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아비뇽 다리 위에서

moonbeam 2005. 6. 24. 07:56

アヴィニヨン 写真 

 

Sur le pont d'Avignon

Sur le pont d'Avignon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l'on y danse,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tous en rond.
Les beaux messieurs font comm' ça
Et puis encore comm' ça.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l'on y danse,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tous en rond.
Les bell' dames font comm' ça,
Et puis encore comm' ça.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l'on y danse,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tous en rond.
Les jardiniers font comm' ça,
Et puis encore comm' ça.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l'on y danse,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tous en rond.
Les couturiers font comm' ça,
Et puis encore comm' ça.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l'on y danse,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tous en rond.
Les militaires font comm’ça,
Et puis encore comm' ça.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l'on y danse,
Sur le pont d'Avignon,
L'on y danse, tous en rond.
Les p'tits enfants font comm’ça,
Et puis encore comm' ça...

 

아비뇽다리위에서
우리는 춤을 춰, 우리는 춤을춰
아비뇽다리위에서
우리는 춤을춰, 모두 원을 그리며

아름다운 부인들이 이렇게 해(여기서 한다는건 어떤 특정 동작을 말하는것 같아요)
그리고 또다시 이렇게

멋진 아저씨들이 이렇게 해
그리고 또다시 이렇게

제화공들이 이렇게 해
그리고 또다시 이렇게

세탁부들이 이렇게 해
그리고 또다시 이렇게



Sur Le Pont` d`Avignon - Roger Wagner>


 

Avignon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지방 보클뤼즈 주의 주도.

님 북서쪽, 론 강 동안에서 좁은 계곡이 넓은 삼각주 평야로 트이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갈리아계 카바레스족의 요새에서 비롯되었으며, 아베니오라는 이름의 로마 도시가 되었다.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많이 벌어졌지만 1309년 교황청 소재지가 될 때까지는 특별히 중요한 곳은 아니었다. 1309년 당시 아비뇽은 프랑스 영토가 아니라 교황의 영지였다. 아비뇽은 7명의 아비뇽 교황 중 4번째였던 클레멘스 6세가 1348년 프로방스의 잔 여왕으로부터 매입했으며, 프랑스 혁명 때까지 교황령으로 존속했다. 1309~77년까지 계속된 아비뇽 교황시대는 교황의 '제2의 바빌로니아 포로'라고 풍자되었다.

아비뇽은 특히 로마 교황청에 있었던 이탈리아인들에게 미움을 샀다. 페트라르카는 아비뇽을 북풍 미스트랄이 모질게 부는 곳이며, "우주의 모든 오물이 모이는 하수도"라고 묘사했다. 교황령은 확실한 치외법권 성역이었으므로 교도들과 범죄자들이 이 도시로 피해왔고 이에 선술집과 유흥가들이 함께 들어서면서 아비뇽은 타락한 도시로 널리 인식되었다. 또한 전염병이 자주 돌았으며 때로는 '루티에'(약탈을 일삼던 용병들의 집단)들이 이 도시를 기습하여 교황의 축복과 거액의 돈을 받은 후에야 사라지곤 했다. 이 도시는 계속 교황 특사의 통치를 받다가 1791년 프랑스 국민의회에 의해 프랑스령에 합병되었는데 이 도시의 탈취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교황궁의 내부가 파괴되었다. 도시 위로 솟은 58m 높이의 암반 위에 세워진 견고한 요새인 교황궁은 1822~1906년에는 병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 교황궁에는 8개의 탑이 있다.

현존하는 최대의 성채 가운데 하나인 이 교황궁은 2개의 건물로 되어 있다. 그중 팔레비외(古宮:1344~42)는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팔레누보(新官:1342~52)는 건축소품들과 장식물들이 많아 화려한 느낌을 준다. 작은 예배당이 많이 있으며 14세기의 프레스코로 장식된 대규모 예배당도 3개 있다. 궁전 옆에는 2명의 교황이 묻혀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노트르담데동 대성당(12세기)이 있다. 도시 아래 지역에는 17세기의 주택들과 14~17세기에 지어진 6개의 교회가 있다. 그중 2개는 두건을 쓰고 맨발로 다녔으며, 프랑스의 왕들도 회원으로 가입했던 14세기의 평신도단인 '페니탕 누아'의 예배당이었다. 교황들이 도시 주변에 축조한 방벽(5㎞)이 남아 있는데 이 방벽에는 총안이 있고 작은 탑들이 달린 흉벽, 탑, 대문들이 있다. 이 도시에서 시작되는 유명한 생베네제 다리(〈아비뇽 다리 위에서 Sur le pont d'Avignon〉라는 노래에 나옴)의 아치 가운데 4개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니콜라 예배당 역시 2번째 아치 위에 그대로 있다. 론 강의 흐름으로 인해 다리를 놓을 수가 없었는데 성 베네제와 그의 제자들이 1177~88년에 이 다리를 건설했다. 이 다리는 몇 차례 무너졌으며 1680년 이후 방치되었다. 노래에 나오듯이 사람들은 다리 아래 라바르텔라스 섬에서 춤추고는 했다. 지금은 현수교와 경간이 론 강의 하류를 가로지르고 있다.

오늘날의 아비뇽에는 활기찬 지방 시장이 있으며, 포도주·밀가루·기름·가죽·비누·섬유 등 다양한 제품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염색 원료인 꼭두서니(Madder)가 1756년에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이 지역의 주요환금작물로서 재배되고 있다. 여름 예술축제 때는 교황궁 입구 앞에서 공연되는 각종 연극과 아비뇽의 역사를 재조명한 송 에 뤼미에르('소리와 빛'이라는 뜻)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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