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익선동 --- "'가난 포르노' 때문에.." 3년새 주민 30% 사라진 동네

moonbeam 2017. 3. 13. 09:21


[익선동을 아십니까①] '서울 종로 옛 정취 골목길'로 인기 얻었지만, 주민들은 '몸살'

[오마이뉴스 글:신상호, 편집:최유진]

부산 감천마을처럼 관광객들의 유명세를 탄 동네는 항상 홍역을 앓는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도 최근 '옛 풍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동네'로 이름을 알리며, 달갑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다. 집값이 폭등하고, 원주민들은 임대료 상승에 못 이겨 떠난다. 남은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들이미는 카메라에 대책 없이 노출돼 있다. 서울시는 익선동의 젠트리피케이션(주민이탈) 현상을 막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지구단위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 사생활 침해는 아예 손놓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3편에 걸쳐 익선동 주민들이 겪는 달갑지 않는 변화와 주민이탈, 서울시 공공 정책의 부재를 짚어본다. <편집자말>

 익선동에서 20년간 세탁소가 있었던 자리. 세탁소 주인이 떠난 곳에는 카페가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 신상호
"저기가 익선동이래, 가보자."

익선동 골목길이 보이는 주차장 부근, 20대 여성 두 명이 조잘거리면서 골목길 안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니, 평일임에도 카메라를 든 20~30대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찍고 있었다.

김규리씨는 "SNS에 나와있는 사진 풍경을 보고, 이곳을 찾게 됐다"면서 "삼청동 느낌의 한옥 골목 풍경이 좋아 사진도 몇 장 찍었다"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오래된 골목, 익선동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50년은 더 된 낡은 주택과 골목길의 정취는 서울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기 때문이다. SNS로 입소문이 나고 관광객들이 밀고 들어오면서, 익선동은 급변했다. 집값이 오르고 오른 집값에 떠밀려 원주민들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원주민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처럼 증발하고 있다.

"원주민은 무슨... 다 떠나갔어"

50대 중반의 익선동 세탁소 주인인 김아무개씨는 세탁소 장부를 넘기면서, 짤막하게 말했다. 그는 익선동에서 50년간 살아온 토박이다. 30년 넘게 세탁소를 해오면서 단골도 많았는데, 언젠가 단골 손님들이 조금씩 사라졌다. 최근 1년 반 사이 동네가 뒤집혔다고 했다.

"월세를 보통 50만 원을 받던 걸 집주인이 갑자기 200만~300만 원을 부르는데, 그걸 누가 버텨? 이렇게 바뀌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어. 집값 비싸지니 집주인들은 좋겠지. 그런데 확실한 건 원주민은 이제 없어. 없어."

원주민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장부를 넘기던 그의 손엔 힘이 들어갔다. 동네의 변화가 썩 달갑지만은 않은 듯했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위치(빨간색 선 안)
ⓒ 다음
자리를 옮겨 익선동의 한 공방을 찾았다. 공방 주인 송아무개씨는 관광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신물이 난다.

"밤이건 낮이건 구분 없이 찾아와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니 원주민들은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아요. 찍지 말라고 해도 찍어요. 흥미를 쫓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가난 포르노를 소비하는 사람들이에요."

주민을 '가난한 동네의 한 풍경'으로만 보는 관광객들은 그에겐 불청객일 뿐이다. 관광객들은 그가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방안 구석까지 집요하게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었다. '추억팔이' 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원주민에 대한 예의도 존중도 없었다. 

방송 뒤 월세 140만원 요구, 결국 떠나

관광객으로 시끄러워진 동네지만 떠난 이들은 익선동을 그리워한다. 지난해 방송된 'KBS 다큐3일'에서 세탁소 주인으로 소개된 이춘우씨도 지난해 4월 이 곳을 떠났다. 방송이 나간 지 두 달 뒤, 집주인이 월세 140만 원을 요구했다. 그동안 월세를 내지 않았던 터라, 그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결국 그는 전세 계약 만료 두 달을 앞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나가라고 할 땐 사실 울컥했죠.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을 잘 몰랐어요. 그렇게 그 동네에서 오래 살았어도 만날 일만하고 잘 몰랐는데, 나오고 나니까 동네가 엄청나게 바뀌었더라고요. 세탁소가 있던 자리도 나오고 난 뒤에 권리금이 4000만 원까지 올랐다고... 허허."

이씨는 1998년에 자리잡아 20여년을 살아온 동네 토박이였다. 7평 남짓한 조그만 세탁소 공간에서 고등학생인 아들을 대학교에 보내 졸업까지 시켰다. 동네를 떠나간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이씨를 찾는 단골들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단골들의 이름 세글자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단골들은 빨리 오라고 해서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임대료가 비싸 웬만한 곳은 들어가서 장사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 가도 10년 이상된 단골 3분의 2는 다시 불러올 수 있는데, 여건이 쉽지 않아요."

"어디 할 데가 있어야지" 하면서 너털웃음을 짓는 그는 정든 동네를 떠나게 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3년새 익선동 원주민 30% 떠나

 익선동에는 평일 낮에도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로 붐빈다. 주민들은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고 있다.
ⓒ 신상호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익선동에 사는 사람들은 1100여 명, 지난 2014년에 비해 150여 명가량 줄었다. 하지만 지난 3년동안 익선동에서 살았던 원주민의 경우 매년 100명 넘게 이곳을 떠났다. 원주민 가운데 약 30% 정도가 이미 익선동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세입자들이었다. 집주인들도 돈다발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속속 집을 넘기고 있다.

지난해부터 익선동 주거형태 등을 연구해 온 전은주 성균관대 도시건축연구실 연구원도 동네의 변화가 급작스럽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 연구원은 "동네의 변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돼, 1년 전에 연구한 자료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서 "동네가 바뀌면서 원주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라고 했다.

연구를 진행할 당시에도 원주민 이탈은 계속됐다. 인터뷰를 약속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와서 "동네를 떠나게 돼 인터뷰를 못할 거 같다"며 홀연히 떠나기도 했다.

전 연구원은 "익선동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거나 차상위 계층이 대부분"이라면서 "이곳이 상업지역이라 개발압력이 높은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변화에 원주민들이 지나치게 휩쓸려 밀려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