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맛 그리고 멋(펌)

남명 조식

moonbeam 2016. 1. 14. 08:06

 1556년 남명은 당시 스물을 갓 넘긴 명종이 하사한 단성현감의 자리를 뿌리치며,'단성소(丹城疏)라 불리는 을묘사직상소'를 올린다.

"전하의 국사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갔고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자면 백 년 된 큰 나무에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다 말랐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조정에 충의로운 선비와 근면한 양신(良臣)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형세가 이미 극에 달하였으므로 사방을 돌아보아도 손을 쓸 곳이 없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들은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면서 주색이나 즐기고, 높은 벼슬아치들은 빈둥거리며 뇌물을 받아 오직 재물 불리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온 나라가 안으로 곪을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물건(관직)을 훔칠 순 없습니다."

 

 평소에 조정에서 재물로 사람을 임용하니, 재물만 모이고 백성은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장수의 자격에 합당한 사람이 없고 성에 군졸이 없어서, 외적이 무인지경에 들어오듯 했으니 이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겠습니까? 이번에도 대마도 왜노가 향도와 남몰래 짜고 만고에 끝없이 치욕스러운 짓을 하였건만, 왕의 신령한 위엄은 마치 한 모퉁이가 무너지듯 떨치지 못했습니다. 이는 옛 신하를 대우하는 의리가 혹 주나라 예법보다도 엄하여 원수를 총애하는 은덕이 도리어 재앙으로 송나라에 더해진 꼴이 아니겠습니까? 세종께서 남쪽 오랑캐를 정벌하시고 성종께서 북벌하신 일을 보아도 어디에 오늘날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이같은 것은 하찮은 피부병에 지나지 않고, 마음과 속의 병은 이보다 더 심각합니다. 이런 나라 형편을 바로잡는 길은 여러 가지 다양한 나라의 법령에 있지 않고, 오직 임금님께서 한번 크게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오나 임금님께서는 홀로 임금님께서 하시려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시지를 못합니다.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음악과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말타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그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냐에 국가의 존망이 달여 있습니다. 진실로 임금님께서 하룻밤 사이에 깜짝 놀라 새사람이 되듯 깨달으십시오. 지금부터라도 학문에 힘써 덕을 밝히시고, 백성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게 하십시오. 착함과 덕을 펴는 정치를 하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고 흩어진 민심이 다시 임금님 곁으로 돌아오고, 위기를 평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