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잘 가세요 신영복 선생님

moonbeam 2016. 1. 18. 12:05

시민들이 지난 15일 세상을 떠난 신영복 석좌교수의 영면을 기원하며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에 마련된 신영복 석좌교수 분향소로 들어가기 위해 17일 오후 줄지어 서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시민들이 지난 15일 세상을 떠난 신영복 석좌교수의 영면을 기원하며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에 마련된 신영복 석좌교수 분향소로 들어가기 위해 17일 오후 줄지어 서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가르침 되새기는 30·40대


지난 15일 별세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책들은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 ‘새내기 필독서’로 꼽혔다. 평소 ‘관계’와 ‘관계맺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신 교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나무야 나무야> 등은 그 자체로도 선배와 후배·동료들 사이에서 ‘관계맺음’의 도구가 됐다. 지금의 30~40대는 당시 인상적인 글귀와 함께 서로에게 하고픈 말을 적어 아끼는 이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신 교수의 별세를 계기로 이제는 기성세대가 돼가는 30~40대가 책장에 꽂아둔 신 교수의 책들을 다시 꺼내들고, 삶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로 삼고 있다.

30대 직장인 “대학교 1학년때
선생님의 문장을 좌우명 삼아”

40대 변호사 “사무실에 걸어놔”
서점서도 신영복 저서 판매 급증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강아무개(35)씨는 17일 신 교수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듣고 책장에 꽂혀 있던 신 교수의 책 <나무야 나무야>를 꺼내들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선배에게 선물받은 것으로, 강씨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책을 꺼내 읽곤 했다고 한다. 강씨는 “선배가 책을 선물하면서 (책 앞장에) 빼곡하게 글을 적어줬다. 신 선생님의 글만큼이나 깊은 성찰이 담겨 있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스승 같은 분이 돌아가셔서 안타까웠는데, 다시 책을 읽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성광(36)씨의 ‘좌우명’은 “한 사람의 생애를 읽는 기준은 ‘한 시대의 정점에 오르는 성취’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에 얼마만큼 다가서고 있는가다’”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읽은 <나무야 나무야>에 나오는 문장이다. 후배·동료에게 이 책을 많이 선물했다는 김씨는 “좌우명조차 의미 없는 시절이 됐지만, 이 말은 (나의 삶이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서) 더 밀리지 않기 위한 나의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했다. 김씨는 “신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앞으로 ‘더불어 숲을 이룰 수 있는 나무’가 되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199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은 신 교수의 글 중 “관찰보다는 애정을,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를,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떠올렸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말이다. 이지영(40) 변호사는 최근 이 문장을 선배로부터 선물받아 사무실에 걸어놨다. 이씨는 “신 선생님의 글들이 뚜렷한 정치성이나 계급성을 갖지 않았음에도 자기 성찰적인 뜻이 담겨 있어서 ‘운동’에 관계없는 이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신 선생님의 책이 단순한 복고 열풍처럼 추억이 되기보다는, 그분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의 글 속에서 가르침을 되찾고자 하는 이런 추모 열기를 반영한 듯, 신 교수의 저서 판매량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신 교수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15일부터 이날 오후 1시까지 신 교수의 저서 판매량이 직전 3일보다 13.4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대표작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담론>은 각각 이 서점의 국내도서 일간 판매량 1, 2위를 차지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우리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페이지를 만드는 등 인터넷 서점들은 앞다퉈 신 교수를 기리는 특별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