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떨기(펌)

25년 신앙생활한 전도사, 가나안 교인 되다

moonbeam 2016. 8. 31. 08:42


[인터뷰] 목사에게 실망한 신학생, 교회 등지기까지…"그곳에 예수가 없다"

교회 공동체 안에만 있다 보면 떠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가 믿음이 없어서, 또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 중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를 여전히 구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점차 늘어나는 가나안 교인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은 이해도는 높이고, 높은 교회 울타리는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교회 나가지 않은 지 1년 반 정도 됐다. A 씨는 모태신앙인이자 신학생이었다. 어린 시절 늘 촉망받는 학생이었다. 주일을 빼먹은 적이 없다. 찬양팀도 하고 노회 연합 청소년 수련회에서 성경 퀴즈 1등도 거머줬다.

그래서일까. A는 당연하게 신학교를 선택했다. 이후 3년쯤 사역했다. 파트 전도사까지 하던 그는 지금은 왜 교회를 가지 않게 됐을까. 8월 22일 A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름은 요구에 따라 익명 처리했다.

담임목사와 갈등이 가나안 생활의 시작이었다. 신학교에 다니며 사역하던 때다. 담임목사 호출이 잦았다. 행사를 앞두고 미리 나와 준비하라는 거였다. 하루는 학교 일정이 있어 참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 일이 있고, A는 교회에서 황당한 설교를 들었다.

"신학생이 목사에게 순종하지 않는데 어떻게 목회자가 되겠느냐."

설교 듣는 사람 중 신학생은 A 혼자였다. 화가 나고 당황스러웠다. 담임목사는 자신에게 잘하는 것을 신앙생활 척도로 삼았다. 교인이 자신 말에 순종하길 바랐다. 심방 주간이 되면 대접을 강조했다. 임직식 때 집사, 권사 역할은 목사를 잘 보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A는 교회에서 신앙생활과 사역을 하면서 여러 목사를 보았다. 그들을 보면서 자기도 그렇게 될까 두려운 적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순종 강요하고 자기 포장 위해 거짓말하는 목사…

더 이상 담임목사 설교를 들을 수 없었다. 순종을 강조하는 목사가 불편했다. 사역 핑계로 교회에서 나왔다. 그 다음 들어간 교회는 40명 정도 모이는 개척 교회였다. 청소년부 파트 전도사를 맡았다. 학생들과 있는 게 재밌고 좋았다. 하지만 그 생활도 오래가진 못했다.

이번에도 목사가 문제였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월 50만 원 받는다고 말하고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러 명목으로 70만 원 정도 더 받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A 눈에는 목사가 자신을 포장하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거짓말하는 목사를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떠나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정도 들었고 전도사가 바뀌는 게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른 사역지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세월호 팔찌를 차고 기타에 세월호 리본을 매달고 다녔다. 그러자 청소년부 교사들 사이에서 리본을 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나왔다. 혹시라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교사들이 세월호 팔찌나 리본 이야기를 했어요. 몇 번 듣다 보니 더 이상 있기 어렵겠더라고요. 가족이 죽었으니 진실을 밝혀 달라는 사람들인데, 교회 사람들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생각하더라고요. 공감할 생각 없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저한테는 스트레스였죠. 교회 안에서 고립된 섬 같았어요."

  
▲ 세월호에 관심이 많다. 사역하면서 팔찌를 차고 다녔다. 교인들은 불편하게 생각했다. 결국 먼저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학교서 배운 예수와 달랐다

2015년을 끝으로 A는 교회를 떠났다. 떠난 이유가 이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배운 예수의 가르침과 너무 멀어진 교회. 괴리감이 컸다. 사람이 불완전한 건 이해하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교회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했다. 재산과 학벌로 계층을 나눴다.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남성은 여성을 무시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청년을 무시했다. 소외되는 그룹도 있었다. 대학 가지 않은 사람, 결혼하거나 취업하지 않은 30대가 그랬다. 같은 교단 목회자들도 나온 학교에 따라 차별이 존재했다.

A가 만난 예수는 약한 자들 친구였다. 차별하거나 계급을 나누지 않았다. 구원자라는 위치를 이용하지도 않았다. 교회를 25년간 다녔지만, A는 예수를 교회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군림하는 목사, 권력을 움켜쥔 교회만 보았다. 예수를 머리로 둔 게 아니라 사람을 머리로 둔 집단 같았다. 점차 집단 속 일원으로 남는 것이 어려워졌다.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보수적인 신앙인 A에게 사람들은 교회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 역시 어디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주일 아침 습관적으로 눈을 뜨면, 침대 위에 있는 자신이 불편했다.

시간이 지나자 혼란은 어느 정도 정돈됐다. 교회로 가던 걸음을 멈추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제도 교회만 유일한 정답은 아니란 사실. 이미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한 신앙 선배가 있다. 그들이 남긴 책이 있다. 하나님을 배워 가며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

요즘 A는 교회 탐방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공동체를 엿보고 싶은 호기심에서다. 지인들이 다니는 교회부터 작은 공동체까지 찾아갈 생각이다. 마음 맞는 곳이 있다면 정착할 마음도 있다.

하지만 큰 기대감은 없다. 찾으면 좋겠지만 꼭 찾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은 없다. 기독교인 모두가 제사장이고 홀로 하나님을 독대할 수 있기에, 기한 없이 홀로 신앙생활해도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A는 지금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가나안 교인 중에 공동체로 돌아가고픈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거예요. 돌아간다면 자기만의 때가 있고 속도가 있어요. 신앙이 성숙하는 데 시간이 다르듯 상처가 아물고 결의를 다지는 데도 시간이 다 달라요. 다시 가고 싶지 않을 만큼 상처가 큰 사람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돌아가라 하지 마세요. 그건 폭력이에요."

최유리 cker333@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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