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칠곡IC에서 이번 목적지까지는 약 28㎞. 한티재를 넘어 이어진 길이 으슥하다.
팔공산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야산이 빼곡하게 솟았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작은 고개 하나는 기본인 지형이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와 갈 무렵, 황소 어깨처럼 우직한 팔공산이 나타난다.
그 우람한 자태 아래로 평온한 분지가 펼쳐지니, 이번 목적지 ‘한밤마을’의 터전이다.
이런 산골에 어떻게 사람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을까. 궁금증은 지도에서 쉽게 풀렸다.
주변 지리를 살피면, 한밤마을이 유일한 분지로 그 주위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또 팔공산의 여러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한밤마을을 휘감아 흐르니 배산임수에 적합하며 분지의 규모도 비교적 넓어,
사람이 머물기 시작한 때는 오래 전이었으리라.
꼬불꼬불한 한티재를 넘어 북쪽으로 향하면 사과밭, 계단논, 내천 등 시골풍경이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그리고 한 마을을 관통하는 구간을 만난다.
‘이곳이 한밤마을이구나’ 차곡차곡 쌓인 돌담으로 하여금 도착했음과 동시에 마음 설레게 하는 풍경을 기대하게 된다.
한티로 한밤마을 초입
한밤마을 주위를 감싼 팔공산맥
실제로 주위를 살피니 지도 상에서 본 것보다 분지 규모가 상당히 크다. 한밤마을 규모 또한 평소 접하던 마을보다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주위에 병풍처럼 나란히 솟은 산 덕분에 분위기 또한 남다르다. 마치 화산의 분화구에 서 있는 것 같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키고 내뱉어본다. 도시 빌딩 숲에서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히 뚫린다.
귀에 맴돌던 소음과 눈앞의 분주함은 온데간데없다. 이래서 시골은 일단 좋다.
[왼쪽부터]한밤마을 중심으로 이어진 길목, '대율리 대청' '상매댁' 표지판 / 나무도 돌담의 일부분이다
한티로와 한밤마을이 만나는 곳에 ‘대율리 대청’ ‘상매댁’ 표지판이 세워졌다. 눈에 띄는 것부터 둘러보자.
처음 온 곳이지만, 걸음이 편안하고 마음은 어느 때보다 안락하다.
오감 중 어느 하나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없으니, 이게 ‘평온함’이구나 싶다.
주위 풍경이 담백하달까.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잔잔하게 목격된다.
“털 털 털” 경운기 엔진 소리가 위협감 없이 울리며 골목을 빠져나간다.
다 쓴 연탄을 싣고 어디론가 향하는 경운기에서 한밤마을 모습 중 하나를 담는다.
길 양옆으로 세워진 돌담은 불규칙한 배열로 쌓였지만, 불안하거나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한 시골풍경을 자연스럽게 받쳐준다. 이러한 진풍경의 중심 ‘한밤마을 돌담길’에 들어섰다.
먼저 한밤마을과 팔공산의 관계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다. 팔공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맥은 상당히 험준하다.
그만큼 협곡도 깊고 거칠다. 그 협곡들 가운데 팔공산의 북서방향이 한밤마을과 이어진다.
팔공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한밤마을로 내려오는 길을 떠올리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처럼 팔공산~협곡~분지로 이어지는 길목이 한밤마을에 있는 돌의 이동 경로다.
그렇다면, 그 돌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태고부터 오랜 기간 잦은 홍수를 겪으며 팔공산의 바위와 돌이 깎이고 쪼개지고, 흙은 쓸려 내려가면서 돌이 분지에 쌓였다고 전해진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 후, 한밤마을에 사람이 모여 삶의 터전을 일궜을 터. 자연스레 돌을 사용한 담장을 세우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돌담 중 그 원형이 잘 보전된 곳으로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미학적 관점보다 쓸모없는 돌덩어리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컸을 것이다.
따라서 집과 집 사이의 경계에 돌을 쓰고, 경작지를 가르는 경계에도 돌을 썼다.
한밤마을의 돌담은 하나하나가 예부터 숱하게 손을 탄 애물단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돌담은 보안, 안전 등 이 개념에 충실하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넘어갈 수 있는 높이일뿐더러, 담장 너머로 이웃집 속이 적날하게 보이는 수준이다.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담장과는 별개의 의미가 있는 것.
담장을 쌓으면서도 자연을 포용하는 자세를 찾아볼 수 있는데,
담장을 놓아야 하는 곳에 나무가 있다면 나무도 담장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구성했다.
한밤마을 한옥의 이모저모
이런 자연스러움은 인간의 집까지 이어진다.
한옥이 돌담과 이렇게 잘 어울렸나. 궁궐에서 보아온 담장과 한옥의 조화도 뛰어나지만, 한밤마을에서 볼 수 있는 조화 또한 인상적이다.
조금은 딱딱해 보이거나 권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기와집 한옥이 둔덕이 쌓인 돌담과 어울리니,
친근함까지 갖춘 균형의 한 집으로 인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서 살 수 있다면, 도시의 편리함을 쉽게 등질 수 있을 듯싶다.
누구나 꿈꿔 본 한옥 살림, 그 이상적 생활에 잘 어울리는 집이다.
주위 병풍을 친 산과 어울리니 멋진 풍경 또한 매력이다. 이 같은 한옥의 멋과 감동을 넉넉히 살필 수 있는 곳이 있다. ‘상매댁’이다.
상매댁
남천고택이라고도 불리는 ‘상매댁’은 한밤마을의 한옥 중에서 큰 규모와 오래된 역사로 손꼽히는 가옥이다.
자료에 따르면 조선 현종 2년(1836)에 지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 가옥의 형태는 ‘興’자형의 독특한 배치를 이뤘으나 해방을 거치면서 현재의 건물만 남고 대문이 옮겨지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Π’자형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됐으며 외곽으로 자연석을 사용한 정자, 대나무 숲 등이 한옥미를 배가한다.
대율리 대청 (경상북도 유형문화 제262호)
상매댁 바로 맞은편에‘대율리 대청’이 있다. 바람이 매서운 겨울이지만, 마루에 누워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참 좋다.
사방이 열려 있어 기둥과 기둥 사이로 팔공산맥이 한 폭씩 매달리니 액자가 따로 필요 없는 갤러리다.
이 대청을 중심으로 한밤마을의 전통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대청에 서서 한밤마을 둘러보면 한옥 지붕이 형형색색으로 곳곳에 있으니, 마치 거북이들이 곳곳에 엎드린 듯한 형상이다.
대율리 대청은 조선 전기에 세워져 당시의 마을 교육기관인 ‘학사’로 기능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그 후, 1992년에 해체·재보수를 거쳐 현 모습을 하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한밤마을 대율리 전 지역이 사찰터였고 이 대청은 대종각 자리였다고 한다.
현재는 한밤마을 사람들이 얘기할 것이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는단다.
대청을 중심에서 조금씩 벗어날수록 돌담길의 폭이 점점 줄어든다. 돌에 새겨진 자취 또한 마을 초입에서 본 그것과 달리 오래된 티가 난다. 이끼가 자라고 또 그 위로 다시 자란 모습, 검게 때가 타고 긁혀서 생살을 드러낸 상처 같은 모습 등 오랜 세월 이 길을 지켜온 돌담길의 본 모습을 찾은 셈이다.
비교적 오래된 마을 외곽의 돌담길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에도 좁을 정도의 폭이다. 왜 이 정도일까 알아보니, 과거에 소를 몰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농업기구가 바뀌면서 돌담길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 이뤄지고 일부 돌담길이 재구축됐다.
돌담길을 걷다 보면 한밤마을의 일상도 느낄 수 있다.
남의 집을 보지 않으려 해도 담장이 낮아, 시선마다 한집 한집의 마당이 끼어든다.
이방인으로서 낯선 모습일 수 있고, 마을 주민에게는 이웃을 살피는 관심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겠다.
요즘에는 다소 생소한 말이 돼버린 ‘이웃사촌’ 개념이 배어있는 공간인 셈이다.
맑은 공기와 산바람으로 말리는 곶감, 무우거지
어느 집 마당, 배추를 쌓아놓은 것을 보니 김장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다른 집, 지붕 처마에 곶감이 매달렸다.
마른 것이 꽤 된 듯 보이나 꼬들꼬들한 곶감을 좋아하는 사람이 주인장인 모양이다.
도시 사람은 갑자기 달라지는 풍경 또는 기온으로 계절을 체감하지만, 여기 시골 사람은 냄새, 온도, 바람 등 일상의 변화로 계절뿐만이 아닌 하루 사이의 변화를 보고, 듣고, 만지며 산다.
자연을 벗으로 함께 사는 마을 풍경이 한없이 정겹다.
[왼쪽부터]전통혼례에 쓰이는 꽃가마 / 약 150년 수령의 느티나무 그네
한 가옥에는 전통혼례에 쓰는 꽃가마가 마루에 놓였다. 마을에서 결혼하게 되면 쓰이는 물건처럼 보인다.
이처럼 민속마을을 둘러본다는 것은 대대로 이어온 옛 모습까지 엿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흔히 말하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덧붙여 실제 주민의 생생한 삶이 담겨 있으니 살아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담장 너머 아주머님들이 점심을 드시고 계신다. 목청이 얼마나 좋으신지 좀처럼 이야기에서 귀를 뗄 수가 없다.
날씨가 좋다며 바깥양반이 일찍 나갔단다. 이어서 시내에 찬거리를 사러 좀 나가야겠는데 언제 갈 것이냐를 두고 조율 중이다.
이야기에는 다른 이웃집도 챙기는 훈훈함도 끼어 있었다.
[왼쪽부터]요즘엔 보기 어려운 문고리, 초인종이 따로 필요없다 / 달콤한 낮잠에 빠진 고양이
이렇게 마을 구석구석을 걷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등산하는 매력과 또 다른 맛이 있다.
두 시간 정도 한밤마을을 탐방했음에도 못 가본 길이 꽤 있다. 마을 규모가 크기도 하고 그 사이사이로 뻗친 길 구조가 복잡하다.
다음 코스는 대율 초등학교로 이어진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대율 초등학교가 있고, 대문 앞에 느티나무가 마을의 보호수로 지정됐다. 헌데, 이 보호수에 그네가 달렸다.
놀이터의 쇠사슬로 만든 그네가 아닌 원래의 그네를 실제로 보게 되니 이 마을 어린이가 괜히 부럽다.
살아있는 박물관, 한밤마을의 볼거리 중 하나다.
[왼쪽부터]의병장 홍천뢰장군 송덕비 / 소나무 자태가 일품인 '성안숲'
느티나무 맞은편으로 임진왜란 의병장 홍천뢰장군의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소나무 숲이 조성된 ‘성안숲’이 있다.
한국의 10대 마을숲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는 숲이다. 자태가 고운 소나무들이 늘씬한 포즈를 취하며 자랑한다.
잡목이 없고 고송만으로 이뤄져 사진을 찍는 재미와 삼림욕 효과도 있는 일거양득 코스 되겠다.
한밤마을의 정다운 풍경을 마음껏 즐겼다면 마무리는 이 마을의 보물을 만나러 가보자. 대율 초등학교와 한티로 사이에 작은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대율사라는 절이다. 여기에서 보물 제988호 석불입상을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으로 온화한 표정과 평온한 모습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삼존석굴(국보 제109호)
[왼쪽부터]모전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4호) / 대율사의 석불입상(보물 제988호)
한밤마을의 여정을 더 이어가고 싶다면, 한티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2㎞ 이동하자.
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삼존석굴’과 ‘모전석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 또한 한밤마을과 깊게 연관된 곳으로 돌담길 여정을 더욱 알차게 만들어 준다.
TIP
[군위 가는 방법]
자가용
* 서울
동서울터미널 → 강변북로 → 천호대교 → 올림픽대로(하남방면) → 강일 IC → 중부고속국도 → 호법분기점 →
영동고속국도(호법~만종) → 중앙고속도로(만종 ~ 군위) → 의성 IC
* 대전
대전IC → 경부고속도로 → 금호분기점 → 춘천,안동방향 → 중앙고속도로 → 칠곡 → 다부 → 군위IC
* 부산
부산 → 경부고속도로 → 동대구 → 북대구 → 금호분기점 → 춘천,안동방향 → 중앙고속 → 칠곡 → 다부 → 군위IC
* 광주
광주 → 88고속도로 → 서대구IC → 중앙고속도로 → 군위IC
대중교통
* 버스
서울
동서울터미널 → 군위터미널 (07:30 - 18:30 배차간격 2시간)
부산/진주/광주
서대구고속터미널 하차 → 대구 북부정류장 → 경북 북부지역 (안동, 봉화, 청송 등) 운행버스 승차 → 군위 하차
대전
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승차 06:10 - 18:00 배차간격1시간
* 기차
경부선 대구역 하차 → 대구 북부정류장 → 경북 북부지역 (안동, 봉화, 청송 등) 운행버스 승차 → 군위 하차
[한밤마을 가는 방법]
군위IC (두번 우회전) → 5번국도 대구방면(5.7㎞) → 효령삼거리 → 부계삼거리 → 석굴암 방면 → 한밤마을
* 마을버스
군위터미널 정류장 → 마을버스 (군위-둔덕) 승차 → 대율2리 하차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ahn856@gmail.com)
[출처] 천년의 지문 '한밤마을 돌담길' 걷다|작성자 경북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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