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도 왔고, 우병우도 왔다. 안종범 수석은 이미 와 있고, 김종 차관은 곧 올 예정이다. 여기서 ‘온다’는 검찰청 기준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꽤 오랜만이다. 원래 친밀한 사이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대포폰으로만 얘기하다보니 얼굴을 까먹은 듯하고, 심지어 “본 적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지경이란다. 그게 못내 안타까웠는데, 이참에 검찰청서 한데 모여 예전의 친밀함을 확인하길 빈다. 이 자리에 미처 못오신 박대통령이 외롭지 않을까 싶지만, 그분에겐 말 한마디에 죽는 시늉은 너끈히 할 친박들이 건재하니 그래도 견딜 만할 것이다. 뭐든지 분류하려 드는 게 학자의 특징이다. 예컨대 기생충은 크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분류하고, 보이는 기생충은 또 지렁이처럼 생긴 것과 납작한 것, 그리고 끈처럼 기다란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년간 기생충을 분류해온 사람으로서 한 자리에 모인 박대통령의 측근들을 분류해 본다.
첫째, 임숭재형. 임숭재는 연산군 시대의 채홍사로, 왕을 위해 조선 각지의 미녀를 뽑아 왕에게 갖다 바친 분이다. 얼마나 그 일을 잘했으면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간신>)까지 만들어졌겠는가? 임숭재의 대단한 점은 여성의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으로, 사대부의 딸은 물론이고 유부녀, 천민을 가리지 않고 얼굴만 예쁘면 잡아갔다고 한다. 이는 그 대상을 연예인과 여대생으로만 한정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채홍사가 반성할 점이 아닌가 싶다. 임숭재에 비견될 인물이 바로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이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쳐줬다는 의혹이 드러나자 “나도 친구에게 연설문 수정을 물어본다”고 한 바 있으며, 그 외에도 박 대통령이 악수(惡手)를 둘 때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그분에게 즐거움을 드리곤 했다. 심지어 알맹이가 없어 한숨만 나오는 대통령의 담화문에 눈물까지 흘리고, 최근엔 박 대통령이 피해자라는 망언까지 했다니, ‘국민의 뜻에 반하여 대통령을 보필하는 자리’인 집권당 대표의 역할을 100% 수행한 셈이다.
둘째, 십상시형. 중국 한나라 영제 때 활약했던 환관을 십상시라 하는데, 이들은 어린 황제인 영제를 주색에 빠지게 한 뒤 자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며 사적인 이익을 취한다. 이에 격분한 민중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삼국지의 배경이 된 황건적의 난도 그 중 하나다. 여기 속하는 대표적인 이가 바로 최순실과 안종범, 김종 등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나이를 제외하면 영제와 흡사한 박대통령을 ‘Good(굿)’에 빠지게 한 뒤 자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며 사적인 이익을 취한다. 이에 격분한 민중들은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는데, 이들은 불과 4만명이 그 넓은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는 기적을 연출한다. 십상시는 원소와 조조 등 삼국지의 스타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최순실 무리들은 검찰의 따뜻한 배려 속에 시종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는 중이다.
셋째, 허수아비형. 최순실의 연설문 파동이 불거졌을 때 이원종 비서실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전문 연기자도 아닌 바, 그건 정말 모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든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사람이 있겠냐”는 그의 말도 진정성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의혹이 사실임이 밝혀진 뒤에는 “알았다면 봉건시대 발언을 했겠느냐”며 되레 성을 내던데, 모르면 처음부터 말을 하지 말지 왜 무작정 부인하고 보는지 모르겠다. 가만 보면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은 다 나이가 많았다. 김기춘, 이원종, 이번에 새로 비서실장이 된 한광옥이 모두 75세며, 이병기씨가 69세로 최연소다. 최순실이 청와대에 그렇게 자주 드나들었지만, 이원종은 물론이고 2013년부터 1년6개월간 비서실장을 한 김기춘도 최순실을 모른다고 한 걸 보면 나이 때문에 눈과 귀가 어두워진 건지, 아니면 기억력이 감퇴해 봤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은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러려고 나이 많은 사람들을 뽑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이 셋 중 가장 덜나쁜 사람은 누구일까. 굳이 선택하자면 임숭재일 것 같다. 일이 좀 구려서 그렇지, 임씨는 어쨌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100% 수행했고,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임숭재가 병으로 몸져눕자 연산군은 환관을 보내서 경과를 물었는데, 그때 임숭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기도 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으나, 다만 전하께 미인을 바치지 못하는 것이 한입니다.”
하지만 연산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임숭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왕이 잘못을 행하려고 할 때, 신하는 목숨을 걸고 간언해야 하는가? 아니면 제 목숨을 애석히 여겨 순종해야 하는가? 군의 뜻에 영합하여 그 뒤의 해로움을 생각지 않으니 너는 간신이고, 또한 아첨으로 주군의 눈을 가려 나라를 말아먹으니 너는 망국신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박 대통령 측근 중 간신이자 망국신이 아닌 이는 없어 보인다. 어쩌겠는가. 대통령의 부덕의 소치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