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생의 오케스트라

moonbeam 2009. 6. 8. 22:55

 

학교 옆 담장 밖은 왕복 8차선 대로여서 소음방지를 위해 높다란 방음벽이 서있다.

이 방음벽 안쪽에는 크고 긴 벽화가 그려져 있다.

원색을 위주로 기하학적 무늬들을 구성 배열한 것인데 송OO 화가의 1988년 작 대형벽화이다.

송화백은 자기 세계를 가지고 일가를 이루었으며 아직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명한 화가이다.

올해 내가 이 학교에 부임할 때 그 앞에 나무로 격자형의 나무대를 빽빽하게 세워 놓았다.

사실 나는 뭔지도 모르고 왜 그런가 했더니 이미 20년이나 지나, 칠이 군데군데 다 벗겨져서 원화를 볼 수 없었고,

보수를 하려니 그 비용을 학교 예산으로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교육청에서 예산을 줄 리도 만무하고...

그러니 궁여지책으로 그 아래 능소화를 심고 능소화가 벋어갈 나무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가 완성하고 세상에 내놓을 때 이미 작가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독자나 연주자나 청자 등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설사 감상자의 것이라 하더라도 원작자의 기억엔 항상 존재하지 않을까....

그래도 꽤나 큰 대작인데...작가는 자기 작품을 기억하고나 있을까...

하나의 예술 작품이 오랜 시간이 지나 흉물스런 존재가 되어버린, 서울의 서쪽 끝 한 학교에 그려져 있는 작품 자체가 안타깝다.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기억될 하나의 작품을 창조해 낸다는 것은 모든 작가의 꿈일 것이고

오직 한사람에게 만이라도 기억되고 어루만져지고 눈과 귀에 어른거리는 작품이야말로

생명력을 가진 명작일 것이다.

가장 불쌍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작가자신에게도 잊혀진 그런 작품일 것이다...

그래도 20년 전에는 꽤나 큰 대작이었을 것이고

모르긴 해도 하나의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인데

이제는 잊혀지고, 사라져 버려야 하는 작품의 운명이 한스럽다.

 

갑자기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아......나는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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