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행주성당

moonbeam 2009. 8. 29. 14:05

행주다리를 건너 집으로 가면서 한번 가리라 마음먹었던 곳이었는데

오늘 마침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올라갔다.

행주다리를 건너 음식점 밀집지대로 가지 않고 바로 언덕을 오르면 호젓한 길이 나온다. 

 한 2, 3분 올랐을까...찾아오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듯한 팻말이 벽에 비스듬히 기대 서있다.

 바로 들어가니 약간내리막...너른 마당이 펼쳐진다.

성당이나 교회나 그 어떤 건물이든 들어서면 지표보다는 높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어느 쪽을 둘러 보아도 그럴듯한 건물이 보이지 않고 그저 앞에 낮은 지붕의 집이 하나 있을 뿐이다.

왼쪽 위에 성당이 있을법한 자리엔 컨테이너 가건물..오른쪽엔 규모가 작은 컨테이너...

 다시 계단을 몇 개 내려가니 그냥 보통 가정집이 하나 있다.

그 앞에 벤치 몇 개...낡은 종탑 하나...

문 오른쪽에 100년 기도문이 붙어 있는 걸로 보아 본당임을 알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아무도 없다...

 100년 역사를 가진 성당치고는 영 기대에는 못미친다.

미닫이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또 미닫이를 열고 들어가자 전면에 예수상....그리고 낮은 의자들...

옛날에 마룻바닥이던 어릴적 우리 교회가 생각난다. 

 시야를 가로 막는 기둥이랑, 서까래, 들보들이 천장에 어지럽다..

제대로 지탱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도 생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너무나 평안하다...가만히 자리에 앉으니 아무 생각도 없다.

 열어놓은 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눈부시게 밝다.

너무 밝음에선 편안함이 나올 수가 없다

벗어놓은 내 신발을 보니 바로 이 안이 성지처럼 느껴진다.

저곳은 속세...이곳은 성스러운 소토다....

나는 스스로 정화되고..... 

 조용히 나와서 앞에 있는 벤치 위에 카메라를 올리고 자동으로 한장...

 마당에 있는 십자가... 예수의 형상을 굵은 밧줄로 만들었다.

풀어 헤친 손과 발도 있다.

밧줄은 구속이다....밧줄을 십자가에 매단 그는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세상의 것이든, 하늘의 것이든 묶여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마다 그 느낌과 상징이 다르겠지...

사진 뒤로 보이는 문은 옛날 내외할 때 여인신도들이 드나드는 문이라 한다...ㅎㅎㅎ

 작은 컨테이너 위에 붙은 또 하나의 십자가....

단순화된 조형이 더 깊게 다가온다. 난 이런 게 좋다...

믿음이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단순하고, 가볍고, 하찮은 것이 결국 신앙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내려 오다 길가 집에 핀 인동초...올라갈 땐 못보았는데....

역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해...

그러면서 뭘 그리 많이 알고 느꼈다고들 말이 많은지....

말이 많으면 쓸 데가 없다...

좀 더 침묵하자....

 집으로 오는 논길엔 벌써 이삭이 패였다...

조금만 지나면 누렇게 변하겠지.....

올 한 해도..... 또 이렇게 지나가네....

 푸른 풍요가 넘실거린다...심고 가꾼이들의 꿈과 희망...

 길 가 전봇대에 아무렇게나 핀 나팔꽃이 멋지게 가꾼 화단의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

웅장하게 지은 오래 된 성당도 멋있지만

낮은 자리에서 수수하게 오랜 시간을 보낸 행주성당의 모습이 더 정겹게 다시 떠오른다.

 

성당앞 종탑을 찍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까맣게 나왔다...아쉽다...

내 어릴적 북아현교회에도 큰 종탑이 있었는데....

그 뒤로 종이 쓸모가 없어지자 매포수양관으로 보내서 몇 번 가서 보고 반가웠는데...지금은 있기나 하나...

자꾸 옛것이 그리워진다.....

종교도, 신앙도, 자꾸 자꾸 그리워하고 보고싶고 만지고싶고 느껴진다면 그게 진짜가 아닐까...

아니 진짜, 가짜를 떠나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자꾸 그리워함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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