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백성이 근본이다 ---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moonbeam 2016. 11. 11. 10:04



바야흐로 국민대각성의 시대다. 쇠고기 촛불 이후 영 꺼진 줄 알았던 촛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연일 봇물 터지는 보도에 국민은 아연실색, 분노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보수의 아성 대구도 그렇다. 

[시대의 창]백성이 근본이다

지난 백년 우리나라에 정의가 승리할 절호의 기회가 몇 차례 찾아왔으나 우리는 한번도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기회주의자, 권력파들이 노상 승리하고 정의와 양심을 사랑하는 민주파는 패배하고 좌절해왔다. 그래서 ‘정의고 양심이고 소용없다’ ‘권력과 돈이 최고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런 못된 풍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정의는 패배해 왔다. 우리가 선진국이 못되는 이유는 소득이 낮아서가 아니고 바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구조에 있다.


첫번째 기회가 해방 직후였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감격과 환희에 가슴 벅차하며 새 나라를 열망했던가. 그러나 많은 애국세력들이 신탁통치 찬반으로 나뉘어 분열하는 사이 권력욕으로 똘똘 뭉친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들을 배격하고 친일파들을 몽땅 기용해서 권력을 잡았다. 일제가 김구 선생보다 큰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었으나 실패했던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일본 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모욕을 당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약산은 풀려난 뒤 사흘 동안 울었고 결국 이듬해 월북했다. 두번째 기회는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19혁명 때 찾아왔으나 민주당이 신파·구파로 분열·반목하는 사이 권력욕으로 똘똘 뭉친 친일 군인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바람에 1년 만에 무너졌다.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유신 폭압통치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광화문광장에 이승만·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 세번째 기회는 1979년 박정희가 죽고 난 뒤의 ‘서울의 봄’. 그러나 전두환 쿠데타로 다시 좌절했다. 네번째 기회는 1987년 민주대항쟁으로 전두환 독재를 무너뜨림으로써 찾아왔으나 양김이 양보하지 않고 욕심부리는 바람에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번이 다섯번째 기회다. 네 차례나 실패했으니 이번만은 잘해야 한다. 분열과 욕심은 금물이다. 다시 천추의 한을 남겨선 안된다. 


명백히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뭘 잘못했는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아직 모른다. 두 차례 사과도 진실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이며, 국회 방문도 미봉책이다. 찔끔찔끔 최소한으로 사과하고 지나가려 한다. 다급해지니 청와대에 각계 인사를 불러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너무 늦었고 진정성도 없다. 

맹자는 “왕이 큰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여러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왕을 바꾼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지만 박 대통령은 잘못을 간할 만한 강직한 사람을 아예 옆에 두지 않았다. 이 정부 고위직이나 청와대에 바른말 하는 사람은 씨가 마르고 온통 간신배로 가득 찼다. 박 대통령은 심지어 장관의 대면보고조차 받지 않았다. 과거 기자회견 때 뒤의 참모들을 돌아보면서 “대면보고 필요하세요?”라고 묻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라. 대통령이 장관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고 어떻게 국정 현황을 파악하며, 나라를 이끌고 갈 수 있을지. 

국정은 이미 지난 몇 년간 표류해왔고, 공백상태였다. 장관과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보고를 요구하지 않으니 속으로는 편하게 됐다고 생각하고 각자 알아서 권력자들 눈 밖에 나는 일만 없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창조경제는 원래 실체도 없고, 사기꾼 설치기 좋은 환경인데, 아니나 다를까 엉망진창이다. 대통령은 언제나 원고를 또박또박 낭독은 잘했으나 자유대화, 자유토론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그러니 지금 대통령 그만둔다고 국정공백 생길 리 없다. 오히려 빨리 하야하고, 새 대통령 뽑는 게 국정공백을 줄이는 길이다. 

대통령 그만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맹자가 말했다. “나라에 백성이 근본이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군주는 가볍다(民爲本 社稷次之 君位輕).” 대다수 국민의 눈에 이미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다. 외치·내치 구분해서 맡기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통령은 해외에서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다. 대통령직 오래 유지해봤자 국정 혼란과 공백이 길어질 뿐이다. 


박 대통령에게 마지막 남은 애국심이 있다면 국민에게 이실직고하며 용서를 빌고 하루빨리 하야해야 한다. 호가호위하면서 저질 정치를 해온 새누리당 친박들은 석고대죄하고 정계를 떠나야 한다. 야당은 이 문제를 미온적으로 대하지 말고 가차 없이 하야를 요구해야 한다. 오직 촛불, 민심이 천심이고 백성이 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