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왜 국회의원 자리에 목을 매는가...

moonbeam 2016. 1. 12. 07:55

-천박한 속물정치를 이성의 정치로 바꾸자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질 4월 13일까지 석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선거구 획정안이 결정되지 않았는데도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이 겨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역 의원들은 물론이고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아보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당선이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각오로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하다.

집권 새누리당 후보 대다수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거느리고 공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대통령 박근혜의 ‘총애’를 사려고 다양한 ‘충성 서약’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 그렇다고 한다. 대구의 한 지역구에서는 새누리당 현역 의원이 박근혜가 자신에게 귀엣말을 하는 사진과 비빔밥을 나눠 먹는 사진을 ‘의정활동보고서’에 크게 실었다. 그의 명함에는 “역시! 000! 진실한 사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대구 달서을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전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은 경찰 제복을 입은 자신이 박근혜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현수막에 올리고 “뚝심과 의리의 경상도 싸나이”라는 글을 추가했다(<연합뉴스> 1월 2일자).

이른바 ‘친박계’ 안에서도 박근혜와 가까운지 먼지를 보여주는 신조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원박’(원조 친박), ‘복박’(돌아온 친박), ‘신박’(새로운 친박), ‘진박’(진짜 친박), ‘월박’(비박에서 친박으로), ‘죽박’(죽을 때까지 박근혜) 등등. 그뿐 아니다. ‘강박’(강성 친박), ‘가박’(가짜 친박), ‘멀박’(멀어진 친박), ‘용박’(박근혜를 이용하는 친박), ‘홀박’(홀대 받은 친박), ‘곁박’(곁불 쬐는 친박), ‘울박’(울고 싶은 친박), ‘수박’(수틀린 친박), ‘쪽박’(쫓겨난 친박), ‘짤박’(잘려나간 친박), ‘맹박’(맹종하는 친박)도 있다. 집권당 안에서 총선에 나서겠다고 하는 정치인들 가운데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야말로 세계 그 어느 나라의 대통령도 연출할 수 없는 ‘웃을 수 없는 코미디’이다.

새누리당에서 극히 소수인 ‘비박계’ 말고 대다수가 눈물겨운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는 데 반해 야권에서는 파괴적인 이합집산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을 떠난 안철수와 김한길이 손을 잡고 1월 10일 창당준비위원회의를 발족시킨 국민의 당(가칭)은 ‘친정’이자 두 사람이 공동대표를 맡았던 새정치민주연합을 ‘낡은 진보’, 정권교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식물정당’ 식으로 몰아붙였다. 호남에서 더민주당을 누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그 정치세력은 ‘호남팔이’라는 비판에 펄쩍 뛰며 반발하고 있다. 야권 분열이 아니라 호남 민심은 이미 자기들 쪽으로 기울었다는 주장이다. 더민주당에서 탈당하는 의원이 늘어나 국민의 당으로 간다면 20석을 가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혼란의 극치 속에서 더민주당 의원들이 보이는 행태 역시 딱하기 짝이 없다. 제1야당을 중심으로 야권 연대를 이루어야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누를 수 있다거나, 적어도 개헌 저지선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하는데도 이탈자를 막기에 급급하다. 더민주당의 지역구 출신 의원들과 비례대표 의원 일부는 다음 총선에서 당선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 민주체제를 새로 건설하는 과업은 자기들 몫이 아니라는 뜻일까?

새누리당뿐 아니라 더민주당과 국민의 당(가칭) 정치인들은 왜 국회의원 자리에 목을 걸고 있는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런 진정성을 흔쾌히 인정해 주겠다.

현재 국회의원들은 장관급 대우를 받고 있다. 연간 세비는 1억4,689만원이고, 보좌진(4급 2명, 5급 2명, 6·7·9급 각 1명, 유급 인턴 2명)의 총 연봉은 3억9,513만원이다. 의원회관 운영비, 차량 유지비 등으로 연간 5,179만원을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현행범을 제외하고는 불체포특권을 누린다. 해외 출장 시 재외공관의 영접을 받는다. 고급 시설을 갖춘 국회 한의원, 양의원, 체력단련실, 목욕탕을 수시로 무료 이용한다. 연 2회 해외 시찰을 나갈 때 국고 지원을 받는다. 상임위원장에게는 한 달에 1천만원의 판공비가 별도로 지급된다. 단 하루만 국회의원을 하더라도 65세가 되면 월 12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엄청난 혜택이 없어지고 북유럽 나라들(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이나 스위스처럼 국회의원을 대우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북유럽 나라들에서는 국회의원들에게 차량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의원 서너 명이 보좌관 한 명을 두고 공동으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해서 정책을 마련하거나 홍보 활동을 한다. 연봉이나 수당은 일반 봉급생활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주민들이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면 세탁소 주인도 노동자도 농민도 총선에 출마해서 당선될 수 있다. 한국처럼 교통지옥이 아니라서 자전거를 타고 활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회의원 업무가 하도 고단해서 ‘재선’을 원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고 한다.

스위스의 국회의원들 가운데 정규직은 10%뿐이고 나머지는 의정활동 60~70%, 직업에 관한 일 30~40%를 하는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연봉은 최저임금 수준이고 비서와 의원실은 아예 없다. 당신이라면 그런 나라들에서 국회의원이 되려고 막대한 선거비용을 쓰거나 지역구에서 환심을 사려는 ‘인사 차리기’에 열중하겠는가? 현역 의원들은 장관직보다 안정적이고 ‘갑 중의 갑’ 대우를 받는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재선, 3선, 나아가 10선에 목을 걸지 않을 수 있는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다수는 의정활동에 전념하기보다는 사익 추구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산(2015년 3월 현재)이 28억6천만원이라는 사실이 왜 그런지를 입증한다. 전체 의원의 37.3%인 109명이 부모나 자녀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해마다 예산을 심의하는 정기국회가 열리면 자기 지역구에 생색을 내려고 ‘국고금 끌어들이기’에 혈안이 되는 의원들이 많다. 헌법기관으로서 국민의 대의기구 구성원 역할에 충실해야 할 의원이 해서는 안될 일인데 말이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업무에 불성실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인물은 19대 총선에서 5선 의원이 된 박근혜였다. 2012년 9월 5일 ‘아이엠피터’가 <다음 블로그>에 올린 글(“박근혜 ‘국회 본회의 출석 0%’ 이러고도 대통령 감?”)은 많은 유권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의원 박근혜는 2012년 7월 2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린 본회의에 ‘결석’ 또는 ‘청가’라는 이유로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대통령후보로서 선거운동을 하느라고 바빴다고 변명하더라도 국민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직무유기였다. 게다가 국회에서 그의 법안 대표발의 건수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18대 국회에서 평균 대표발의 법안 수는 36건이었는데, 박근혜의 5선 의원 기간(14년)의 대표발의 법안 수는 15건으로 연 평균 1.1건에 불과했다. 다른 의원들이 만든 법안에 도장 한 번 찍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그런 의원에게 거액의 연봉과 기타 경비, 그리고 다양한 특혜가 제공되었던 것이다. 선진국들에서 대선 시기에 그런 문제가 불거졌다면 당장 후보를 사퇴하고 정계를 떠나야 했으리라.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제헌국회부터 19대까지 의원들 다수가 갈수록 천박하고 비속한 정치인으로 타락해 간 것은 헌정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박정희가 ‘10월 유신’이라는 쿠데타 이후 의원 총수의 3분의 1을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거수기 기관에서 뽑도록 한 시기가 최악이라고 볼 수 있지만,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도 의원들의 사익 추구와 자기중심주의가 약화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가장 안쓰러운 것은 1960년대부터 치열하게 민주화운동을 했다가 1990년대 초부터 정치권으로 들어가 의정활동을 한 세대 가운데 다수가 그들 앞 세대 못지않게 국회의원 자리에 목을 거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현상이다. 70대 후반에 들어선 정치인들은 ‘노추’나 ‘노욕’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50대에 불과한 인물들이 옛날의 치열한 투쟁 의지를 상실한 채, 야권에서 독자적으로 진보적 그룹을 이루어 활동하지 못하는 사실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김대중·노무현이나 과거 출중한 재야 지도자들의 그늘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는 4월 13일의 제20대 총선은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수구보수세력의 장기집권을 허용하는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야권이 연대를 이루어 총선을 승리로 이끌거나 적어도 새누리당의 개헌선 확보를 저지하는가의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야권이 연대를 이룰 경우, 종전처럼 국회의원 자리에 목을 거는 천박한 정치인들을 배제하고 이성과 양심에 따라 민족공동체를 위해 생산적인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을 단일후보로 내세울 수 있는지 여부가 아주 중요하다. 야권이 그런 작업에 성공한다면 천박한 속물정치를 퇴치하고 이성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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