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개심사

moonbeam 2008. 11. 4. 14:52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현재 종점인 당진으로 나간다.
당진에서 운산으로, 운산에서 해미 방향 647번 도로를 타면 도로 양 쪽엔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서산 농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옛날에 권력을 끼고 얻은 부정 부패의 단면을 충분히 느끼며 볼 수 있다.
암흑기 우리 무지한 국민들의 모든 것을 눈 하나 깜빡 않고 먹어치운 흔적이다.
지금은 국고 환수 되었다던가?
그런데 지금도 버젓이 아~ 옛날이여~~를 부르며 과거의 지위와 영광을 재현하려고 아둥대는 모습을 보니 정말 참 가련하기까지 하다.
그보다도 그가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해도 비판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밑에서 아부하고 추종하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
옛날의 권력의 상징인 초지가 끝날 즈음 왼쪽에 개심사 표지판이 나온다.
몇 년 전 이 곳을 찾았을 때엔 표지판도 없었고, 진입로도 좁은 농로 정도여서 길 찾기에 애를 먹었었고,
오르는 길이 도로 포장 중이라 꽤나 툴툴거렸었는데 이번엔 아주 편해 좋았다.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너른 저수지가 나온다. 신창지---.
오고가는 차들이 없어서 천천히 주위 풍광을 즐기며 여유있게 갈 수 있어 좋았다.
인적이 없으니 저수지 물조차 더 넓어 보이고, 맑고, 여유있어 보였다.
구불구불한 저수지 길을 끼고 돌아 가면 허름한 음식점이 두어개 나오고,
음식점에 눈을 돌리지않고, 지나쳐 올라가면 차를 댈 만한 곳이 나온다. 그 음식점들의 음식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나물과 집에서 먹는 김치 반찬, 거기에 탁배기 한 사발. 내려 오면서 한잔 걸침이 좋으리라.
차를 대고 바로 울창한 숲으로 들어선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고 예로 부터 있는 그대로의 숲이다.

이어지는 돌계단. 깨끗하게 정리된 것이 아니고 그저 그렇게 쌓아둔 것이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하다보면 어느새 더위는 저만치 사라지고 만다.
주위의 아름드리 나무에 반해서 감탄하다보면 어느새 절 앞 마당으로 들어선다.
그럴듯한 一柱門도 없고, 幢竿支柱도 없고, 여느 절처럼 무서운 四天王像도 없다.
그저 그렇게 淨土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인간을 위압하고, 통제하고, 가르치려는 그 어떤 것도 없이

지극히 자연스러움 속에 산사에 묻히게 된다.

 

너른 마당은 좌우로 길게 이어져있고 그 한가운데 직사각형의 작은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의 형태는 어딘지 이 절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주위를 파서 둥글게 들락날락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못 가운데 그냥 놓여있는 통나무 다리를 보고는 그 마음도 싹 가셨다. 어떤 스님인지는 몰라도 그냥 아무렇게나 통나무를 던져놓고는

으로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새삼 스님의 장난끼와 함께 던져놓은 통나무의 희미한 미소가 전해져 온다.
마침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못 가운데의 작은 돌맹이 위에 거북이(?)가 한 마리 올라 있었다.
못 가로 다가가도 그저 아무런 미동도 없이, 관심의 눈길도 주지않고 마치 돌인 양 앉아 있었다.
그저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집을 찾았을 때 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느낌이었다.
누구도 달려나와 반갑게 나를 맞아주지도 않았지만 그저 그렇게 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못 주위에는 돌 벤치가 있어서 한가하게 앉아 바람을 쐴 수도 있었고, 역시 주위는 온통 울창한 숲!!

외나무 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가면 그 유명한 배롱나무---

목백일홍이 긴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만개한 붉은 꽃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배롱나무가 아닐까??
배롱나무를 지나서 오른 쪽으로 돌아 오르면 오른 쪽 밑으로 우리의

시골집 같은 스님들 요사채가 있고,
기이하게 생긴 고목을 보고 오르면 대웅전이 보인다.
開心寺는 백제 의자왕 때에 창건했으나 대웅전은 조선 성종 때 중건 했다 한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맛배집으로 구조는 다포식과, 주삼포식을 혼합한 절충식으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었보다 더 볼만한 것은 대웅전 왼쪽의 스님들 공부방이다. 건축에 쓰인 나무가 모두 있는 그대로이다.
들보도, 문지방도, 기둥도 통나무 그대로이다.

이리 휘어지고, 저리 구부러지고....

우리 나라 어디에 가도 이런 절집 나무는 없다.
자연스러움의 극치라 하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무를 다듬지않고 쓴 당시 스님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아마도 대단히 수양이 깊고 덕이 높은 스님들이었을꺼다. 아니면 장난끼만 많은 스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바로 하나라는 걸, 깨우칠 수 있었다.
기독교인인 내게 있어서 바로 이런 점이 불교를 가까이하게 한 매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 그것 뿐인가? 아래로 고개를 돌리면 종각이 하나 보인다.

좌우 사방이 탁 트인 종각의 네 기둥 또한 어떠한가?
구불구불 휘어져 곧 무너져 내릴 것도 같고....

이 대목에선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 희한한 발상. 상식을 뛰어 넘은 모양.
그렇다!! 진리란 겉으로 규격화되어진 것에만 있지는 않다.
지극히 자연스러움 속에 자연과 하나가 될 때 바로 그 속에 진리가 있는 것이다.
物我一體랄까? 아니면 物心一如랄까?
자연스러움을 보며 갑자기 머리가 더 복잡해짐은 무슨 까닭일까?
이 것이 스님이 내가 되고, 내가 스님이 됨은 아닐진데...
내가 부처가 되고, 부처가 내가 됨은 아닐진데...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되는 것은 아닐진데...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전에 왔을 때는 젊은 스님들과 농담도 주고 받았었는데,
마침 夏安居 기간이라 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자연스러운 산사에 그보다 더 허물없는 스님들이랄까? 그렇게 호탕하게 웃어제끼는 젊은 스님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더위도 가시고, 속세의 부질없는 티끌 까지도 모두 날아가 버린 마음이다.
아! 잊을 뻔 했다. 다시 왼쪽길로 접어들면 그 끝 자락에 解憂所가 있다. 물론 뒤로는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하고....
들어가는 문은 남녀 구분이 있으나 들어가서는 하나로 합쳐진다. 또 칸칸이 나뉘어져 있지만 위는 툭 터져있다.
그렇지 똥간에도 진리가----. 무슨 구별이 있으며, 무에 그리 다른 것이 있단 말인가???
어차피 하나인 것이며, 그것조차 없는 것임을---.
들어가 앉아서 일을 보며 고개를 들면 다정스럽게 담화도 즐길 수 있다.
마치 중국의 똥간 처럼.... 바닥의 나무가 많이 삭아있었다. 이곳을 찾는 인간들이 조준을 잘 못한 것일러라.
이놈의 사내란 종자들은 어디서나 조준을 잘 해야 되는데---.
얼마 안가 사람들이 많이 꼬이게 되면 삭아 무너질까 두려웠다.
해우소 구경(?)을 마치고 돌아내려오는 길은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내가 그 곳에서 배설의 쾌감을 맛본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다시 돌계단을 내려오며 언제 다시 와볼까 생각하니 답답했다.
언제 한번 김밥 싸서, 아니면 절밥을 얻어먹든지 이 곳에서 하루를 고이 보내고 싶다.
혼자 와도 좋고, 마음맞고 정취를 아는 인간이랑 와도 좋고, 아무렴 어떤가?
같이온 우리 애들은 이런 기분 알까?

(2001.8.사진은 후에 돼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고 나서 찍은 것이고, 절뒤 산길로 넘어가면 보원사 절터로도 가고,

보원사지에서 내려오면 마애삼존불도 있어 매년 갔던 곳이나 얼마전 으리으리한 일주문이 생기고부터는 가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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