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모래시계 중산층 - 1. 중산층이 무너진다. 희미한 희망 뚜렷한 절망

moonbeam 2015. 11. 3. 09:00

① 중간계층이 무너진다


희망이 있었다. 공부하면 누구나 기회를 얻었다. 노력하면 누구나 잘살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중산층’이라는 이상화된 계층을 통해 희망을 말했다. 노력하면 안정된 수입을 얻고, 아파트를 살 수 있고, 자녀 교육을 위한 투자가 가능한 삶 말이다. 이를 위해 4년제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했고,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한때 이 경쟁이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두꺼운 중산층은 경제성장의 결과물이었고, 중산층의 여유로운 삶이 다시 민주주의와 사회 변화를 일구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그런데 희망으로 가는 길에 균열이 생겼다. 청년들은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 힘들고, 취직해도 안정된 직장을 갖기 힘들다. 40~50대 직장인들은 언제 중산층에서 이탈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산다. 자녀에게 막대한 교육비를 지출하지만, 자녀들이 자신처럼 중산층이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오르는 집값은 노후를 위해 채워둬야 할 지갑을 털어갔다. 균열은 점점 커져 싱크홀이 됐다.

이제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3년 전 내놓은 대선 공약집의 제목은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정부 정책에서 ‘중산층’이란 단어는 사라졌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쉬운 해고’를 도입해 중산층의 핵심인 사무·관리직을 위협하고 있다.

<한겨레21>은 잊혀진 존재가 된 중산층을 다시 살펴봤다. 절벽으로 내몰리는 중산층만 그 지위를 유지하도록 돕자는 게 아니다. 건강하면서도 행복한 삶의 질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길을 찾고자 한다. 우리보다 앞서 고민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과 미국, 일본의 중산층 이야기도 앞으로 이어진다.

취재 이완·황예랑 기자, 편집 이정연 기자, 디자인 장광석

점심시간에 거리로 쏟아져나온 직장인들의 뒷모습. 열심히 회사생활을 해도 ‘중산층’으로 버티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한겨레 강봉규 선임기자

한국 사회의 허리가 흔들리고 있다. ‘계층 상승의 디딤돌’로 여겨지던 중간계급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최근 급속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9년 이후 중간계급의 이탈률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은 2000년대 초반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2000~2014년 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해 <한겨레21>에 공개한 결과를 보면, 2009년 중간계급이었던 100명 가운데 72명가량만 5년 뒤인 2014년에도 중간계급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09~2014년 중간계급 유지율 71.81%).

중간계급에는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의사·회계사·교사 등 전문직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기업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회사원, 임원 등이 포함된다. 중간계급에서 이탈한 28명 가운데 9명은 실업 상태인 비경제활동인구로, 9명은 노동자계급, 7명은 자영업자로 옮겨갔다.

2004~2009년만 해도 중간계급 유지율은 78.72%였고, IMF 위기 직후였던 2000~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79.1%였다. 2009년 이후 갑자기 중간계급 유지율이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셈이다(그래프1 참조).

‘중간계급’이란

‘중산층’이 누구인지를 따질 때는 일반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른다. 전체 가구소득의 한가운데에 있는 소득(중위소득)에 50~150%를 곱한 구간에 있는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100가구를 소득별로 줄을 세웠을 때 가운데인 50번째 가구가 중위소득이며, 50번째 가구의 절반만큼 버는 가구부터 50번째 가구의 1.5배를 버는 가구까지를 중산층이라 할 수 있다. 자산이나 부채, 가구주의 학력이나 직업 등과 상관없이 오로지 소득만을 따지는 방식이다.

<한겨레21>은 기존 중산층 구분 방식 대신에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쓰는 ‘중간계급’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안정적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 학력, 경제적 소득수준 등 3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이들을 가리켜 ‘중간계급’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직업으로 보면 의사·회계사 등 전문직이나 기업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회사원, 임원 등이 중간계급에 해당한다. 이들은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고 안정적 소득을 올리고 있다. 신 교수는 이번 2000~2014년 노동패널조사 연구에서는 중간계급 이외에도 △자본가(5명 이상 직원 고용) △자영업자(5명 이내 직원 고용) △노동자계급 △실업 상태 △비경제활동인구 등으로 계층을 나눠 분석했다.

2009~2014년 중간계급 유지율 크게 하락

반면 노동자의 계급 유지율은 같은 기간 큰 변동이 없었다. 2000~2004년 75.16%가 노동자계급을 유지했고, 2004~2009년 73.6%로 조금 떨어졌다. 2009~2014년엔 76.07%로 다시 반등했다. 유지율 하락이 모든 계급에서 보이는 현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분석 결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통계청이 발표하는 공식 중산층 비중은 2014년 70%로 전년(69.7%)보다 늘어났다. 이 비중은 1997년 외환위기 뒤 급락해 2008년 66.3%까지 홀쭉해졌다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중산층이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인 ‘소득수준이 중위소득의 50~150%인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OECD 기준은 중산층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중산층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기 때문이다. 중위소득의 50%는 빈곤율을 따지는 기준선이라서 중산층이라기보다는 잠재적 빈곤층에 가깝다. 최저생계비 지급 기준으로 삼는 올해 중위소득은 1인 가구 월 156만원, 4인 가구 월 422만원이다. 이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체감하는 비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통계청의 계층 의식조사 결과와도 상반된다(그래프2 참조). 통계와 현실 사이에 간극이 크다.

신광영 교수는 조금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 직업을 중심으로 중간계급을 추출했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계급이란 관리직·전문직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고학력 △안정된 일자리 △소득 등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는 ‘핵심 중산층’으로 볼 수 있다.

신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 ‘핵심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2000년 이후 서서히 무너졌고, 2009년 이후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앞서 2000~2004년, 2004~2009년, 2009~2014년 등 크게 5년 단위로 끊어서 살펴봤던 분석이 말해주는 바다.

15년 전체를 통틀어 각 계급별 변동을 살펴봐도 중간계급의 이탈률이 가장 컸다. 2000년 중간계급이던 사람(30~59살)이 2014년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추적해봤더니, 중간계급 유지율이 53.38%에 머물렀다. 나머지 16.01%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고, 자영업(13.1%)을 하거나 노동자계급(13.08%)으로 옮겨간 이도 많았다. 자본가(5명 이상을 고용한 고용주)로 옮겨간 비율은 3.08%에 불과했다. 100명 가운데 53명만이 중간계급 일자리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다(그래프1 참조).

다른 계급은 중간계급보다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자영업자의 55.8%는 15년 뒤에도 자영업을 하고 있었고, 노동자는 58%가 그대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2000∼2014년 그사이 한국 경제는 격변했다. IMF 구제금융 뒤 신용카드 부채 위기를 거쳐 서브프라임 사태, 유럽의 재정 불안에 따른 불황을 겪었다. 그 15년 동안 중간계급이 가장 많은 변화를 몸으로 겪은 셈이다.

이석균(45·가명)씨도 그랬다. 1994년 보험회사에 입사한 그는 성공한 직장인이었다. 영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연봉 1억원 가까이를 받았다. 보험회사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하다가 2011년 명예퇴직한 그는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퇴직금 등을 털어 1억5천만원을 투자해 편의점 사장님이 됐다. 2000년 중간계급으로 있다가 2014년 자영업자가 된 13.1% 가운데 한 명이다.

1968년생 이후, 중산층 진입할 기회 적어

“뉴스테이가 중산층 주거 혁신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9월17일 인천 도화동에서 열린 첫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착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다. 뉴스테이 임대료는 84m² 기준 보증금 6500만원에 월세 55만원으로, 주변 시세만큼 비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시스

이씨는 1970년생이다. 중간계급에서의 이탈은 ‘나이’에서도 확인된다. 2000년 중간계급의 평균나이는 34살이었다. 15년이 흐른 뒤인 2014년 중간계급의 평균나이는 39살로 조사됐다. 노동패널 표본이 중간에 바뀌거나 보강되는 등 들고 나감이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평균나이가 40살을 넘지 못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신광영 교수는 말한다.

“2000년 중간계급이었던 사람들(평균 34살)이 그대로 중간계급을 유지하면 15년 뒤 중간계급의 평균나이는 49살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39살이 평균이라는 건, 나이가 들수록 상당히 많은 이들이 중간계급에서 탈락했다는 이야기다. 흔히 생각하는 중산층의 이미지는 40대의 안정적인 가장을 생각하지만, 중산층은 30대가 주축이며 40대를 넘어서면 중간계급에 진입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4년 말에 펴낸 ‘중산층 형성과 재생산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도 1970년생 이후 세대의 중산층 진입 확률이 이전보다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중산층 진입 확률이 세대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이전에는 취업자가 많아 중산층에 잔류하거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많았지만, 이런 취업 효과는 최근 세대로 내려올수록 악화되고 있다. 보고서는 1968년생 이후 세대는 맞벌이를 해도 부부 각각의 소득수준이 낮아 중산층에 진입할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2000~2014년 노동패널 가구주의 이동을 추적한 결과를 보면, 중간계급은 15년 동안 다른 계급에 견줘 더 많이 이탈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기준 중간계급이었던 사람(30~59살)이 15년 뒤 중간계급을 유지한 비율은 53.38%였다.

한국 경제와 사회를 떠받치는 ‘허리’가 홀쭉해지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으로 들어가 살펴봐도 그렇다. 과거 한국 경제 성장의 과실은 자본가뿐만 아니라 중간계급에게도 일부 나눠졌다. 중간계급은 정년을 보장받았고, 10년 이상 일하면 월급을 모아 집도 사고, 자녀를 낳아 교육하는 등 안정된 중산층을 꿈꿀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꿈을 보장받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무너지는 중간계급’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하나는 중간계급 규모의 축소 또는 이탈, 다른 하나는 중간계급 소득의 저하 또는 양극화다.

1999년 중견 건설업체에 사무직으로 입사한 김정민(44·가명)씨의 첫 연봉은 1800만원이었다. 1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뒤 2012년 퇴사한 그가 받은 마지막 연봉은 5600만원. 그러나 급여가 늘어난 만큼 물가도 올랐고, 외벌이로 가족 넷을 건사해야 하는 만큼 씀씀이도 커졌다.

통계청이 매년 집계하는 생활물가지수(전·월세 포함)는 1999년 68.85에서 2012년 106.46(2010년을 100으로 놓고 계산)으로 올랐다. 10여 년 새 김씨가 소득계층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달라졌다. 대리운전 기사를 거쳐 통신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는 그의 연봉은 현재 3천만원이 채 안 된다.

중간계급인 김씨의 첫 소득은 상위 30%(소득을 10개 분위로 나눴을 때 8분위에 해당)의 평균소득인 1811만원(2000년 기준)과 비슷했다. 그러나 2014년 그의 소득은 겨우 ‘중간’ 수준을 넘는 상위 40~50%(소득 6분위 평균 2851만원~소득 7분위 평균 3485만원)에 위치해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계급을 따진다면, 1부터 10까지 열 개의 계단 중에서 1.5계단 아래로 내려온 셈이다. 1차 원인은 회사 퇴직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난 15년 동안 김씨뿐만 아니라 중간계급의 소득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탓이다.

신광영 교수가 2000~2014년 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간계급의 평균 연간소득은 2000년 1697만원에서 2014년 3452만원으로 올랐다. 단순 숫자로만 보면 2배가량 늘어난 셈이지만,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중간계급의 처지는 15년 새 뒷걸음쳤다.

점점 줄어드는 중간계급의 평균소득

우선 중간계급의 평균소득이 소득 10분위상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살펴보자(그래프3 참조). 2000년에는 1697만원으로 상위 30~40%(소득 7~8분위)에 해당했다. IMF 외환위기 직후라서, 중간계급에 해당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이 많던 시기였다. 2004년(2458만원)과 세계 금융위기가 덮친 2009년(2966만원)에도 중간계급의 평균소득은 상위 30~40%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 단계 아래로 내려앉았다. 2014년 중간계급의 평균소득은 3452만원으로 소득 7분위(3485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상위 30~40% 수준에서 상위 40~50% 수준으로 중간계급 소득이 하향 이동한 것이다.

반면 중간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격차는 더 커졌다. ‘5명 이상 직원을 둔 회사를 운영한다’고 답해 자본가로 분류된 노동패널의 평균소득은 2000년 3782만원에서 2014년 7728만원으로 늘었다. 이는 2004년에는 상위 10% 이내(소득 10분위), 2009년과 2014년에는 상위 10~20%(소득 9~10분위)에 해당한다. 15년 새 일어난 중간계급의 하향 이동과는 대조적으로 자본가계급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중간계급의 상대적 지위는 자본가와는 멀어지고, 노동자계급과는 가까워졌다.

“중위소득 아래쪽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이탈하는 정도가 위쪽 중산층이 고소득층 쪽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양극화에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중산층 형성과 재생산에 관한 연구’ 보고서

실제 격차는 더 벌어졌을 수 있다. 노동패널에서 응답한 소득수준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만 따지고 자산소득과 금융소득은 빠져 있어서 건물 임대료나 예금 이자 등을 받는 자산가 또는 부유한 중간계급의 정확한 소득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다른 여러 연구 결과는 중간계급 소득 저하를 뒷받침한다. 흔히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40~50대층의 실질소득이 줄어들었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지난 9월10일 발표한 ‘한국 베이비부머(1995~1963년생) 패널 연구 3차년도 보고서’를 보면, 월평균 실질소득(소비자물가지수를 감안한 실질 근로소득)이 2010년 255만여원에서 2014년 249만원으로 줄었다. 연구소는 베이비부머 4천여 명을 2년마다 추적 조사하고 있다.

신광영 교수의 분석에서 주목할 대목은 중간계급 내에서의 양극화도 심해졌다는 점이다. 같은 중간계급이라고 해도 ‘빈곤한’ 중간계급과 ‘부유한’ 중간계급 사이의 격차가 커졌다. 노동패널 5천 가구의 소득을 10개 구간으로 쪼개서 그 분포를 살펴보면 ‘중간층’의 쇠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중간계급 평균소득이 위치한 소득 6분위와 7분위 내에서 소득수준이 얼마나 고르게 퍼져 있는지를 봤더니, 2000년에는 표준편차가 63 안팎이었으나 2014년에는 170 안팎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중산층은 자신의 벌이 가운데 상당액을 교육비로 쓴다. 자녀가 중산층을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한국노동연구원의 ‘중산층 형성과 재생산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도 “중위소득 아래쪽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이탈하는 정도가 위쪽 중산층이 고소득층 쪽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양극화에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최근 들어 중산층의 경계 가까이에서 양극단 쪽으로 이동하는 소득분포의 변화가 활발하게 진전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고소득자인 소득 9~10분위에 속하는 중간계급의 비중이 2000년 32.5%였다가 2014년 23.7%로 크게 감소했다. 2000년 중간계급 3명 중 2명이 소득으로 볼 때 상위 20%에 들어갔다면, 2014년에는 상위 20%에 해당하는 중간계급이 4명 중 1명꼴로 줄어든 셈이다. 신광영 교수는 “중간계급이 누렸던 상대적인 지위와 전체적인 프리미엄이 15년 새 상당히 사라졌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부유한’ 중간계급이 가져가는 몫은 더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최상위 1%가 임금 총액의 몇%를 가져가는지를 분석한 연구(홍민기 ‘임금 불평등의 장기 추세(1958~2012): 최상위 분포를 중심으로’)를 보면, 1998년 5%에서 2012년 8%로 최상위 임금노동자의 몫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국세청 통계를 이용해 분석한 이 자료에서 분류하는 최상위 1% 임금노동자 집단에는 경영·금융 전문가, 의사, 약사, 회계사, 펀드매니저 등의 직업이 속해 있다.

흔들리는 사다리의 꼭대기에 서서

박기준(50·가명)씨는 대표적인 최상위 1%다. 지난해 대기업 계열사 임원이 된 그의 연봉은 세전 1억8천만원에 이른다. 1990년 입사했던 회사에서 그가 받은 연봉은 1천만원이 안 됐다. 지난해 임원이 되면서 급여가 6천만~7천만원가량 순식간에 뛰었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긴다. 상류층은 아니라고 답했다. 왜일까?

‘흔들리는 사다리(중간계급)’의 꼭대기에 서 있기 때문이다. 고용불안과 소득불안정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언제까지 이 지위를 지킬지 장담할 수 없는 탓이다. 신광영 교수는 “중산층은 사회 안정과 정치적 진로를 결정하는 집단이다. 중산층을 보면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중산층 혹은 중간계급이라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현실적으로 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