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가 '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 이름으로 한미 당국이 경북 성주에 배치하기로 한 “사드 체제의 한국배치를 반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금까지 천주교는 사회문제에 대해 천주교 전체의 이름으로 성명을 낸 사례가 많지 않다. 다만 지난 1987년 1월에 발생한 서울대학생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을 기화로 널리 알려진 ‘천주교정의평화구현사제단(약칭 정의구현사제단)’만이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번 성명은 '민족화해위원회' 이름으로 나왔으나 ‘한국천주교회의 입장’이란 제목을 써서 이 성명이 전체 천주교를 대표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이 성명에서 천주교는 “수도권 방어에 대한 현실적 실효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사드 배치는 한반도가 새로운 냉전체제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북한의 핵을 저지하기 위한 사드 배치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물론 천주교는 이 성명에서 북의 핵무장에 반대한다는 선언도 명시했다.
성명은 또 “‘7·4 남북공동성명’(1972), ‘남북기본합의서’(1992), ‘6·15 남북공동선언’(2000), ‘10·4 남북공동선언’(2007) 등은 남북 관계의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노력의 귀중한 결실”이라고 정의하고 “최근의 신무기의 추가적 개발과 배치는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그간의 모든 민족화해와 공동번영 노력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천주교는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의 군사적, 경제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현재의 상황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사드의 효능도 검증하지 않은 채 사드 배치를 강행하여 국민들에게 불신과 불안을 안겨 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커다란 외교적인 손실을 입게 될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또 마지막으로 “그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환경평가를 거치지 않은 채 강행하는 사드 배치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증진시키는 방안을 모색해 주기를 간절히 촉구한다”고 말해 정부의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아래는 이날 나온 천주교 성명 전문이다.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한국 천주교회는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이 초래할 상황을 주시하고, “평화는 결코 ‘무기라는 힘’의 균형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상호 신뢰에 의해 확립된다.”(「지상의 평화」, 110.113항 참조)고 하신 요한 23세 성인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아래와 같이 교회의 입장을 표명한다.
1.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한 우려
2016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현재의 지구촌 상황이 이른바‘산발적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릴 만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규정하신 바 있다. 인종, 민족, 국가, 종교 간 갈등이 점차 심화되는 현실에서 강대국의 충돌 지점에 위치한 한반도의 평화 유지가 갖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권 방어에 대한 현실적 실효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사드 배치는 한반도가 새로운 냉전체제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교회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오로지 적대 세력의 균형 유지로 전락될 수도 없다.”(사목헌장 78항)고 천명한다. 군사력의 증강을 통해 한반도의 위기가 진정되고, 평화가 오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의 확립을 통해 이룩된다.
여러 차례 주장한 바와 같이, 핵개발은 북한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이로 인한 강대국 간의 긴장 고조가 민족의 공동선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북한의 핵을 저지하기 위한 사드 배치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군비경쟁이 인류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안겨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지성과 감성의 교류와 공감이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현장도 경험하였다. 한반도의 핵문제를 둘러싼 긴장과 위기는 군사력의 우위를 과시하는 압박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2. 민족 화해 분위기의 냉각에 대한 우려
지정학적 특성과 강대국들 간의 이념적 대립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분단 71년의 역사 속에서 위기를 평화로 이끌어가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7·4 남북공동성명’(1972), ‘남북기본합의서’(1992), ‘6·15 남북공동선언’(2000), ‘10·4 남북공동선언’(2007) 등은 남북 관계의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노력의 귀중한 결실이다. 최근의 신무기의 추가적 개발과 배치는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그간의 모든 민족화해와 공동번영 노력에 역행하는 일이다. 최근의 남북 관계는 개성공단의 폐쇄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드 배치로 인해 주변국 간의 긴장과 적대감이 증가된다면 남북 협력과 대화의 길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이에 교회는 정부 당국이 한반도를, 패권이 충돌하는 위험 지대가 아닌 화해와 협력의 상생 지대로 변화시켜 가는 노력을 경주해 줄 것을 촉구한다. 힘이 아닌 설득과 대화를 통해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전방위적으로 노력해 줄 것을 간절히 촉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방한 중 청와대 연설에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외교는 화해와 연대의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이며 가능성의 예술”이다. 진정한 평화는 상호 비방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인내를 수반하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정부 당국이 평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 주기를 거듭 촉구한다.
3. 민생 불안과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
한국 천주교회는 사드 배치가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아울러 교회는 균형 있고 절도 있는 군비 축소와 대화 협력을 통해서 궁극적인 평화 실현과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또한 교회는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이다.”(「민족들의 발전」, 76항)라고 선언한다. 비인간적인 삶의 여건을 인간적인 환경으로 이해시키는 발전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후 국제 갈등으로 인해 남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악화될 경우 평화 실현은 더욱 힘들어지리라 예상된다.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의 위기는, 자신에게 살생의 무기를 들이대고, 자기 화살을 불화살로 만드는(시편 7,14) 우를 범하지 않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이사 2,4)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임을 보여준다. 특별히 우리 민족은 한반도의 평화가 군사력의 우위로 이룩될 수 없으며, 민족 간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 걸음씩 진행되어 나아가야 함을 실증해야 할 시점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의 군사적, 경제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현재의 상황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다.
사드의 효능도 검증하지 않은 채 사드 배치를 강행하여 국민들에게 불신과 불안을 안겨 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커다란 외교적인 손실을 입게 될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환경평가를 거치지 않은 채 강행하는 사드 배치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증진시키는 방안을 모색해 주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16년 7월 15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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