장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은 1차식품이라고 판단해 이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야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매일 바뀌는 채소 가격을 미리 정하는 것이었다. 20일 전부터 홍보를 해야 하는데 20일 후의 채소 가격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시간의 회의를 거쳐 채소 매장 7곳이 몇 가지 품목의 가격을 대폭 낮추기로 합의했다. 정육점 5곳도 공동으로 금액을 낮추기로 했다. 10여개 매장이 자기희생을 각오하고 고객을 유치하면서 첫 의무휴업일은 명절대목처럼 손님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두 번째 의무휴업일도 성공하자 상인들에게는 자신감이 붙었다. 일부 상품에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손님들이 많이 오면 더 많은 품목을 판매해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실시하는 ‘망원시장 난리났네’ 프로그램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후에도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기획은 계속 이어졌다. 장보기 서비스나 티머니 결제수단 도입도 이러한 것들 중 하나다. 망원시장이 번성하면서 유동인구가 많아져 시장 상권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는 작은 가게들이 많이 들어섰다. 망원동 5년차 주민인 김종은씨(41)는 “망원동에는 프랜차이즈가 별로 없고 아기자기한 소상점들이 많다. 골목을 돌아다니는 맛도 있고 시장 상인분들이나 가게 주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망원시장에 과일과 야채가 풍부해서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구매를 하는 것뿐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민중의 집에서 열린 지역 주민 집수리 강좌/조영권 제공

또 다른 축은 자율적이고 다양한 풀뿌리 조직들이다. 임상희 마포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은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나 작은 모임이 각각 독립적이면서 실질적인 자생력을 갖고 있고, 에너지가 활발하다. 이들이 유연하게 묶이면서 공동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한 곳이 됐다”고 말했다. 망원역 인근에 있는 ‘민중의 집’은 지역주민들이 지역사회와 스스로의 삶을 가꾸는 자치공간이다. 다양한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주민들을 연결하는 연결망 역할을 해 왔다.

의료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마포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의원도 망원동에 문을 열었다. 이 의원은 지역사회에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1차 의료기관으로 지역사회 주치의를 표방한다. 단순히 의료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한 지역의 사회적 관계망을 넓히고 있다. 창립 당시 300명이었던 조합원은 꾸준히 증가해 1100명에 달하고 있다. 임상희 사무국장은 “의료협동조합이라는 망을 통해서 활동을 하고 재미를 찾으면서 그 관계망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풀뿌리 조직들과 망원시장상인회 간의 연대도 긴밀하다.

망원시장과 지역시민사회의 연대는 2008년에 시작한 홈플러스 입점 반대 투쟁 때부터 시작됐다. 정경섭 이사장은 “당시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을 반대하면서 40개 단체들이 같이 싸움을 해나갔다. 당시 상인분들과 일주일에 세 번씩 새벽까지 대책회의를 했는데, 이 기간 중 지역시민사회와 상인들이 밀접해지고 신뢰도 쌓게 됐다”고 말했다. 서정래 망원시장 상인연합회장은 민중의 집 운영위원이기도 한다. 민중의 집이 기획하는 지역 행사나 모임에 망원시장 상인회도 참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서정래 회장은 “망원지역에서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반찬 만들기’ 모임을 하거나 벼룩시장을 할 때 시장에서 필요한 장비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역복지 차원에서 마을의 건강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는 마포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여성건강 사업의 일환으로 시장 여성 상인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기도 했다. 상인회의 상당수가 의료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하다.

동네 뜨면서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민중의 집 오김현주 대표/박송이 기자

최근에 등장한 또 다른 축은 페이스북 ‘망원동 좋아요’다. ‘망원동 좋아요’에는 7000명이 넘는 가입자가 있다. 다른 지역의 커뮤니티 페이지 가입자 수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대개의 1인 가구나 젊은 층이 지역과의 교류가 없었던 데 비해 ‘망원동 좋아요’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망원동의 주민들을 문 밖으로 나오게 한 셈이다.

‘망원동, 좋아요’ 페이지에 올라오는 글은 다양한데, 그 중 하나가 ‘드림’ ‘나눔’이라는 글이다. 의자, 캐비넷, 주방도구 등 필요 없는 물건을 가져갈 주민을 찾는 것이다. 증여보다는 소비가 익숙한 젊은 세대에서 소비 대신 물건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지역의 관계망이 새롭게 형성된다. 이원희씨(35)는 “나눔으로 인연이 맺어지기도 한다”면서 “고양이를 키우는데, 탁묘했던 분이 어느 날 아내가 올린 ‘행거나눔’ 글을 보고 행거를 받아가시기도 하는 등 친구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김아름씨는 “‘망원도 좋아요’를 알고나니 망원동이 더 사람 사는 동네 같고, 혼자 살아도 혼자인 것같지 않다”면서 “주민들을 커뮤니티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망원동 주민들의 다양한 축들이 종으로 횡으로 만나면서 망원동은 전에 없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정체성이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집값 상승 때문이다. 오김현주 민중의 집 공동대표의 말이다. “최근 집값이 오르면서 합정동 망원동 일대에 기획부동산이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똑같은 빌라 짓고 이윤을 남겨서 파는 것이다. 지금 고민이 되는 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여기가 개발이 되면서 또 사람들이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홍대 상권이 넓어지면서 서교동 살던 사람들이 망원동 쪽으로 이동했던 것처럼 이 지역에 상권이 밀려들면서 주민들이 밀려나지나 않을까 고민이다.”

‘망원동 좋아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한 주민은 페이스북에 “망원동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렇기 때문에 월세도 천정부지 올라가고, 결국 망원동의 발전에 기여한 주민들과 예술가,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또다시 어디론가 떠밀려 갈지도 모른다고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우려는 상암동에 대형쇼핑몰이 입점한다는 소식 때문에 나오고 있다. 서정래 회장은 “상암동 대형쇼핑몰은 골목상권에 쓰나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김현주 민중의 집 대표는 좀 더 근본적인 지역 활동을 고민 중이다. “민중의 집이 그동안 해온 지역주민과의 연결망은 ‘망원동 좋아요’ 같은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민중의 집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주택 문제나 집값 문제 등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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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시장에서 열리는 문화예술 한마당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망원시장展’ 기획회의 /이원희 제공

“시장이 잘되면 마을이 달라진다.” 서정래 망원시장상인회장은 망원시장이 살아나면서 주변 지역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시장 주변으로 작은 상점들이 많이 생겼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2평, 3평 남짓한 독립된 작은 가게들이다. 이들 가게가 시장이 살아나면서 함께 잘되는 것을 보며 지역에서 시장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서 회장은 “우리만 살 것이 아니라 지역과 소통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때 지역 전체가 선순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망원시장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망원시장에서는 매년 두 차례씩 큰 행사가 열린다.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와 연말 바자회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망원시장 풍경 그리기 대회’ ‘엄마 아빠와 알뜰장보기 대회’를 연다. ‘엄마 아빠 알뜰장보기 대회’는 참가자들이 각자 메뉴를 선정해 1만원 내에서 장을 보는 행사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장을 본 팀이 승리한다. 참가자 전원에게는 장 본 물품들이 무료로 제공된다. 연말 바자회에서는 시장 상인들이 자신들이 팔고 있는 제품들을 기부한다. 상인들이 기부한 물품을 상인회에서 싼값에 팔아서 판매금액 전액을 기부한다. 장사를 좀 덜 하더라도 그날만큼은 축제 분위기에 빠진다.

최근에는 이 지역에 늘고 있는 젊은 세대 주민들과의 소통을 고민하고 있다. 지역에 거주하는 20~30대들이 벼룩시장을 기획하면 시장에서 장비를 빌려주는 등 연결망을 넓혀 오고 있다. 특히 망원동에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유입이 느는 만큼 망원시장과 문화를 접목시키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11월 14일부터 일주일간 망원시장에서 열리는 ‘망원시장展’도 이러한 모색의 결과물이다.

‘망원시장展’을 기획한 이는 망원동에 거주하는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주민들이다. 처음 ‘망원시장展’을 기획한 주민 이원희씨(35)는 망원동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많다는 데 착안했다. “주변에 작업실도 많고 문화나 예술활동하는 주민들도 많은데 뭉쳐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할 사람들을 섭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입자가 7000명이 넘는 ‘망원동, 좋아요’ 페이지에 모집 글을 올렸다. 글을 보고 이씨에게 연락한 사람도 있고, 이씨가 직접 ‘망원동, 좋아요’ 페이지에 글을 올린 문화·예술인들의 공방을 찾아가 섭외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기획을 해볼까 논의를 하다가 ‘지역의 랜드마크인 망원시장을 소재로 기획을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어서 ‘그렇다면 전시공간도 시장 공간에서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와 망원시장상인회에 ‘망원시장展’ 기획을 제안했다.

시장과 지역의 문화를 접목시키는 기획을 고민 중이던 상인회 측에서도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씨는 “몰랐던 부분인데, 망원시장이 홈플러스 입점 반대 싸움을 하는 등 경제민주화의 상징성을 갖고 지역발전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또 시장이 전통적인 공간이긴 하지만 망원동에 젊은 주민들이 많은 만큼 젊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시장도 활성화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흔쾌히 전시공간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전시공간은 망원시장 안에 있는 상인회 건물 1층 카페. 지하에서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좀 더 친밀도 높은 전시를 위해 시장의 각 점포 안에서도 상인들이 직접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11월 14일부터 일주일간 시장 전시가 끝나면 이후에는 망원동 주변의 카페나 다른 장소에 작품을 분산해 전시할 예정이다.

‘망원동 기획’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씨는 “원래는 굉장히 소규모로 하려고 했는데, 하면서 여러 의견을 듣다보니 점점 일이 커졌다. 앞으로도 망원동이라는 지역을 매개로 해서 전시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