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이제 ‘명예혁명’의 시간이다 --- 조국 교수

moonbeam 2016. 11. 8. 12:38



조국 서울대 교수
조국 교수. 김진수 기자jsk@hani.co.kr
조국 교수. 김진수 기자jsk@hani.co.kr
‘공주’와 ‘무당’의 컬래버레이션(협업·합작)으로 민주공화국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필두로 정치, 경제, 행정, 문화 곳곳에 포진한 대한민국 집권세력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 주권자 국민의 허탈한 가슴은 분노로 가득해졌다. 박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공약했지만, “국민염장시대”를 연 것이다. 전국의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이 든 피켓의 구호 “이게 나라냐”는 현 상황을 압축 표현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상의 없이 김병준 국무총리 카드를 던졌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헤드헌팅’한 것이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지만 일찍이 “박근혜는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며 자기 휘하에 들어온 한광옥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반헌법적 국정농단에 대한 반성 없이 정치공학적 기술만 부린 인사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철저 규명
책임자를 징치하는 게 ‘혁명’ 목표

주권자가 대통령에게 제시한 선택은
첫번째 하야, 두번째 2선 후퇴
조기대선 정치일정 확정 필요
어떤 경우건 지금보다 낫다

이러한 ‘명예혁명’의 경험은
현재와 미래의 국민과
정치세력에게 귀중한 교훈 줄 것

총리 내정에 파안대소했던 김병준 내정자는 “노무현 정신은 국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동의하기 힘들다. “노무현 정신은 국민을 생각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원칙과 소신을 가진 분”이라는 한광옥 실장의 옹호에는 쓴웃음만 나온다. 고인이 된 두 대통령은 이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하여 무슨 말씀을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의 2차 사과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청와대에서 굿을 하지 않았다”뿐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최순실 등 “특정 개인”의 위법으로 규정하여 자신과의 고리를 끊었다. 존재 이유가 불분명한 두 재단 설립을 위한 거액 모금을 “기업인의 선의의 도움”으로 정의했다. “필요하다면” 검찰과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겠다고 말하였지만, 그는 자신의 범죄 혐의는 부정하고 검찰에게 수사 지침을 제시하며 관련자에게 조율의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정부의 본연의 기능 회복”을 강조하고 “국정 중단 반대”를 선언하였는바, 방탄용 국무총리를 앞세우고 권력을 여전히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규탄하는 2차 범국민행동 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규탄하는 2차 범국민행동 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5년 12월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혼용무도”(昏庸無道)가 다시 생각난다. “어리석고 용렬한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힌다.” 박 대통령의 진솔한 고백과 상황인식의 변화가 없다면, 주권자 국민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맹자는 “폭군방벌”(暴君放伐)을 말했다. <정관정요>의 경구를 빌리자면, “왕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엎을 수도 있다.”

주권자 국민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헌법을 만들었고, 이로부터 정치적 민주화는 시작되었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 손으로 민주헌정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2016년 불거져나온 ‘병신무란’(丙申巫亂)을 자행한 ‘국적’(國賊) 집단을 제압하고 나라의 근본을 다시 세우는 ‘반정’(反正)의 길을 가야 한다. 이제 ‘명예혁명’의 시간이다.

이 ‘혁명’의 당면 목표는 무엇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밝힌 후 책임자를 징치(懲治)하는 것이다. 여기서 박 대통령 자신이 이 ‘게이트’의 ‘피의자’라는 점이 잊혀서는 안 된다. ‘피의자’가 임명했고 그 지시를 받는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민정수석이 지휘하는 검찰 수사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국회는 이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를 즉각 개시함과 동시에,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지 않는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에 합의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라를 망친 ‘주범’과 ‘종범’의 범행을 국민 앞에 드러낸 후 엄벌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에서는 다시 개헌론을 꺼내고 있다. 개헌이 정국의 중심이 되면, ‘게이트’는 부차적 문제가 되어 버린다. 아래로부터의 정치와 의회정치가 분리된다. 지금은 권력 나누기 논의에 빠질 때가 아니라 ‘명예혁명’을 계속 진전시킬 때이다.

‘게이트’ 진상 규명과 책임자 단죄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 이전까지 나라는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라의 운명을 박 대통령이나 그가 독단적으로 임명하는 국무총리에게 맡길 수는 없다. 향후 14개월 동안 누가 그의 권위를 인정하고 영(令)을 따를 것인가? 그동안 나라는 어떤 꼴이 될 것인가? 현재의 집권세력은 새로운 정략을 통하여 반전을 도모할 수도 있다. 그 경우 국민은 ‘하옥’(下獄)을 외치게 될 것이다.

주권자가 박 대통령에게 제시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하야하고 국무총리에게 새 정부 출범 작업을 맡기는 것이다. 이 경우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자연인으로 수사를 받으며, 헌법에 따라 하야 후 60일 내 대선이 치러져야 한다. 둘째,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직을 유지하되 국정의 일선에서 완전히 후퇴하여 수사를 받고, 여야 합의로 추대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총리가 국회와 협의하여 국정을 이끌고 조기 대선을 포함한 향후 정치일정을 확정하는 것이다. 전자는 이승만의 선례가 있고 간명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후자는 유례가 없지만 질서 있는 관리가 가능하다. 내년 4월12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있으니, 대선을 같이 치를 수 있다. 어느 경우건 지금 상황보다는 낫다. 그리고 이러한 ‘명예혁명’의 경험은 현재와 미래의 국민과 정치세력에게 귀중한 교훈을 줄 것이다.

‘명예혁명’ 완수를 위하여 거리의 정치와 의회정치는 따로 또 같이 가야 한다. 국민은 거리에서 주권자로서의 요구와 주장을 자유롭고 용감하게 제기하면 된다. 정치권은 이에 조응하면서 단계별로 정치적 매듭을 짓고 제도적 개선을 성취하면 된다.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이러한 선택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판단하길 바란다. 현재의 상황은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니다. 썩고 병든 가지를 쳐내고 나라의 근간을 재정립하는 것은 공동의 과제이다.

계급·계층·집단, 정치 성향과 출신 지역을 모두 떠나 우리 국민은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에서 살 권리와 자격이 있다. ‘명예혁명’의 성공을 위하여 뜻과 힘을 모으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