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서민의 어쩌면]저는 대통령 박근혜입니다

moonbeam 2017. 3. 2. 09:01


[서민의 어쩌면]저는 대통령 박근혜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1998년 대구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뒤 대통령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어쩌다 시장이나 공장, 노숙자쉼터 등 소외되고 어려운 서민을 찾아갔던 것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한번 얼굴을 비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입만 열면 신뢰를 강조한 것도 사실은 저 스스로도 저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며, 행여 국민들이 그 사실을 알아챌까 두려워 선수를 친 것이었습니다.

[서민의 어쩌면]저는 대통령 박근혜입니다

목표했던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정말 원 없이 놀았습니다. 원래 지킬 생각이 없었던 공약은 잊으려 노력했고, 제가 해야 할 국정과제는 최순실이 챙기도록 했습니다. 대신 피부 관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의 얼굴이니만큼 좋은 피부를 보여드리는 게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정치인의 여정에서 단 한번도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주변의 비리에 한없이 관대했습니다. 1년만 더 버티면 임기를 마칠 수 있는데, 순실이의 국정농단이 탄로 나는 바람에 탄핵심판을 기다리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거짓말을 워낙 자주하다보니 이젠 입만 열면 저절로 거짓말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탄핵을 앞두고 제 소회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원래 말을 잘 못합니다. 하다 보면 주어와 동사가 헷갈리고, 엉뚱한 데서 목적어가 튀어나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제 빈약한 언어능력을 국민들에게 들킬까봐 토론을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미리 준비된 대본이 없으면 일절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았고, 꼭 해야 하는 연설은 프롬프터를 그대로 읽었습니다. 질의응답을 할까봐 서둘러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연설문 작성에 있어서 순실이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특검에서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쓰는 걸 보면서 괜히 물어봤다는, 늦은 후회가 듭니다. 

다음으로 재단설립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본 탓인지 저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기업의 돈을 갈취할 욕심이 있었습니다. 국위선양이나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보다는, 최순실의 이익이 곧 대통령의 이익이라며 기업 회장을 협박했습니다. 기업인들도 경영권 승계라든지 감방에 있는 회장이 사면된다든지 하는 선물을 받았으니, 이건 서로 윈-윈이라고 생각한 점도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대통령이라 임기 중 어지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특검이 저를 뇌물죄로 엮으려는 걸 보면서 세상 참 빡빡해졌구나 싶어 한숨이 나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대통령이 됐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이제 중소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순실이 제게 KD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가 현대차에 납품할 수 있게 하라고 했을 때, 저는 그 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가 최순실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이고, 관련수석에게 “반드시 성사시켜라”라고 전달한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은 보좌진의 의견을 듣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의견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며, 현명한 판단과는 담을 쌓은 제가 촌각을 다투는 그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보좌진 역시 큰 사건이 터져도 제게 보고하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후회스러운 점은 중대본에 도착해서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슬픈 표정으로 입을 닫고 있으면 될 것을, 그 말로 인해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만인이 알아버렸습니다. 제가 검찰과 특검, 헌재에 아예 나가지 않은 것도 그때 얻은 교훈 때문입니다. 침묵이 금이라는 옛말은 곱씹을수록 명언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진 자들이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 믿고 살아왔습니다.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이 학교 졸업 후 비정규직이 될 수 있게 돕고, 우리 후손들이 아이 낳기가 두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제가 책임지고 해야 할 사명으로 생각하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과감하게 빨갱이로 몰고, 블랙리스트에 올렸습니다. 혹시 탄핵이 기각돼 제가 대통령을 더 하게 된다면, 남은 임기 동안에도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을 하면서 국가적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과 깊은 혜량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주 필자가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을 주어로 해서 쓴 가상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