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인터뷰l ‘왜 분노해야 하는가“ 책 펴낸 장하성 교수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분노하라. 그리고 불평등한 세상을 바꿔라.”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8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한겨레>와 만나 “재벌 대기업이 불평등한 나라를 만들었고, 부모인 기성세대는 이를 방치했다. 지금의 불평등한 한국을 보다 평등한 사회로 바꿀 수 있는 방안들은 많은데, 문제는 누가 이를 실천할 것인가 하는 ‘주체’에 달렸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정규-비정규직, 대-중소기업간
소득 불균형에 불평등 커지는데
진보진영도 빈부격차만 강조

재벌 대기업은 불평등 원인 제공자
부모인 기성세대가 방치한 책임
젊은이가 주체로 나서 실천해야

경제민주화 시민운동의 대부격인 장 교수와의 인터뷰는 한국의 화두인 불평등의 원인과 해법을 파헤친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출간을 계기로 이뤄졌다. 이 책은 장 교수가 지난해 9월 한국경제 진단과 해법을 담아 펴낸 <한국 자본주의>의 2편에 해당한다. 장 교수는 “한국이 당면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모두 불가능하고 청년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면서 “불평등의 핵심은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인데, 기존 논의는 빈부격차만 강조해 불필요한 ‘부자에 대한 증오’만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원천적 분배 개선이 중요한데, 진보진영도 재분배(사회복지)에 초점을 맞추는 오류를 저지른다”고 비판했다.

-책 주제가 ‘불평등’인 이유는?

=산업화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소득분배의 형평성이 호전됐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불평등이 악화되더니,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불평등한 상황이 청년세대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뺏어간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1천여명의 젊은이들에게 강연을 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솔직히 암담하다’고 말했다. 일부가 울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젊은이들이 현 상황을 극복하려 해도, 불평등 구조를 잘몰라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로 보면 한국의 불평등 수준은 괜찮은 것으로 나오는데?

=그게 함정이다. OECD가 발표하는 지니계수(불평등 지표)는 한국정부가 제공한 가계소득 자료를 기초로 한다. 하지만 이는 고소득 가구와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1인 가구를 포함하지 않아 불평등이 덜 심한 것처럼 왜곡되어 있다. 광범위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임금소득 기준 지니계수로 봐야 한다.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론’이 지난해 한국에서 출간됐을 때도 논란이 있었는데?

=피케티는 선진국들의 불평등이 어떻게 악화되어 왔는가를 분석했다. 한국은 자본주의 발전 경로와 역사,자본축적의 수준이 선진국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의 분석과 대안은 한국의 현실과 거리가 있다.

-국내 불평등 논의에서 잘못된 점은?

=경제적 불평등은 ‘가진 것’의 차이(재산 불평등)와 ‘버는 것’의 차이(소득 불평등)로 구분한다. 기존의 불평등 논의는 이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한국에서 국민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재산 불평등보다는 소득 불평등 때문이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근본 원인은 임금격차다. 모든 계층에서 노동소득이 전체 소득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외국은 자산계층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최상위 1~2%만 자산계층이다. 이들 상위 1%의 것을 뺏어봐야 99%에게 도움이 안된다.

-임금격차가 소득 불평등을 만드는 원인이라면, 임금격차는 왜 생겨난 것인가?

=고용 불평등과 기업 간 불균형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고용 불평등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불균형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2차 하청기업의 임금은 원청기업인 초대기업 임금의 3분의 1이고, 3차 하청기업은 4분의 1 수준이다. 이런 불평등 구조를 만든 장본인은 재벌 대기업이다.

-불평등의 원인이 재산 격차가 아니라 소득 격차라면, 그 해법도 기존 논의와는 다를 수밖에 없을텐데?

=한국에서는 아직 기초적인 복지 제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예산의 비중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복지를 통한 재분배는 지금보다 더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극도로 불평등한 원천적 분배를 그대로 두고, 사후적으로 교정하는 재분배만으로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도 그동안 재분배를 강조하지 않았나?

=진보도 오랫동안 딴소리를 해왔다. 임금격차가 문제인데 빈부격차만 강조하며 무조건 가진 사람들 욕만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를 시행했는데 성공했나? 강남집을 팔고 경기도로 이사가라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불평등의 주 원인이 임금격차인데, 노동계의 일부 기득권 집단(대기업 정규직 노조)도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이라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를 외면한다.

-젊은세대들에게 불평등한 한국을 바꾸라고 강조하는데?

=재벌 대기업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만든 원인 제공자다. 그것을 방치한 책임은 청년세대의 부모인 기성세대들에게 있다. 재벌 대기업과 기성세대에게 세상을 바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청년세대들이 나서야 한다.

-현실적으로 청년들의 분노가 크게 표출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책 제목을 ‘왜 분노해야 하는가’로 정한 것이다.

-젊은이들을 선동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것 같다.

=선동하는 게 맞다. 바늘구멍에 들어갈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속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칠 게 아니라, 바늘구멍을 넓히거나 깨야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